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Aug 24.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4화

보물섬을 발견했다!


7월 20일에 달러 상점이 오픈을 하고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아바나에 이번에 생긴 11군데의 달러 상점들 중에서 저 멀리 있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두 군데를 제외한 모든 달러 상점들을 방문하였다. 작년 시월말에 먼저 생긴 전자제품 달러 상점까지 합치면 한 달 동안 꽤 많은 곳을 방문한 셈이었다.


그동안 쇼핑하러 멕시코를 가던 나였기에 멀리까지 가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아바나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자 축복이었다. 게다가 카드로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군데씩 방문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쇼핑에 임하였다. 각각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이 달라 어디서 무엇을 파는지 꼼꼼히 살펴본 후, 다음에 필요한 게 생기면 해당하는 가게에 가서 구입을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아바나 소재의 달러 가게는 대략 아래와 같이 나누어진다.(내가 방문한 곳만 표기)


세제만 판매 - 2군데
식품만 판매 - 2군데
식품과 세제를 판매 - 2군데
전자제품만 판매 - 3군데
가구와 집안 용품 판매 - 1군데
집수리 물건 판매(철물점) - 2군데
식품+세제+전자제품 모두 판매 - 1군데


앞서 말했듯이 달러 상점에서는 한국에서 발급받은 나의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게 되는데 계산을 해 보니 이 곳 ATM에서 현금을 인출해서 쿠바 화폐인 쿡(CUC)으로 물건을 사는 것에 비해서 1달러당 30원가량을 절약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 1,250원을 지불했던 것을 달러 상점에서는 1,220원만 지불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1 쿡(CUC)과 1 달러(USD)가 동일하게 취급이 되기 때문이다. 저렴한 물건의 경우 큰 차이를 알 수가 없지만 가전제품의 경우는 얘기가 살짝 달라진다.


현재 집수리를 하는 중이고 8월 말까지 공사를 마치겠노라 다짐을 한 남편과 나에게 달러 상점은 일종의 기회였고 희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기로 했다.








새 집에 필요한 가전제품은 에어컨, TV, 가스 오븐 레인지와 전자레인지였다. 우리는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상점 네 군데를 모두 방문을 해서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확인을 해 보았다.


네 군데 모두 공통적으로 있는 건 삼성 TV였다. 그런데 40인치도 아닌 50인치 이상의 대형 TV 뿐이었다. ‘아니 왜 죄다 이렇게 큰 TV 뿐이야? 역시 달러 상점은 부자들만을 위한 곳인 게야?’ 우리 집은 작아서 32인치 TV면 충분한데 그 크기는 한 군데에도 없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TV는 패스 하기로 했다. 달러 상점이 아닌 다른 곳에서 32인치 TV를 판매하긴 하는데 ‘메이드 인 쿠바’여서 어째 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무려 45만 원이었다. ‘이건 아니지. 그래, TV는 당장 없어도 되니 좀 기다려보자!’


이번에는 가스 오븐 레인지를 살펴보았다. 오븐이 꼭 필요해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공사 중인 집은 부엌이 아주 작아 가스레인지만을 올려 둘 상판 공간이 없다. 그래서 오븐레인지를 한 곳에 세워두는 게 더 나아서 오븐 레인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두 군데 달러 상점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4구짜리여서 꽤나 컸고 우리 집 부엌에는 맞지 않았다. (물론 내 맘은 큰 걸 사고 싶었지만) 그래서 가스 오븐 레인지도 달러 상점에서 아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일반 상점에서 2구짜리 작고 앙증맞은 가스 오븐레인지를 구할 수가 있었고 가격도 이십만 원 정도로 적당했다. 입주를 하면 당장 요리를 해야 하므로 가스 오븐 레인지는 TV처럼 기다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2구짜리 오븐 레인지는 이 제품이 유일 무이하여 비록 듣보잡 브랜드였지만 구입을 해야 했다. 한 군데 상점에서만 판매 중이었고 그것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으니. 아무튼 가스 오븐 레인지 구입 완료!


이제 남은 건 에어컨과 전자레인지.

전자레인지야 당장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에어컨은 사시사철 더운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달러 상점이 생기기 전에 쿠바에서는 에어컨을 사는 게 아주 힘들었다. 일반 상점에서 판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어컨은 대부분 외국에서 물건을 사 와서 판매하는 보따리 장사꾼들에게서 비싸게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었다. 아니면 외국에 직접 가서 사 와야 했다.


그런데 작년 시월말에 전자제품 달러 상점이 생긴 후부터 에어컨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집수리 문제로 한참 머리가 아플 때여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공사가 마무리가 되어가니 사정이 달라졌다.








7월 초에 코로나 자가격리가 해제1단계로 변경이 되면서 말레꼰을 따라 기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일명 [말레꼰 기차]였다. 정부 택시회사에서 운영을 하는 이 기차는 8KM인 말레꼰을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데서나 타고 아무데서나 내릴 수가 있어 아주 편리하게 이용을 할 수가 있었다. 비용은 한 사람에 1 쿡(1,250원)이었다. 이 기차는 코로나 전에도 운행을 해서 나와 남편은 예전에 타 보았지만 자주 운행을 하지는 않았더랬다. 그래서 이 기차를 타 본 한국인 관광객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 세탁실에서 찍은 말레꼰 기차/내 앞에 앉은 넘나 귀여운 아이


그런데 자가격리가 해제가 되자 이 말레꼰 기차는 매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쉴 새 없이 운행을 했다.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동안 집에만 있어서 답답했을 시민들을 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부에 돈이 너무 없다 보니 코 묻은 돈이라도 벌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기차는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공사 현장에 다녀오다가 기차가 보이길래, “자기, 탈래?” “응, 타자” 그러면서 우리는 기차를 탔고 말레꼰 바람을 맞으며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에 내 눈과 코뿐만 아니라 답답했던 내 마음까지 아주 시원하게 뻥 뚫리게 되었다. 게다가 이 기차가 우리에게 준 큰 선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전자제품 달러 상점이었다.


기차가 올드 아바나의 말레꼰을 따라 쭈욱 가는데 남편과 나는 동시에 말레꼰 건너편에 있는 한 상점을 보게 되었다. 재빨리 지나가면서 보아도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임을 알 수가 있었는데 처음 보는 곳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음에 저기를 가보자”라고 말을 하였고 그곳의 위치를 제대로 기억해두었다. 그리고 아주 더운 어느 날 우리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그 상점에 가 보았다. 가는 길에 여기저기 들러서 한 시간쯤 걸린듯했다.


상점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마구 환영해주었다. 천국 같았다. 우연히 알게 된 이 곳은 역시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지 가게 안에는 손님이 두 명 남짓 있었다. 물론 줄도 서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에는 에어컨과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무려 파나소닉이었다.(이 시국에 일제 좋아하냐고 욕하진 마시길. 이 곳은 브랜드의 옵션이 없고 있으면 사야 한다. 삼성 에어컨이 있었다면 당연히 삼성을 샀을 테다.)


꺄악~~! “자기 여기 대박이다!” 내가 말했다. 남편을 보니 그 또한 커다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는 감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은 보물섬이었다. 이태리제 커피분쇄기도 있었고 다짐기, 토스터, 전기프라이팬, 에어프라이 등 내 눈을 돌아가게 하는 것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다. 아... 다 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셋방살이 중이고 저것들을 사더라도 둘 공간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만 살까 했는데 남편이 어디에 둘거냐며 싹둑 자르는 바람에 깨갱 하며 바로 포기를 해 버렸다. 나란 여자 쉬운 여자.


그곳에는 위에서 말한 삼성 대형 TV도 있었고 삼성과 LG의 양문형 냉장고도 있었다. 나는 전생에 냉장고랑 원수를 졌나? 냉장고 이야기만 나오면 왜 이리 할 말이 많은지. 게다가 마음은 또 왜 아픈지 모르겠다.




공사가 일 년 넘게 이어질 줄 몰랐던 나는 작년에 냉장고를 미리 구입을 했었다. 냉장고부터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 달 동안 여기저기에 냉장고를 수소문하였으나 제대로 된 냉장고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어느 날, 집 근처 가게에 삼성과 LG 냉장고가 짠 하고 입고가 된 것이었다. 나는 삼성 냉장고를 먼저 보았고 가격을 보니 내 키보다도 작은 삼성 냉장고가 무려 백만 원이 넘었더랬다. 하지만 한 달을 넘게 냉장고가 없다가 갑자기 보게 되자, 없어지기 전에 얼른 사야겠다는 비장한 마음이 들어 바로 ATM으로 달려가서 현금을 인출해 왔다. 그렇게 현금(쿡)을 주고 삼성 냉장고를 샀더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달러 상점이 생기면서 (무려) 양문형 냉장고가 쿠바에도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작년에 본 양문형 냉장고는 삼, 사백만 원 대여서 어차피 못 살거라 마음을 비웠더랬다. 그런데 이 상점에 있는 저 양문형 냉장고는 백구십만 원이다. 내가 작년에 현금 백만 원을 좀 더 주고 구입한 작은 냉장고에 비하면 훠얼씬 크고 좋은데 말이다. 그리고 같은 삼성이다. 그걸 본 순간 내 마음이 어땠을까?


백구십만원짜리 삼성 양문형 냉장고/내가 구입한 전자레인지


내가 이렇게 냉장고에 욕심을 가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곳은 한국처럼 내가 원하는 때에 음식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물건이 있을 때 구입을 해서 오랫동안 보관을 해 놓아야 한다. 특히 더운 나라이다 보니 조금만 보관에 소홀하면 식품들이 금세 시들거나 상해서 아까운 음식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장실과 냉동실 두 개가 모두 큼직한  양문형 냉장고가 최고인 것이다. 쿠바에 오니 왜 이리 음식 욕심에 물건 욕심이 생기는지. 결핍이 주는 대가인가?




그 날 그 상점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혹시라도 다른 상점에 더 좋은 게 있으면 안 되니 모든 전자제품 상점을 비교해보고 구입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날 바로 우리는 다른 동네에 있는 한 전자제품 달러 상점을 가 보았다. 그곳에는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주말이 지난 후 월요일이 되어 말레꼰 기차를 타고 보물섬 상점과 완전 반대쪽 끝에 있는 다른 전자제품 상점에 가 보았다. 그곳에는 ‘여기가 쿠바냐?’라고 할 정도로 가전제품이 아주 다양하게 많았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는 물건은 그곳에 없었다.


[여기가 쿠바냐?] 전자제품 달러 상점 내부


그전에 더 먼 동네에 있는 전자제품 달러 상점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아바나에 있는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달러 상점을 모두 방문하였고 그 결과 우리가 원하는 에어컨과 전자레인지는 보물섬 상점에서만 판매를 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말레꼰 기차를 타고 보물섬 상점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역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습관적으로 상점을 한 번 휙 하고 돌아본 후 나는 카운터로 갔다. 카드와 신분증을 꺼내었다. 에어컨을 먼저 계산했다. 카드로 결제한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789달러. 치이이이익. 띵똥! 카드 영수증이 쫘악 올라옴과 동시에 핸드폰에 결제 알람이 울렸다. 곧이어 전자레인지도 결제를 했다. 다시 한번 시원하게 치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카드 영수증이 올라왔고 알람이 울렸다. 띵똥!


이 글의 서두 부분에서 달러 상점에서 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고 했는데 나는 파나소닉 에어컨과 전자레인지를 구입하면서 얼마의 이득을 보았을까? 에어컨은 USD789(962,580원)였고 전자레인지는 USD115(140,300원)였다. 쿡(CUC)으로 구입을 할 때에 비해서 에어컨은 23,670원을 전자레인지는 3,450원을 절약하게 된 셈이었다. 총 절약금액은 27,120원으로 배달비 15,000원을 제하고도 12,120원(약 USD 10)이 남게 된 것이었다.


내가 계산을 하는 동안 남편은 지난번에 이 상점에 왔을 때 알아두었던 오토바이 택시 기사님께 전화를 하고 있었다. 15분 후에 도착하신다고 했다. 음 좋았어! 남편은 상점 밖에서 물건과 함께 나는 시원한 상점 안에서 택시 기사님을 기다렸다. 한국과 달리 이 곳에서는 물건을 구입한 후 배송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서 차량이 없으면 큰 물건은 살 수도 없다. 훗.


잠시 후에 택시 기사님이 도착하셨다. 마차같이 생긴 이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를 변형해서 만든 택시였다. 짐 옮길 때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자동차 가격이 아주 비싼(소나타 중고가 육칠 천만 원, 새 차는 일억 정도가 된다고 들었다. 올드카는 사천만 원 정도면 구입을 하는데 수리가 장난이 아니어서 사는 순간 골칫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쿠바에서는 오토바이 택시, 자전거 택시를 비롯해 특이한 교통수단이 다양하게 있어 그것들 보는 재미,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는 짐칸에 앉아서 박스가 떨어지지 않게 잘 잡았다. 그리고 노련하신 기사님은 좁은 골목길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운전을 잘하시며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 주었다. 연세가 좀 있으신 기사님은 남편을 도와 에어컨 상자를 우리 집 문 앞까지 배달해 주셨다. 허리도 안 좋은 남편이 혼자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데 기사님이 도와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수고비를 따로 드렸더니 좋아라 하셨다.


그 날의 교통수단








이렇게 TV를 제외한 가전제품을 다 사고 나니(특히 에어컨) 아주 큰 숙제 하나를 끝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상자들을 나르느라 온 몸이 땀벅벅이 되었다. 그래서 상의를 벗고(이 곳은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남자들이 집에서 상의는 잘 입지 않는다) 둘이 의자가 될 만한 곳에 대충 앉았다. 그리고는 공사 현장에 있는 삼성 냉장고를 열어서 맥주를 꺼내었다. 짠! 이럴 때 보면 작년에 이 냉장고를 잘 산거 같기도 하다. 하하


이제 가전제품 쇼핑을 끝냈으니 남은 게 무엇일까? 이왕 쇼핑 시작한 거 뽕을 한번 뽑아봐야지!

자, 또 살 게 뭐가 있을지 한번 찾아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3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