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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11.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9화

마스크를 사수하라


저녁 일곱 시부터 통금이 시작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에 남편이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지난 육일 동안 벌금 낸 사람이 몇 명인지 알아?”
“(대수롭지 않게) 몰라, 몇 명인데?”
“삼천 이백 명이래.”
“(깜짝 놀라며) 뭐? 삼천 이백 명?”
“응 자기, 계산기 꺼내서 이천 곱하기 삼천 이백 좀 해봐.”
“알겠어, 잠깐만!”


핸드폰을 가져와서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육백사십만이었다. 한국돈으로 환산을 해 보았다. 삼억삼천만 원이 좀 넘었다. 그 금액을 확인하고는 놀래서 내가 말했다.


“자기, 이거 엄청난데? 그런데 쿠바 사람들이 돈이 어딨어? 원래도 없지만 코로나 때문에 일을 못해서 지금은 돈이 아예 없을 텐데. 그럼 돈 없는 사람들은 벌금 못 내면 어떻게 해?”


“그런 사람들은 감옥으로 가지. 그리고 감옥에 가면 건설, 농사, 숯 땔감(나무를 쪼개어 만드는 쿠바의 식물성 석탄은 품질이 아주 뛰어나서 수출을 한다) 업무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하게 될 거야.”


쿠바 정부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진자 수(두 자릿수)를 제대로 잡아보겠다며 아바나에 특수부대까지 푼 상태였다. 그런데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놀라움은 잠시 뿐, 내 눈 앞에 보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평온한 말레꼰 바다와 푸른 하늘이라 실감이 나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제 내 눈앞에서 발생한 일을 보기 전까지는.








통금 이후 두 번째 외출이었다. 외출을 한 지가 일주일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보물창고를 열어보니 열 개 있었던 정어리 캔이 세 개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서 달러 상점을 가야겠다고 남편에게 말을 하였고 어제 아침에 함께 장을 보러 가기로 한 거였다. 약발이 좀 떨어졌는지 요새는 집에만 있는 게 마냥 신나지만은 않아서 장 보러 간다는 핑계로 한 번씩 콧바람을 쐬면 기분이 좋아졌다. 여섯 시에 일어나 블로그에 감사편지를 쓰고는 브런치도 한번 둘러보았다. 다 들 별일이 없었다. 남편이 만들어 준 빵을 먹고는 외출 준비를 하였다.


어제도 여느 날처럼 집에서 나와 말레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았을 때였다. 건너편 도로에서 천천히 오던 경찰차 한대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러자 남편이 나에게 뭐라 뭐라고 말을 했는데 마스크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경찰차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리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키가 크고 마른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곱슬머리의 젊은 남자가 갑자기 도로를 건너더니 마치 자석처럼 경찰차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걸어가는 동안 두 명의 경찰이 차 안에서 나왔다. 청년이 도착하자 한 명의 경찰이 그 남자의 팔을 뒤로 해서 수갑을 채우더니 그대로 차에 태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경찰들도 모두 차에 타자 다시 차가 움직였다. 그제야 남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저 남자 담배 피우다가 걸렸어. 어떻게 해…” 이 말이었다. 


그 청년은 우리 맞은편에서 마스크를 내려서 턱에 걸고는 담배를 피우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동안 이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구월 일일부터는 그러면 안 되었다. 보름 간의 통제 기간 동안에는 어떤 경우가 있어도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올바르게 착용을 해야 한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 마스크를 잠시 내리는 것도, 이 청년처럼 담배를 피기 위해서 마스크를 턱에 걸어 두는 것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경찰 눈에 띄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경찰 눈에 띄는 순간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경찰차에 타야 한다.


그 청년이 지나가던 경찰의 눈에 띄어 경찰차에 타고 떠나가기까지 일분이 걸렸을까? 너무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나는 얼얼했다. 그들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냥 서로의 눈이 마주쳤고 경찰이 신호를 보내자 청년은 이미 죄인인 걸 시인이라고 하듯 순순히 경찰차로 다가갔고 그런 그에게 경찰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한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떠나는 경찰차를 바라보다가 “가자, 자기야!”라는 남편의 말에 시선을 거두고는 앞을 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놀래서 어이없는 한 숨만 쉴 뿐이었다. 경찰차에 타기 전에 ‘미란다의 원칙’을 고지한다거나 그런 자비는 이 곳에 없었다. 남편이 며칠 전에 한 얘기가 또 생각이 났다.


“자기, 요즘은 경찰이 말도 안 한대. 그냥 걸리면 다 잡아간대.”


그 청년이 너무 불쌍했다.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담배를 피운 것뿐인데 이제 그는 경찰서에 가서 열흘 내로 벌금 이천 쿱(십만 원이 좀 넘음)을 내거나 돈이 없으면 감옥에 가서 세 가지의 노동 중 한 가지를 택해서 해야 할 것이다. 하늘도 바다도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로운데 이런 무서운 광경을 보고 나자 사뿐했던 발걸음에 어떤 무게감이 실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분위기를 바꾸려고 남편이 말했다.


“자기, 갈리아노 집에 가 볼 거야?”
“응, 근데 오는 길에 가면 안 돼?”
“안 돼, 갈려면 지금 가야 해.”
“알겠어. 그럼 먼저 들렀다가 상점으로 가자.”


우리는 공사하는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영업을 하지 않는 어느 식당의 정원에 호박 덩굴이 가득 채워져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봐서인지 너무 반가웠다. 게다가 군데군데 보이는 노란 호박꽃도 참 예뻤다. 초록 초록한 호박잎들과 어여쁜 꽃들을 보니 조금 전의 살벌함은 이미 나를 떠난 듯했다. 다시 기분이 밝아졌다.


‘어머, 호박이 여기에 이렇게나 한가득 있었어? 너무 이쁘네. 그런데 왜 지금까지는 못 봤던 거지? 그리고 호박은 어디 있을까?’


한참을 보아도 열매는 꽁꽁 숨었는지 누가 벌써 따 가지고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열매가 보이지 않자 우리는 다시 갈 길을 재촉했다. 공사 중인 아파트 건물 앞에서 옆 집 할머니와 삼층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서른일곱 개의 계단을 올라 공사 중인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며칠 전에 새로 한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고 아닌 것도 있었지만 일단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남편에게 말해 주었다. 잠시 그 집에 있다가 다시 나와서 달러 상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줄들은 여전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하고 있었다. 목표 상점에 도착을 했다. 시계를 보니 열 시였다. 예전에 비해서 줄이 좀 긴 것 같아서 한숨이 살짝 나오긴 했으나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설마 이주 전 다른 상점처럼 세 시간을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남편과 줄을 섰다. 그런데 줄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드는 듯했다. ‘오, 이대로면 한 시간 정도면 들어가겠는 걸?’이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그늘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높디높은 습도로 인해 등짝뿐만 아니라 온 몸이 땀으로 젖어들기 시작했고 마스크 안에서도 땀이 흐르는 느껴졌다. ‘조금만 기다리면 들어갈 수 있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줄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줄이 줄어들지를 않았다. 시계를 보니 줄을 선 지 두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갑자기 저 앞 길 중앙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러 상점 줄 담당인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꽤나 화가 난 듯했다. 그리고 목에 자신의 직함이 적힌 이름표를 걸고 있는 줄 담당 아주머니는 이들을 진정시키려는 것 같아 보였다. 이곳에서 종종 보는 일이라 나도 남편도 보통은 신경을 쓰지 않는데 웬일인지 남편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하려는 것이었다.


마침 상황을 파악한 남편이 그 무리에 합류를 해서는 줄 담당 아주머니에게 리스트는 대체 어디에 있으며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냐며, 왜 신분증도 없냐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흥분한 상태였다. 조금 후에 남편은 상점 앞 쪽에 몇 명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더니 거기에서도 무슨 말을 하면서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몸짓을 하였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몹시 궁금했다. 남편이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물어보았다.


“자기,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이러는 거야?”


그러자 남편이 상황 설명을 하는 데 흥분을 한 상태여서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자기,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말해봐.”


그제야 남편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저기 흰 티 입은 남자 보이지?”
“응, 저 남자가 아까 이 아줌마들이랑 얘기를 하던데?”
“맞아, 저 남자가 사람들한테 자신이 경찰이라며 리스트가 있다고 하고는 이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도 늦게 온 다른 사람들을 상점 안으로 들여보냈어.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내가 리스트를 보여달랬더니 리스트가 없대.”

“근데 리스트가 왜 필요하지? 사람들이 여기 줄을 잘 서 있는데.”

“내 말이 그 말이야. 내가 또 그 남자에게 당신은 경찰인데 복장이 왜 그러냐고 하자 사복경찰이라고 거짓말을 하더라고. 딱 봐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 그 남자한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신분증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거야. 그러면서 어제 이 상점에 와서 못 들어간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낸다고 하면서 저 옆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낸 거야. 줄 세우는 아주머니들이랑 짜고 저 사람들한테 돈 받고 들여보내 준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 어떻게 경찰도 아니면서 사람들을 상점 안에 들여보내냐고!”

“헐, 얼마나 받고 들여보내 준 거야?”

“십쿡 받아서 오쿡은 흰 티 입은 남자가 가지고 나머지 오쿡은 줄 세우는 아주머니들이 나눠 가졌을 거야.”

“엄청난데?”


남편 얘기를 들어보니 흥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아침부터 일찍 와서 세, 네 시간씩 줄을 서고도 못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억울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나도 포함해서) 한 시간을 넘게 경찰도 아니고 아무 권한이 없는 일개 사기꾼이 거짓말로 금방 도착한 사람들을 돈 만 삼천 원씩 받고 상점으로 먼저 들여보내 줬으니 말이다. 코로나 이후에 생겨난 일종의 신종 사기 수법 중 하나였다. 그러니 남편은 이런 건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정의의 사도로서 역할을 단단히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서 있는 줄 외에 상점 건너편 그늘에 줄이 하나가 더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그곳에 도착을 하자마자 흰 티를 입은 남자와 줄 세우는 아주머니의 안내에 따라 정상적으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제치고 상점에 먼저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스무 명 정도가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한 번에 네 명씩 들어가니까 다섯 턴이나 돈 것이었다.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 줄이 줄어들지 않더니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간혹 연세 드신 분이 양해를 구하면 먼저 들여보내 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줄이 두 개인 경우는 나도 처음 보았다. 그래서 아침 여덟 시 반부터 와서 줄을 서 있던 아주머니들이 부당함에 항의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쿠바는 마초 사회라 힘이 센 남자나 엄청 대가 센 아주머니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지 않고는 일의 진전이 없다. 그리고 어제 그 자리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더랬다. 그런데 젊고 덩치가 큰 남편이 나서서 하나씩 묻고 따지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작정을 했는지 이 사건에 완전히 개입이 되었고 나는 약간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런 남편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사람도 별로 없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말레꼰에는 경찰차가 밤낮으로 다니면서 이 복잡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왜 경찰의 그림자조차 보이지가 않는 거지? 뭔가 이상했다. 보통 달러 상점에는 경찰이 와서 줄을 관리를 하는데 어제는 그 길에 경찰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목소리를 한 번 내었다. “대체 경찰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경찰 없어?” 남편은 계속해서 그 남자를 쥐 잡듯 잡고 있었다. 남편은 그 남자가 사기를 치고 있는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때 경찰차 한 대가 천천히 도로를 가로질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경찰차로 향했다. 곧이어 경찰차가 도로 한쪽에 서더니 경찰들이 차에서 내렸다. 경찰은 무슨 소식을 듣고 온 것일까? 이제 일이 해결이 되는 걸까? 좀 전까지만 해도 적대감을 느꼈던 경찰이 갑자기 아주 반가운 존재로 변해 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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