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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12.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10화

정의는 살아있다


(전 편에 이어진 글입니다.)


경찰이 차에서 내리자 검은색 오토바이 헬멧을 손에 든 키가 자그마한 남자가 흰 티를 입은 논란의 주체인 남자를 경찰에게로 데려왔다. 흰 티를 입은 남자는 경찰을 보자마자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가짜 리스트 같은 것이었을 테다.


경찰은 무심한 듯 그 남자의 핸드폰을 보는 듯하더니 그에게 손을 등 위로 모으라고 명령을 하였다. 그런데 남자가 손을 등 뒤로 가져가는 듯하더니 다시 앞으로 빼돌려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 보려는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저 남자는 왜 빨리 경찰차에 안 타고 뭘 자꾸 보여주는 거야?’라는 듯한 표정으로 어.. 어... 소리만 내었다.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고 빨리 일을 끝내고 싶은 경찰은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그에게 다시 명령을 했고 결국 남자는 양 손을 등 뒤로 모았다. 경찰이 수갑을 채웠다. 사건이 종료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쿠바에 와서 내가 이런 사건에 이 정도로 개입이 되어 본 적도, 남편이 밖에서 이렇게 흥분하며 참여한 적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쿠바섬에 발을 들인 지 두 달이 지났을 때부터 남편은 나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기, 쿠바에서 잘 살려면 침묵해야 해.”


쿠바에서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뿐이고 남편이 하는 말은 모두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인 걸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남편이 하는 말을 철저히 가슴 깊이 새겨 들었다. 어디 가도 한 오지랖 하는  나의 성격상 그저 침묵하고 눈의 띄지 않게 사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했다. 그래서 그동안 어떤 문제에도 개입을 하지 않았고 조용히 잘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나는 이 사건을 뒤에서 지켜만 보았지만 남편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 터라 이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예전과는 확실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찰이 정의의 편에 서서 이 사건을 잘 마무리를 하는지에 대해서 일종의 기대치가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정의가 승리했고 경찰이 그 남자를 잡아가자 나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준 경찰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박수가 절로 나왔던 것이었다.


내가 박수를 치자 나와 같은 마음으로 도대체 경찰이 저 흰 티를 입은 남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함께 박수로 마음을 표현했다. 남편도 “그렇지, 바로 이거야!”라고 말하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경찰은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경찰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표정을 고수했다. 모든 게 귀찮고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린 경찰은 아침부터 와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린 많은 이들을 힘 빠지게 한 남자를 태우더니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것으로 이 문제는 일단락 지어졌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들어보니 흰 티를 입은 남자를 경찰에게 데리고 간 검은색 오토바이 헬멧을 손에 든 그 남자는 경찰에게 연락을 한 사복 경찰이었다. 그는 헬멧을 들고 지나가던 길에 남편이 큰 목소리로 흰 티 입은 남자에게 취조를 하듯 묻는 걸 보고는 사건에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질문에 남자가 대답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보고는 사기꾼임을 알아차리고 경찰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었다.


남편 친구의 말로는 그가 일을 하고 있는 올드 아바나에도 같은 사건이 발생을 했다고 했다. 경찰도 아닌 남자가 리스트가 있다며 돈을 받고 사람들을 먼저 상점으로 들여보내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경찰이라는 말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당하고만 있는 것이다. 이 곳 사람들의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큰 것을 사기꾼들이 악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달러 상점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상점에 적용이 된다고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기꾼들은 틈새시장 공략을 참 잘도 한다. 그리고는 짧은 시간에 한몫을 단단히 당긴다. 그들도 마지막 종착역이 감옥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나라에서는 감옥에 가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쿠바에는 도둑도 많고 사기꾼도 많은 것이다. 근본적인 시스템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일들은 매일 이 곳 저곳에서 반복이 될 것이며 돈 없고 힘없는 인민들의 삶은 계속해서 고달파질 것이다. 


경찰이 사라지고 논란의 중심이었던 문제가 해결이 되자 두 개였던 줄이 하나가 되었고 사람들은 다시 줄을 정리하며 상점으로 들어갈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남편은 마치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이라도 한 듯 몹시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자기 최고!”를 말하며 엄지 척을 해 주었다.








왁자지껄했던 세상이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내 뱃속에서 왁자지껄 난리가 났다. 시계를 보니 열두 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내 손바닥보다 작은 빵 한 조각을 먹고 나와서 내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건에 관여하고 났더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버렸다. 너무 허기가 져서 서 있기가 힘들었다. 열 시에 도착한 나도 이런데 여덟 시 반에 오셔서 지금까지 기다리신 연세 드신 아주머니들은 굉장히 많이 힘드실 것 같았다.


내가 기댈 곳은 역시 남편밖에 없었다. 남편에게 죽어가는 목소리로 “자기, 나 배고파.”를 연발하며 SOS를 청했다. 그러자 슈퍼맨 같은 남편이 저 아래 코너에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상자 하나를 사 가지고 왔다. 닭튀김이라고 했다. 남편이 닭튀김을 사 온 가게는 나도 코로나 전에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예전에 팔던 닭튀김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닭튀김이었다. 원래 이 가게에서 판매를 하던 큼직한 닭다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조각들을 길쭉하게 튀겨놓은 것이었다. 마치 한국에서 먹던 오징어 튀김 같았다. 오징어만큼 길지는 않았지만 그 모양이었다.


가격은 예전과 동일한데 양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배는 많이 고픈데 음식을 파는 곳이 몇 군데가 없으니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닭다리든 닭날개든 상관이 없었고 무엇이로든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튀김 한 점을 집어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입 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마스크를 다시 올렸다. 튀김을 씹을 때마다 천 마스크가 입에 붙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다행히 거리에 경찰이 한 명도 없어서 편하게 먹을 수가 있었다.


배가 고파서 먹긴 했는데 고기가 씹히는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튀김옷만 씹어먹는 것 같았다. 나중에 남편이 말했다. “자기, 그거 닭고기가 아니라 돼지고기였대!” 돼지고기? 노노, 돼지고기의 육질이 아니었다. 그리고 요즈음은 닭도 구하기가 힘든데 돼지고기는 아예 보이지가 않기 때문에 돼지는 확실히 아닌 듯했다. 앗, 그럼 뭘까? 궁금했지만 신경을 끄기로 했다.


한참 사람들이 흰 티 입은 남자 때문에 웅성웅성할 때 천둥소리가 쿵쾅쿵쾅 났었다. 이 곳의 천둥소리는 엄청 크고 요란한데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놓고도 비가 안 오고 계속 맑을 때가 종종 있었다. 크고 요란한 천둥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그 소리가 꼭 쿠바 사람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


하늘을 보니 해도 있고 맑은 하늘이라 그냥 지나가는 소리인가 보다 했는데 내 예상을 벗어나 버렸다. 튀김을 다 먹고도 다리가 아파서 벤치에 계속 앉아있었는데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두 방울 떨어지더니 점점 빗방울 수가 많아졌다.


내가 먼저 벤치에서 일어나 건물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 후에 남편도 따라왔다. 곧이서 굵은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편도 나도 우산이 있었던지라 크게 걱정은 안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기라 비가 와도 잠시 확 쏟아졌다가 금세 개는 수준이어서 곧 그치겠지 싶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은 모두 비껴가 버렸고 비는 아까보다 더 세차게 쏟아졌다.


줄을 선 지 세 시간 하고 십오 분이 지났다. 이제 앞사람들이 상점에 들어가고 나면 우리 차례였다. 우리가 장을 보고 나오면 비가 그치길 바랬다. 줄을 선 지 세 시간 반 만에 비를 맞으며 상점 안으로 들어갔고 상점 문 안쪽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쿠바인들의 신분증을 검사하였다.


외국인은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지만 쿠바인들은 자신의 거주지 안에 있는 상점만 이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남편에게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남편이 묻고 따지는 모습을 보고는 겁에 질려서 그런 것 같다며 남편이 귀띔해 주었다. 게다가 이 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모두 경찰에게 잡혀 간 그 남자와 한 패거리였다.


카트에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상점에만 네, 다섯 번을 왔던 지라 새로울 게 없었다. 우리가 잘 먹고 꼭 필요한 것들만 카트에 담았다. 이번에 이 상점에 온 목적은 참치와 정어리 캔이어서 세 가지 종류(정어리는 두 종류)를 열 개씩 담았다. 찰진 둥근 쌀도 이미 사놓은 게 많지만 사람 일이란 어찌 될지 모르니 1킬로짜리 네 개를 담았다. 이 상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쿠키는 슬프게도 다 팔렸는지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래서 다른 맛의 쿠키들을 몇 개씩 담고 남편이 좋아하는 주스와 요거트도 담았다. 최근 들어 장 본 것 중에서 양은 가장 적었다. 기다리기는 가장 오래 기다렸지만.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뻥 뚫린 듯 우리가 상점에 들어올 때 보다 비가 더 세게 쏟아붓고 있었다. 계산을 하고 물건을 가방에 다 담았는데 비 때문에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 상점 안에 잠시 서 있었다. 그런데 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우리(남편과 나 이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다)가 모두 나가야지 다음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다며 나가 줄 것을 부탁했다.


결국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 손에는 가방을 메고 나와서 빠른 걸음으로 빗 속을 걸었다. 조금 걷자 비를 피할 곳이 나왔다. 그곳은 약국 앞이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 서너 명이 서 있었다. 남편 옆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는데 잠시 후 남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젊은이들보다 노인들께 친절한 남편은 할아버지의 말씀에 대답을 하더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참을 할아버지와 둘이서 얘기를 하더니 내 옆에 있는 아저씨도 어느 순간 대화에 가담하면서 남자 셋이서 신이 난 듯 쉬지 않고 얘기를 하였다.


나는 남편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쏟아지는 비를 감상하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건너편 처마 밑에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시는 아저씨도 지루하신지 마스크를 얼굴 전체에 덮었다가 눈만 보이게 했다가 하면서 나를 웃게 하셨다. 간혹 옷이 홀라당 젖은 채로 비 속을 뚫고 가는 용감한 이들도 있긴 했다. 나는 속으로 “나오면서 창문을 다 닫아놓고 나와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이 정도 비면 세탁실 창문 틈으로 물이 꽤나 들어와 있겠다는 추측도 해 보았다.


얼굴을 마스크로 가려버린 건너편 아저씨


남자 셋이서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를 얘기를 하였더랬다. 두 시간 반 동안 쏟아지던 비가 조금 잦아들었고 할아버지가 먼저 작별을 고했다. 세 명은 그 새 무슨 끈끈한 정이라도 나누었는지 헤어짐이 많이 아쉬운 듯했다. 다른 아저씨와 우리도 집에 가려고 나와서 같은 방향으로 잠시 함께 걸어갔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가셔야 했고 남편은 아저씨와 다시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두 시간 반 동안 이 정도의 폭우가 쏟아지는 일은 많지 않았던 터라(허리케인, 태풍 제외) 일단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는 게 관건이었다. 이미 나의 운동화와 양말은 모두 흠뻑 젖었지만 나는 최대한 빗물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고 조심 또 조심하였다. 가방이 많이 무거운 지 남편은 가던 길을 몇 번을 멈추며 가방을 오른쪽, 왼 쪽 바꿔가며 매었다.








드디어 집에 도착을 했다. 오전 9시 20분에 집에서 나왔는데 도착하니 오후 3시 50분이었다. 한 상점에 다녀오는 데 6시간 30분이 소요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달러 상점이 생긴 후 나는 시간에 좀  관대해지기로 한 터라 이렇게 하루가 다 가버린 게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할 만한 에너지가 나에게 남아있지는 않았다. 몹시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고 얼른 씻고 쉬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다 젖어버린 신발과 양말을 벗어서 한 곳에 말려두고는 세탁실에 가 보았다. 생각보다 물이 많이 새어 나오지는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직행하였다. 오전에 줄을 서 있었을 때에는 더워서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렀는데 비가 오면서 기온이 뚝 떨어진 탓에 이제는 약간 쌀쌀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였다. 몸이 노곤노곤 해지면서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씻고 바로 잘 수는 없었다. 배가 몹시 고픈 남편을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남편이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밥하기를 귀찮아하는 걸 눈치채고 쉽게 빨리 할 수 있는 파스타를 얘기한 것이었다. 나는 오케이를 외치며 남편이 샤워를 하는 동안 후다닥 버섯 초리소 로제 파스타를 만들어 내었다. 남편이 2/3를 먹었고 내가 1/3을 먹었다. 우리의 공식 첫끼이자 나의 마지막 끼였다.(남편은 밤에 알아서 또 먹었을 테다)



식사를 하고 두 시간 동안은 어떻게든 앉아서 견디었다. 실감 나는 상태에서 글을 쓰고 싶었으니 뇌가 멈춘듯하여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럴 때에는 그냥 푹 쉬는 게 다음을 위해서 좋을 것 같았다. 시간에 미련을 잠시 접었다. 결국 그 날 하루는 상점 하나를 다녀온 것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냥 상점 하나가 아니었다. 참으로 다이내믹했던 이야깃거리가 한가득인 날이었다.


다음 날 뉴스를 보니 전날의 폭우로 아바나 곳곳에 물이 범람해서 난리가 난 사진들이 여기저기에 실린 것을 보았다. 그 사진들을 보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집에 온 게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사진 들 중에서 한 남자가 홍수가 난 곳에서 활짝 웃으며 튜브를 타고 놀고 있는 게 있었다. 남편과 함께 그 사진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래 여기는 쿠바였어.


사진출처  Cubanos por el m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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