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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20.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11화

쿠바가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언니, 형부랑 잘 지내지?


아주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게 된 동생이 씩씩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럼, 우린 늘 잘 지내지.


나 또한 밝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곧이어 그녀의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언니는 아직도 형부가 그렇게 좋아?


너무나도 신기하다는 듯 나에게 묻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그만 하하하 웃고 말았다.


응, 난 조단이 너무너무 귀여워. 그리고 매일 조금씩 더 좋아.


뭐라고? 형부가 귀엽다고? 우와아아아, 언니 정말 너무 신기하네. 언니, 내가 알던 그 린다 맞지?



(중략)



우리는 마치 누가 더 크게 웃는지 내기라도 하듯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우렁차게 한껏 웃어대며 쫑알쫑알 대화를 이어갔다. 코로나 이후 첫 통화라 그동안의 근황 이야기부터 해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년에 만날 것까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그런데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요즈음 내 기분이 참 좋아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생에게 이 곳에서의 힘든 생활 몇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그런 것들이 이제는 재미있다고 했더니 “뭐, 그게 재미있다고? 힘든 게 아니고? 언니, 이제 득도했네. 득도했어!”라고 해서 우리는 또 한바탕 호탕한 웃음을 자아내었다.



내가 정말 이제 득도를 한 것일까?



’ 아니야, 쿠바에서 2 만에 득도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어. 여긴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지. 아마도 요즈음에 관광객이 없다 보니 길거리에 각종 삐끼들이나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어서  마음에도 평화가 생겨나서 그런  거야.’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요새 기분이 좋고 긍정적인 이유가 아무래도 얼마 전에 갔던 달러 상점 때문인 듯했다. 난 그럴 만큼 충분히 단순하니까.








7월 20일에 쿠바 전역에 달러 상점이 생긴 이후 아바나에 있는 달러 상점은 저 멀리 있는 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다 갔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10 1일이 되자 9 한 달 동안 실시했던 통금이 해제가 되었고 그로부터 이틀 뒤인 10 3일부터는 대중교통이 재운행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바로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에 있는 대형 달러 상점으로 출동을 했더랬다. 버스에 오르자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소리에  마음도 덩달아 신나기 시작했다. 거의   만의 버스였다.


두 달만의 버스 탑승 - 표정과는 달리 매우 신남


목표한 달러 상점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혹시나 다른 동네에 무슨 새로운  있을까 싶어서 한번 들러 보았다. 그리고는 유명한 상점 앞을 지나는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엄청난 인파가 빠글빠글 모여있었다. 뭐지? 하고는 궁금해서 건물 안에 들어가 상점 내부를 들여다보았더니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에어컨이 상점 안을 한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에 내가 구입을  파나소닉 에어컨보다 200불이나 저렴했고 올해  에어컨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이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있는 것이었다.


도로 양쪽으로 에어컨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브랜드보다 가격이 중요한 곳이라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였지만 조금이라도 저렴한 에어컨이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정당하게 살 수 있게 된 게 괜히 감사하기까지 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동네를 휘리릭 돌아보고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번 좌석버스  앞에는 손세정제를 뿌려주는 아저씨가 앉아서 버스에 타는 승객    명마다 손에 세정제를 뿌려주고 있었다. 정말 대단했다. 들어나봤나? 버스 안에서 손세정제를 뿌려준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그 버스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탄 후 집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여 만에 목표한 달러 상점 앞에 도착을 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역시나 길게 늘어져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예전에는 한 시간 남짓 줄을 서면 되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카드 발급을 많이들 받아서인지 거의 세 시간가량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상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 들어간 그곳에는 예전에 비해서 특별한 것들이 딱히 없었다.


이게 뭐야? 이러면  되잖아?’ 이미  번을 갔던 곳이고 특별한  보이면 그동안 죄다  왔기에 딱히 감동스러운  눈에 띄지    나는  시간이 약간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기분을  시켜준 것이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치즈였다. 쿠바에  이래로  곳에서 치즈라고 함은 여지없이 고다 치즈였고  고다 치즈마저도 코로나 기간 동안에 동이 나는 바람에 남편이 치즈를 사려고 줄을 섰다가 새치기를  사람과 심하게 싸울 뻔한 적도 있었더랬다.


그런데 그 상점에는 고다 치즈는 물론이고 쿠바에서 처음으로 보는 모짜렐라 치즈에, 까망베르, 브리 치즈 그리고 향이 너무 진해서 나는 별로 선호를 하지 않는 블루치즈까지 있었다. 모두 덴마크산 치즈들이었다. 그래서 블루치즈를 제외한 치즈들을 종류별로 하나씩 카트에 담아보았다. 치즈를 담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내 앞에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남편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남편의 사촌인 또 다른 조단이었다.


원래는 다른 국영 상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상점이 내부 공사로 문을 닫아    즈음부터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어린 딸이 있는 그를 위해서 고다 치즈  덩이를 카트에 넣었다. 그리고 함께 줄을 서서 계산을 하려는  카드 단말기에 문제가 생겨서 결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상점은 아주 커서 치즈와  세션이 따로 있었고 계산을 따로 해야 했다. 작동이  되면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지. 그렇게 우리는 카드 기계가 작동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고  이십  지난 후에 결제를  수가 있었다.


   상점에서는 세션별로 계산을 할 때마다 카드기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을 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방해라도 하듯 말이다. 나중에 남편으로부터  상점의 상황을 설명 들으며 카드 기계 오작동 의도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이건  프로 믿어야 할지 말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튼 카드기의 실시간 오작동으로 인해 상점에 들어갈  기다린  시간에 세션별 계산을 하기 위해서 기다린 것 까지 하면 그날 우리는 총 네 시간 이상을 기다리는데 소비를  셈이었다. 그래도 치즈와 코코넛 크림을 얻었는지라 크게 불만은 가지지 않았다.


그 날의 득템 - 각종 치즈와 코코넛 밀크와 크림(모두 처음 본 것들)


특히 3킬로나 되는 모짜렐라 치즈를 듬뿍 잘라서   저녁에 파스타를   아낌없이 잘라 넣었더니 파스타를 먹을 때마다 쫘악쫘악 늘어나는 치즈에  남편과 나의 동공은 확대가 되었고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한참을 머물러 있었더랬다. 모짜렐라 치즈는  덩이만 판매를 해서 반을  잘라 다음날 남편을 통해 시댁으로 배달을 하였다. 그리고 남편은 쫙쫙 늘어나는 모짜렐라 치즈와 구아바 쨈으로 가득한 버거를 만들어 아침마다 “자기, 배고파!” 외치는 나의 입과 배를 행복하게 채워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10월 8일 목요일, 정전이 되던 오전부터 우리는 외출을 하였더랬다. 오랜만에 올드 아바나에 가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고 예전부터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가서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쿠바 맥주 '크리스탈'을 마셔 보았다. 한 달 이상 금주를 하고 있던 나에게 그 날 그 순간 그 맥주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마냥 나의 갈증을 말끔히 해소를 해 주었다. 더울 때에는 정말 맥주 만한 게 없지. 게다가 구하기도 힘든 쿠바 맥주 '크리스탈'이 아닌가!


이런, 크리스탈 사진이 잘려져 버렸다! 크리스탈 맥주를 마시기 위해 반드시 시켜야 했던 샌드위치


예전에는 쿠바의 상점마다 맥주가 그렇게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쿠바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노동을 하고   온몸을 깨워 일으키는 시원한 맥주로 노동을 마무리했다는데. 어느 날부터 쿠바에서 쿠바 맥주를 마시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맥주를 만드는  필요한 재료 수급에 문제가 발생을 했고 그로 인해 크리스탈 생산 공장 하나가 문을 닫으면서부터였다고 했다. 그래서  후로 상점에서 파는 맥주들은 대부분 수입맥주였고 쿠바 맥주의 대표주자인 크리스탈이나 부까네로는 레스토랑이나 바에 가야 마실 수가 있는 '특별한' 것이 되어 버렸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어쩔 수 없이 배도 채운(마치 예전 한국의 호프집처럼 안주를 시켜야만 술을 마실 수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나와서 올드 아바나의 말레꼰 쪽으로 천천히 걸어보았다. 해지기 전에 은근한 빛이 내리고 있는 그곳의 모습은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잠시 벤치에 앉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만끽하기로 했다. 그 순간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우리 앞으로 말레꼰 기차가 멈추었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마치 지려고 하는 해를 잡으러 가기라도 하듯 말레꼰 기차는 해가 지는 쪽을 향해서 ‘딸랑딸랑소리를 내며 말레꼰을 따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낚시꾼들과 조깅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을 뒤로하며 우리는 말레꼰의 끝에서 끝까지 달려갔고 기차가 끝자락에서 돌기 전에 그곳에서 내렸다.  위에서 가장 빛이 나는 태양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는 해를 잡으러 달려가는 말레꼰 기차안에서


해가 말레꼰 바다 뒤로  넘어가 버리자 가로등이 떠나간 해를 대신해서 밤을 빛내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너편에 보이는  다른 불빛. 레스토랑이었다. 말레꼰 기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레스토랑은 락다운 기간 중에서도  닫아야  때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영업을 하고 있던 곳이었다.  전에 샌드위치를 먹어서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레스토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일인지 남편도 가자고 했다.


방역을 철저히 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레스토랑은 분위기도 맛도 가격도 아주 훌륭하여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관광지 아님) 그리고 그곳에서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노래를 하는 아저씨들을 만나게 되었다.


쿠바에는 식당이나 바를 다니며 노래를 불러주고 팁을 받아서 생활을 하는 무명 음악가들이 아주 많은데 코로나로 인해 그들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그분들을 보자  반가웠다.  날의 트리오 아저씨들은 예전 같았으면 무시했을 수준이었지만 코로나 이후에 처음으로 만난 악단들이라 기분 좋게 노래도 신청을 하였고 삥도 확실히 뜯기는 영광을 맛보았다.


세명이라고 팁도 세 배로 달라던 아저씨들(노래-Veinte años)


그렇게 오랜만에 남편과 내가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맛난 음식을 먹고 있던  시간에 TV에서는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다음  아침에 뉴스를 통해서 상세히 알게 되었다. 목요일 저녁에 발표한 새로운 정책이라는  그다음  월요일인 10 12일부터 쿠바가 ‘새로운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소식이었다.


너무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아직도 락다운 중인데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이게 말이 돼?라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 아바나는 제외였다. 그리고 아바나 이외에 코로나 확진자가 꾸준히 발생을 하고 있는 다른 두 개의 주도 함께였다. 그러면 그렇지. 아바나가 이렇게 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바나에도 변화는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락다운이 끝나면 해제 1단계 그다음 2단계를 거쳐서 3단계에 들어가고 최종적으로 봉쇄했던 국경을 열게 되는데 아바나가 월요일부터 곧바로 해제 3단계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쿠바의 공항들도 10 15일부터 모두 오픈을  거라고 발표를 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아바나 공항은 제외였다. 현재 이탈리아에  바이러스 확진 수가 매일 많다고 하는데 쿠바 관광객들  선두주자가 이탈리아인들과 스페인인들 인 데다 쿠바의  번째 코로나 확진자가 이탈리아 관광객 3명이었다 보니 아무래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안정을 찾아야 쿠바도 최종적으로 국경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대한 발표를  며칠  예정대로 쿠바의 많은 주들은 ‘새로운 일상으로 돌입하였고 아바나는 두 번째 락다운이 해제되었다. 그리고 해제 3단계가 시작된 다음날 우리는 항상 줄이 길어서 지나가기만 했던  다른 달러 상점에  보기로 하였다. 남편의 이모님께서  상점에는 모든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해서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모님의 말씀대로 그곳에는 모든 게 다 있을까? 설마 치약도?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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