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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24.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12화

‘울띠모’가 뭐예요?


https://brunch.co.kr/@lindacrelo/129

(이어지는 글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작년에 비해  더위가 좀 더 빨리 가시는 듯했다. 작년에는 11월 1일이 되어서야 여름이 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는데, 올해는 무언가 조급해진 걸까? 아니면 변덕을 부리는 걸 수도 있겠지. 해가 쨍쨍해서 조금만 걸어도 등짝에서 땀이 줄줄 흐르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몹시 불기라도 하면 반팔에 덜 가려진 몸이 오들 거리는 게 이 곳 날씨이니까.


그래서일까, 아침저녁으로만 선선했지 비가 오지 않는 낮 동안의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방심을 하는 사이에 내 피부는 금방 까매져버렸다. 코로나의 여파로 예전에 비해서 집에 있는 날이 훨씬 많았지만 누가 보면 마치 내가 매일 바닷가에 가서 선탠이라도 한 것처럼 내 몸은 까무잡잡하게 잘 익어가고 있었다.






락다운이 해제가 된 다음 날의 하늘도 여느 때처럼 맑고 파랬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 있는 말레꼰 위로 어린 학생들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들이 손을 뻗으면 마치 새하얀 작은 구름들이 손에 쏙 잡힐 것처럼 하늘도 구름도 낮은 날이었다. 그렇게 하늘이 예쁜 날 우리는 이모님이 말씀을 하신 ‘모든 것이 다 있다’는 달러 상점에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네 명이었음 비틀즈를 연상했을텐데


락다운 동안 대중교통이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많이 걷는 게 자연스럽게 되어 버렸다. 게다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와중에 가끔씩 외출을 하면서 햇볕을 쬐고 걷다 보면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몸과 마음이 활짝 깨어나는 듯하여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걷다 보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도 발견하게 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와 좀 더 가까워지는 듯하여 우리는 그 날 먼 길을 걸어서 가 보기로 했다.


햇살은 강했지만 공기는 상쾌했다. 집을 나와 걸으면서 처음으로 발견한 사실은 우리 동네 공원의 벤치들이 작년 아바나 건국 오백 주년에 재정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초록색의 벤치 한가운데에 새겨져 있는 500이라는 숫자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어머 자기야, 이거 봤어? 작년에 새로 설치했나 봐!” 아주 신기한 걸 발견이라도 한 듯 큰 소리로 남편을 보고 외쳤다. 그러자 남편이 다가와서는 벤치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걸었다.


‘500주년’ 이라고 적힌 동네 공원의 초록색 벤치


말레꼰을 따라 쭉 걷다 보니 저 옆쪽에 전망이 굉장할 것 같은 아주 멋진 고층 건물이 보였다. 그동안 그 앞을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한 번도 그 건물에 관심을 가져보지는 않았더랬다. 그런데 그날따라 남편이, “자기, 저기 한번 구경해볼래?”라고 하길래 좋다고 하며 건물 앞으로 가 보았다.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혹시 렌트를 하는 곳인지 물어보았는데 그 멋진 건물은 정부 고위간부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였다. 역시 전망이 끝내주고 튼튼하고 좋은 건물에는 높으신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게 맞다고 확인을 받으면 가슴 한쪽이 쓰려오는걸 왜일까?


남편도 나도 씁쓸한 미소를 거두고는 말레꼰을 벗어나 안쪽 동네로 걸어가 보았다. 사람들이 복잡 복잡한 그곳에서 작은 야자나무에 열린 색이 아주 고운 빨간 열매들을 보았다. 먹는 건 아니라고 남편이 말했다. 초록과 빨강의 조화는 언제 보아도 참 예뻤다. 게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파란빛은 그 둘과 멋들어진 조화를 이루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색깔이 초록과 빨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색이 저리도 이쁠까?!


천천히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해가 점점 강해져 왔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빵을 하나씩 먹고 집을 나섰건만 점심때가 다 되어가자 남편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어디서 밥 먹으면 좋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든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기 때문에 빨리 남편의 배를 채워주어야 했다.


잠시 후 우리 앞에 식당 하나가 나타났다. 코너에 있는 넓은 그 식당에서는 앉아서 먹지는 못하고 상자에 담긴 음식을 사서 가져가서 먹을 수가 있었다. 메뉴는 한 가지, 돼지고기 덮밥이었다. 상자 아래에는 꽁그리(congri)라고 하는 검정콩밥이 담겨있었고 그 위에 출레따(Chuleta)라고 하는 양념된 돼지갈비와 약간의 야채 그리고 고구마 한 덩이가 곁들여져 있는 쿠바의 대중 음식이었다.


쿠바의 길거리 식당이나 작은 픽업 가게에서는 마치 한국의 도시락과 같이 종이상자에 든 밥을 많이들 판매한다. 쿠바도 주식이 밥이다 보니 아래에는 밥(흰밥, 노란 밥, 검정콩밥 중 하나)이 담겨 있고 그 위에 닭고기나 돼지고기 둘 중에 하나가 놓인다. 그리고 한쪽 옆에 약간의 야채와 곁들이는 음식(고구마, 말랑가, 바나나 등)이 놓이면 완성이 된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곧잘 맞는 이 상자 밥은 밥의 양에 비해 고기의 양이 작다는 게 흠이라면 흠일테다. 하지만 한국돈으로 2,500원에 이 정도면 괜찮은 한 끼 식사가 충분히 될 듯하다.


옆에 보니 주스도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250원짜리 주스와 함께 2,500원짜리 상자 밥 하나를 구입했다. 그리고 식당 아주머니께 말했다. “아주머니, 포크 하나만 주세요!” 그러자 아주머니가 포크가 없다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에 남편이 또다시 물어보았다. 같은 대답이었다. “그럼 포크 말고 아무거나 밥 떠먹을 만한 게 없을까요?” 그녀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남편도 나도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곳은 작은 구멍가게가 아니라 아주 큰 식당이었고 건물 안 식당에서 음식을 만든 후 그것을 가지고 나와서 앞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포크가 하나도 없다니!


아주머니가 끝끝내 아무 도구도 없다고 하시자 결국 남편은 상자 뚜껑 일부 찢어서 숟가락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어야지! 먹기 전에 물티슈로 손을 깨끗이 닦고 손 세정제도 뿌렸다. 그리고 남편은 고기는 손으로, 밥은 종이 스푼으로 떠서 먹었다. 배가 몹시 고팠던 남편은 맛있다며 금세 상자를 비웠다. “자기, 이제 에너지가 200프로 채워졌으니 자기가 원하는 데는 어디든 다 갈 수 있어!”라고 하며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역시 사람은 배가 부르고 봐야 한다.


쿠바의 유명한 상자밥을 손과 종이 스푼으로 열심히 드시는 귀인님


근처에 큰 쇼핑센터가 하나가 있어서 우리는 그곳에 한번 가 보기로 했다. 주로 전자제품을 보러 가는 곳인데 혹시나 다른 새로운 게 있나 보려고 가 보았다. 일층 가전제품 숍에는 예전에 비해서 물건이 많이 빠졌고 손님도 없었다. 2층 가정용품 숍에도 특별한 게 없었다. 상점들이 가장 많은 3층에 올라가서 그동안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신발 가게에 들어가 보았다. 한국에서 사 온 아주 저렴한 나의 샌들 바닥이 홍해 바다 갈리듯 양 쪽으로 쫙 갈라져버려서 더 이상 신을 수가 없게 된 지가 꽤나 되었다. 작년에 너무 열심히 잘 신었던 탓이었다. 그래서 발이 편한 샌들을 하나 사고 싶어서 계속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곳은 스페인 브랜드의 신발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다른 신발 가게에 비해서 디자인이 깔끔하니 촌스럽지 않아 보였다. 그중에서 굽이 낮고 디자인이 심플한 샌들이 하나가 있길래 신어 보았다. 사이즈도 맞고 발도 편하길래 다른 쪽도 달라고 해서 양쪽을 신고 상점 안을 걸어 보았다. 쿠바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샌들을 발견했다. 너무 기뻤다. 그래서 계산을 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신어 버렸다.


늘 운동화만 신다 보니 그동안 발가락 미용에 각별한 신경을 쓰지 못했더랬다. 그래서 새로 산 샌들에 쏙 나온 내 발가락들이 약간 쓸쓸해 보였다. 집에 가면 발톱에 빨간색을 예쁘게 칠해주어야지, 하고 생각을 하고는 쇼핑센터를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샌들을 신고 외출을 한 지 일분도 안되어 한쪽 줄이 툭! 하고는 끊어져 버렸다. 하루 만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아주 놀라웠다. 다음날 샌들을 가져갔더니 같은 사이즈가 없어서 교환은 할 수가 없고 환불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난 교환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그 샌들은 딱 하루 나와 함께 하고는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하룻동안 함께해서 행복했어, 안녕!


말레꼰 앞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분쯤 걷자 낯익은 장소가 나타났다. 2018 12월에 쿠바에서 공식적인 혼인 신고를 하던 ,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대부님과 대모님을 모시고 혼인 신고  방문을 했던 레스토랑 근처였다.   원래는 말레꼰 바다 앞에 있는  같은 레스토랑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바다에서 물이 들어온다고 말레꼰 앞에 있는 모든 장소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갑자기 옮기게  레스토랑이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한 후 다 함께 걷다가 식물 장식이 아주 멋졌던 인상적인 예쁜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 앞을 다시 지나게 된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곳은 일반 주택 같지가 않았고 그렇다고 정부 건물 같지도 않았다. 혹시 호텔일까? 궁금한 마음에 남편이 문을 열고 “계세요?”를 외쳐 보았다. 한 남자가 나왔다. 내부 공사 중인 그곳은 룸 8개짜리의 부티크 호텔이었다.


리모델링 중인 방 하나를 보여주는데 내부가 아주 훌륭했다. 아주 유명한 쿠바 가수들이 뮤직비디오도 찍었다고 아저씨가 신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앞으로 관광객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탓에 여유를 가지고 내부 수리를 하는 듯했다. 아저씨에게서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듣고는 인사를 하고 나와서 다시 걸었다.


누가 봐도 고개를 한번은 돌릴만한 멋진 건물


남편 말로는 점점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한 건물 앞에 어른들과 아이들 스무 명 정도가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함께 줄을 서 있는 그곳은 아이스크림 가게 앞이었다. 그 건물을 돌자 건너편에 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헙, 설마?! 맞았다,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줄을 보니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자기야, 줄을 보니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그러니까 자기는 여기에 줄 서 있고 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줄 서 있을게. 이제 배도 좀 고프고 많이 더워서 난 아이스크림을 좀 먹어야겠어. 내 차례가 오면 전화할 테니 그때 뒷사람한테 말하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와. 알았지?”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조금 전에 아이들이 줄을 서 있던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에 도착해서 울띠모를 외쳤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번 외쳤다. “울띠모?”그러자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손으로 내 앞에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다. 할머니는 전화 통화 중이셨다. 전화를 끊으신 할머니께, 울띠모냐고 여쭤보니 맞다고 하셨다. 그제야 내 차례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쿠바에서는 어디를 가나 줄을 서는 게 아주 일상적이다. 그런데 햇은 쨍쨍하고 날은 더운 데다가 사람들이 아주 많다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한 줄 나란히 서기를 하기가 몹시 힘들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울띠모 시스템이다. 원하는 장소에 도착을 하면 울띠모(Último-마지막의, 마지막 사람) 혹은 울띠마 뻬르소나(Última persona-마지막 사람)를 외치며 마지막 사람과 그 앞사람이 누구인지 확인을 한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그늘에 가서 편히 서 있거나 줄이 아주 많이 길 경우는 뒷사람에게 자신이 앞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집에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 뒷사람에게 알리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오리고 한 것이었다.


그곳은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그리고 나는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는 처음이었다. 그 전에도 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럼 그동안 나는 어디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는 처음일까?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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