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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25.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13화

그것은 치약이었다


https://brunch.co.kr/@lindacrelo/133

(이어지는 글입니다.)


쿠바인들의 아이스크림 사랑은 실로 대단해서 국민 아이스크림 가게인 꼬뻴리아(Copelia) 앞을 지날 때마다 엄청난 줄을 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쿠바 영화 중에서 처음으로 오스카 외국어 작품상 후보에 올라갔고 또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딸기와 초콜릿>이 바로 그 예이다.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소가 바로 꼬뻴리아 아이스크림 가게이고 영화의 제목도 딸기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뜻한다.


이처럼 쿠바인들에게 꼬뻴리아 아이스크림 가게는 단지 아이스크림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쿠바인들의 삶과 문화를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꼬뻴리아 아이스크림 가게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기는 하지만 땡볕에 몇 시간씩 줄을 서면서까지 먹을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리고 식품이나 생필품은 줄을 오래 서더라도 꼭 사야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삶이 힘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꼬뻴리아의 줄은 다른 상점들의 줄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코펠리아 아이스크림을 먹기위해서 줄 서있는 사람들(확대 필요함)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 가게는 꼬뻴리아가 아니고 동네 아이스크림 가게여서인지 아니면 그날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줄이 길지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전을 해 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한 번에 몇 팀씩 보내주고는 한참을 기다리게 했다. 내 순서 바로 앞까지 다 들어가고 나서 15분 정도를 더 기다리자 우리는 들어갈 수가 있었다. 남편은 이미 와서 나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상점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직원이 손세정제를 뿌려 주었다. 그리고는 다른 직원이 정해주는 장소에 앉아야 했다. 장소는 넓은데 장식이 거의 없는 휑한 장소여서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에서 운영을 하는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옆 동네에 있는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하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와는 극과 극의 분위기였다.


저 안쪽 테이블로 가서 앉으려던 우리에게 한 아주머니 직원이 바에 앉으라고 하며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치 않게 바에 앉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던 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  사이에 있던 의자  개에서 엉덩이를 대로 앉는 부분은  내고(사람들이 앉을까 ) 의자 스탠드만  있었는 것이었다. 그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노력이 가상해서 피식 웃어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은 쿠바가 최고인듯!


이제 막 코로나가 락다운 상태에서 해제로 넘어간 상태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반항을 할 수는 없었으니 그녀가 시키는 대로 우리는 뚝 떨어져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쿠바에서는 말을 참 잘 듣는다) 그리고는 각자 먹을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남편은 가장 큰 다섭 쿱까지 샐러드(이름이 샐러드이다), 나는 두 쿱짜리 쌍둥이를 주문했다. 맛은 한 가지였다. 파인애플맛.  


잠시 후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내가 어릴 적,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담아주던 그 접시를 연상케 하는 재질의 그릇에 아이스크림이 소박하게 담겨 나왔다. 한 스푼을 먹어 보았다. 어, 맛있네! 또 먹어 보았다. 어라, 제법 맛있는데? 파인애플 맛이라서 약간은 시큼할 거라 생각했는데 우유가 아주 듬뿍 들어가서인지 전혀 시큼하지 않고 부드러운 게 아주 맛있었다. 마치 어느 공장 식당에서 배급을 받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맛은 음… 최상급이었다. 게다가 남편과 내가 먹은 것을 다 합쳐도 꼴랑 한국돈 사백 원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꼬뻴리아, 꼬뻴리아 하는 거구나!


남편도 나도 말없이 자신의 아이스크림 그릇에 담긴 것에 집중하며 그릇을 비워내었다. 다 먹고 난 남편이 너무 맛있다며 입맛을 다시길래 하나 더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아니라고 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백 번을 먹어도 괜찮은데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남편은 왜 하나를 더 안 먹었는지 후회를 했다. 그러니 마누라말은 잘 들었어야지. 훗.


어릴적 학교 얖 떡볶이집에서 사용하던 그런 그릇에 담겨 나온 소박한 파인애플맛 아이스크림


다음 날 남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얘기하다 보니 쿠바에는 국영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꼬뻴리아’이고 다른 하나는 ‘바라데로’(휴양지 바라데로와 이름이 동일함)인데 우리가 갔던 그 가게는 꼬뻴리아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가게였다고 말해주었다. 어쩐지 맛있더라니.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전에 쿠바를 다녀오신 어떤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쓰신 글 하나가 기억이 났다. 그분은 쿠바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가 아이스크림이었노라고 하시며 쿠바에 가면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봐야 한다고 강력한 추천을 하고 계셨다. 아마도 아주 저렴한 가격에 비해서 우유가 듬뿍 담겨 맛을 제대로 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니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홀릭이 될만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맛난 아이스크림을 거의 공짜 수준으로 먹고 나서 우리는 다시 줄을 서려고 상점 건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좀 줄어든 듯했으나 아직도 사람들은 많았다. 우리는 남편이 줄을 서 있던 그곳에 가서 다시 줄을 섰다. 이 상점은 다섯 명씩 들여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살 게 뭐가 그리도 많은지 사람들이 들어가면 빨리 나오지를 않아서 회전율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그 상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곳에 살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아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인데, 그 비닐 안에 혹시라도 내가 찾는 게 있으면 물어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상점에서 나오신 한 아주머니가 비닐봉지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지나갔다. 봉지 하나를 보았더니 대용량 가루세제와 치약이었다.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보았는데 분명히 치약이었다. 치약? 코로나 기간 중에 어떤 상점에서도 볼 수 없었던 치약을 그곳에 팔고 있었다. 그리고 가루세제도. 그 두 가지만으로도 긴 줄은 충분히 이해가 될 수가 있었다.


세 시간이 채 못 되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고(늘 손님보다 더 많다) 그들은 계속해서 물건을 채워놓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20매짜리 아기용 물티슈였다. 상점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비누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빨랫비누에 미용비누까지 아보카도 오일로 만든 것, 장미향이 든 것, 레몬 그림이 있는 것 등 다양했다. 비누는 선물용으로 아주 좋아서 비누를 볼 때마다 하나씩은 꼭 사게 된다. 그래서 빨랫비누와 미용비누를 담았다.


뒤를 돌아가 보니 내가 좋아하는 웨하스 세 종류와 추파춥스 같은 막대사탕이 봉지에 담겨 있었다. 웨하스도 두 봉지씩 담고 누가 될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막대사탕도 두 봉지를 담았다. 그런데 남편이 막대사탕은 한 봉지만 사라고 해서 봉지 하나는 다시 가져다 놓았다.


연유가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거였는데 연유는 이 곳에서 활용도가 높아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바구니 한가득 연유로 채우기도 했다. 카페를 하는 사람인 듯했다. 이 곳은 아직 도매 판매점이 거의 없어서(생긴다고 했는데 아직 활성화가 안 된 것 같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도 모두 상점에서 같은 금액을 주고 물건을 사야 한다. 우리도 시댁에 드릴 것 까지 해서 연유 6통을 담았다. 나는 아직 샴푸가 있는지라 값비싼 로레알 샴푸는 사지 않았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캔 식품들도 다른 달러 상점들에서 본 것과 차원이 달랐다. 참치 캔 조차도 다른 상점의 것과 달랐다. 신세계였다! 참치가 아닌 삼치 캔에다가 스팸 같지만 스팸이 아닌 돼지고기 햄, 칠면조 햄도 바구니로 쏙쏙 들어갔다. 옆으로 가 보니 대량 콩나물 통조림이 있었다. 거의 3킬로짜리 콩나물 통조림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제조가 된 것이었다. 게다가 너무 커서 이 것을 사면 다른 물건들을 많이 살 수가 없었다. 콩나물 무침을 참 좋아하는 데 쿠바에 와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앞에서 알짱 대며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콩나물 무침은 그냥 한국에서 먹기로 했다.


이 상점의 최고봉은 냉동고였다. 가장 끝자락에 있는 냉동고 안에는 소고기도 한 가득 있었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해산물들이 종류별로 다 있었다. 오징어, 새우, 가리비 살, 랍스터, 마치 동태처럼 생긴 통생선, 흰 살 생선, 가자미인지 모를 아주 넓적하며 커다란 생선까지. 그런데 그곳에 게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였다. 


한국분들이 쿠바에 오시면 랍스터가 저렴하다고 많이들 드시는데 난 여전히 랍스터보다 게가 더 좋다. 내가 랍스터를 이 식당 저 식당에서 먹어보는 이유는 좋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나의 고객이 되실 분들께 가장 맛있는 곳을 알려드리기 위함이다. 냉동실 안에는 게 다리만 담은 봉지도 있었고 큼직한 게 한 마리를 포장 해 놓은 것도 있었다. 게라면 사죽을 못 쓰던 내가 이 곳에 와서는 한 번도 먹지 못했는데 그들이 냉동고에 조용히 누워 있었던 것이다.


“자기야, 몇 마리 살까? 두 마리 아님 세 마리?” 남편이 두 마리만 사자고 했다. 그래서 게를 두 마리 담고 게 다리도 한 봉지를 담았다.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오늘 저녁에는 게찜이야.” “우와~너무 좋아!” 남편도 해산물 코너에서 (놀라서) 거의 기절 상태였던지라 엄청 좋아했다. 우리는 해산물 냉동고를 사진 찍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소고기도 한 덩이를 넣고는 계산대로 가 보았다. 뭐 더 살게 없나 둘러보았다. 있어도 더 담기가 힘들 것 같았다.


내 순서가 되었다. 계산대 언니가 끊임없이 나오는 물건들의 바코드를 순조롭게 잘 찍었다. 그렇게 계산을 마무리 하나 싶었는데 게 봉지에 붙어있는 바코드가 찍히지를 않았다. 게 다리 봉지는 찍혔는데 개당으로 판매를 하는 게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옆에 있던 매니저 같은 아저씨가 게를 들고 담당자인듯한 남자에게로 가자 계산대 언니가 나를 보고는 아저씨를 따라가 보라고 했다. 그 말에 쫄래쫄래 아저씨를 따라갔는데 게 담당인 이 남자, 아무것도 모른다. 종이를 보면서 이것저것 찾아서 각종 번호를 다 찍어보아도 게가 아니었다. 한참을 그곳에 있다가 성과 없이 계산대로 돌아왔다.


내 뒤에 있는 몇 사람들은 분위기를 보더니 벌써 옆 계산대로 줄을 옮기고 있었다. 이럴 때는 내 잘못도 아닌데 뒷사람들에게 몹시 미안해진다. 계산대 언니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서 계속 서 있는데 도대체 이 게의 바코드 번호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찾아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게 민망해서 게를 사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계산원이, “금방 찾아낼 거야. 금방 돼.”라고 하며 나를 달래었다. 결국 바코드를 찾았고 게를 찍었다. 휴...!


이제 카드를 긁을 차례였다.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 치이이이이이, 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카드 결제 소리! 잠시 후 카드에 찍힌 금액을 보면 깜짝 놀랄 테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남편이 한쪽으로 가서 물건들을 가져온 가방에 나눠 담기 시작했다. 한참을 정리하는데 갑자기 치약이 생각났다. 아 맞다, 치약!


우리가 가게 안에 들어오기 전에 세제는 이미 동이 났지만 치약은 동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데 치약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영수증을 검사하시는 아주머니께(쿠바는 상점의 나가는 문 앞에 물건 산 것과 영수증을 검사하는 분들이 계신다. 코스트코처럼) 치약이 있냐고 여쭤보니 저기 저 언니한테 물어보라고 하셨다. 계산대 뒤로 향수 및 바디 미스트가 가득한 곳에 있는 계산원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그분에게로 가서 치약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분이 오히려 나에게 “치약을 못 봤어?” 하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내가, “응, 매장 안에는 치약이 없던데.”라고 대답을 했더니 계산을 하다 말고 잠시 어딘가로 가더니 박스 하나를 가지고 왔다. 매장에 치약이 있어야 했는데 아무도 채워놓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마 나처럼 치약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이 다른 물건에 정신이 팔려서 치약을 사지 못하고 그냥 간 경우도 있을 듯했다.


나는 그곳에 다시 줄을 섰다. 내가 줄을 서 있는 동안 남편은 가방 정리를 다 했다. 그리고 나는 치약 6개를 샀다. 내 뒤에 줄을 서 계시던 아주머니도 나처럼 물건을 다 사시고는 치약을 깜빡하셔서 다시 줄을 서신 거라고 하셨다. 나는 아직 치약이 두 개가 있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고 치약은 구하기가 힘든 만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선물하기도 좋아 충분히 산 것이었다.


거의 7개월만에 상점에서 본 치약


이제 정말 다 샀다. 더 이상 살 게 없음을 확인 후 택시를 불렀다. 택시 앱이 생긴 후 나는 쇼핑을 걱정하지 않게 되어서 참 좋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는 계획대로 게를 쪄서 먹기로 했다. 집에서 게를 손질해서 먹어본 적이 없던 나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았다. 털이 아주 많은 걸 보니 털게인듯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본 털게보다는 좀 작았고 일반 꽃게보다는 큰 게였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칫솔로 게를 잘 손질하고는 하얀 배를 위쪽으로 해서 찜기에 넣고 20분간 쪄 보았다. 맛술을 넣으면 비린내를 없애준다던데 맛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고급 럼을 몇 스푼 넣어주었다. 게 다리도 다섯 개를 옆에 넣어 주었다. 찜이 완성이 되었고 배에 있는 껍질을 떼어 주어야 하는데 나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떼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남편은 게도 한국에서 처음 먹어보았고 이렇게 자세히 게를 본 건 생전 처음이니 나보다도 더 어버버 했다. 그래, 요령이 없으면 힘으로라도 해 보리라! 는 마음으로 남편이 결국 배에 붙은 게 껍질을 떼어 내었고 국물이 들어 있는 그곳에 내가 밥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는 비볐는데 남편이 그걸 먹더니 너무 맛있다고 하며 다 먹고 나서 또 밥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이제 국물도 없을 텐데 싶어서 간장과 들기름을 살짝 넣어서 비벼줬더니 또 맛있다고는 금세 비어내었다. 그렇게 해서 밥을 비벼서 세 번을 먹고, 나는 게 몸통을 남편은 다리를 집중 공략해서 먹기 시작했다.


덤앤 더머가 된 우리


그런데 이 게는 왜 이렇게 단단한지! 먹다가 지쳐서 다른 걸 먹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이럴 땐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어릴 때에도,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에도 늘 게 껍질에서 살만 쏙 빼서 내 입에 넣어주셨는데... 게다가 내가 너무 오래 쪄서인지 게 살이 약간 질겨서 한국에서 먹었던 게 맛과는 달랐다. 그런데도 남편은 맛있다며 온갖 방법으로 게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리고 게 살이 제대로 벗겨진 건 내 입에 쏙 넣어 주었다. 마치 우리 엄마처럼.


이왕 하는 거 완벽하게 해 보자 싶어서 몇 개 남지 않은 유통기한이 지난 컵라면을 보물 창고에서 꺼내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끓는 물에 게 껍질을 넣었다. 그리고 수프와 면을 넣었다. 게 살이 없어서인지 국물을 푹 끓이지 않아서인지 게 맛은 크게 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뭔가 제대로 하고 있는 느낌이었으니. 신라면의 맵기는 남편에게는 너무 매워서 면만 건져서 밥처럼 게 껍질에 소복이 담아서 주었더니 그 위에 치즈를 뿌려서 아주 잘 먹었다. 남편이 말했다.


“자기, 이모님이 그 상점에는 뭐든 다 있다고 하시더니 정말 다 있었어. 지금까지 가 본 상점 중에서 가장 놀라운 곳이었어.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모를 거야. 특히 아까 그 생선 봤지? 엄청 큰 거? 아, 왜 사진을 안 찍었나 몰라…”


우리는 그렇게 이모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쇼핑은 그 상점에서 하자고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게껍질에 밥도 넣고 라면도 넣어서 알뜰히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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