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또 다른 깨달음
시월의 내 목표 중 하나는 브런치 북을 발행하는 것이었다. 11월 1일이 공모전 마감이다 보니 시월에는 브런치 북을 발간하는 작가님들이 예전보다 확실히 많은듯했다. 나도 시월 중순 즈음에는 첫 번째 브런치 북을 발행할 거라 예상했었는데...
시월 첫날부터 쿠바에 변화가 시작되었고 나에게도 예정에 없던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변화에 휩쓸리고 다른 일들에 신경을 쓰면서 마음과는 달리 글을 쓰는 빈도와 글에 쏟아왔던 시간과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었다. 브런치 북을 발행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지만 노트북을 열어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확인은 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브런치 북은 컴퓨터에서만 작업이 가능하다고 해서 통신사에 가서 인터넷 카드도 충분히 사 두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쿠바 번호가 있는 핸드폰에서는 데이터를 구입 후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지만 컴퓨터의 경우는 wifi 신호가 있는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인터넷 카드로 연결 후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건물 옥상의 3G나 LTE 신호가 집에서보다 빨라서 나는 옥상에 가서 노트북을 사용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시월이 열흘 정도 남은 날에 알게 되었다.
’아, 옥상에서 안되면 어쩌지?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노트북을 하는 건 너무 불편한데...’
그러면서 그때부터 나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옥상에서 wifi가 안 되는 건 어쩌면 이번에 브런치 북을 발행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어. 그리고 자꾸 미루는 걸 보면 어쩌면 난 아직 브런치 북을 발행할 준비가 안 된 걸 수도 있고. 지금은 그냥 계속 글만 쓰고 브런치 북은 노트북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때 발행하는 게 낫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영 불편했다. 내 맘속에선 ‘이번엔 아닌 거 같으니 발행하지 말자’와 ‘힘들어도 한번 해보자’ 이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면서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할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는 하는 게 맞다던데 길거리에서 노트북을 사용한다는 게 영 불편하고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노트북의 배터리가 확 줄어들어서 한 시간 반 즈음이 지나면 노트북이 점차 어두워지면서 화면이 잘 보이지를 않았다.
계속 고민만 하다가 브런치 북 발행을 거의 포기한 즈음인 금요일에 나의 브런치 스승인 에린(@erinandyou) 이가 브런치 북을 발행한 걸 알림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에린이에게 연락을 했다.
“에린아, 브런치 북 발행하는 거 시간 많이 걸리지?”
“아니야 언니, 글만 열 편 이상 있으면 발행은 금방 할 수 있어. 별로 안 어려워.”
“아, 나도 해보고 싶은데 노트북으로 해야 해서 길거리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해...”
“아, 그래? 힘들겠네... 언니 그럼 내가 해줄까? 글만 어떤 건지 알려주면 내가 만들어 줄 수 있어. 아이디와 패스워드 알려주면 해줄게. 그리고 언니 아이디와 패스워드는 브런치 북만 만들고 지울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
“정말?? 에린아, 너무 고마워!! 아이디는 카톡 꺼 주면 되는 거지?”
“응, 언니. 하하”
“알겠어, 그럼 내가 글 좀 확인해보고 너 잠에서 깨면 볼 수 있도록 글 보내 놓을게.”
“알겠어 언니, 준비되면 연락 줘!”
내가 별거 아닌 걸로(나한테는 별거인) 혼자 끙끙 힘들어할 때마다 에린이가 불쑥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게 도와주었다. 어찌나 고마운지!
에린이의 도움에 힘을 입어 핸드폰으로 브런치 글들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인터넷 접속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데다가 새로 산 쿠바 핸드폰은 유독 브런치만 사용하고 나면 속도가 엄청 느려져서 글을 쓰는 게 많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핸드폰을 껐다 켰다를 여러 번 하고 바이러스 여부 확인도 시시 때때 하면서 힘들게 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에린이가 브런치 북을 만들어 주더라도 일단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는 알고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드디어 노트북을 챙겨서 나가보기로 했다. 그러자 나의 전담 경호원인 남편도 함께 가방을 챙겼다. 코로나로 살기가 더 빡빡해진 요즘이라 외국인 혼자 다니는 건 아주 위험하다며 남편은 절대 혼자 외출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나도 노트북과 핸드폰을 들고 혼자 나가는 건 몹시 불안하여 남편의 경호를 받으며 집 근처 작은 공원에 함께 가 보았다.
마침 그곳에 벤치가 있었고 우리는 그 벤치에 앉을 수가 있었다. 노트북을 꺼내어 인터넷 카드로 wifi 에 연결을 했다. 그리고는 브런치 웹사이트를 열어 브런치 북 만드는 방법을 보았더니 에린이의 말대로 아주 쉬웠다. 그동안 확인도 안 해 보고 혼자서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면서 책 발행을 미루고 있었는데 그런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다.
먼저 나의 매거진에서 원래 내가 발행하고 싶었던 글들을 옮겨보았다. 그런데 글들이 너무 장문이라 10편으로만 구성을 해도 90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렇게 장문의 글들과 책은 브런치 북에서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매거진도 확인해보았더니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어떤 매거진의 글들은 순서를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몇 가지 글에서 같은 내용의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것들도 있었고 내용을 수정하자니 너무 일이 커질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원래 발행하려고 했던 매거진은 포기를 하고 발행 가능 한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에린이에게 다시 연락을 주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하는 게 맞겠다고.’ 에린이 덕분에 노트북을 가져 나와 브런치 북 만드는 걸 확인하고 이제는 발행을 하겠다는 각오가 생겨서 그녀에게 너무 고마웠다.
이것저것 확인하면서 대충 감을 잡은 나는 어떤 글들로 브런치 북을 만들지 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노트북 배터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가져간 핸드폰 배터리는 이 노트북에서 작동이 되지 않았았다. 노트북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덮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충전시켜놓고 핸드폰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브런치 북에 발행하고자 하는 글들을 한편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접속 상태가 불안하여 시간이 꽤나 소요가 되었다.
밤이 되고 깜깜해졌다. 나머지는 아침에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참 좋았다. 이렇게 무언가에 집중을 한 게 아주 오랜만이기 때문이었다. 요 며칠 제2의 코로나 블루가 온 것 같았는데 이렇게 집중할 일이 있었으면 코로나 블루 따위는 근처에 얼씬도 못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고 나는 나머지 글들도 모두 확인을 하고 퇴고를 한 다음 남편과 함께 다시 노트북을 챙겨서 전날 앉았던 벤치로 가 보았다. 그런데 오전이어서 그런지 그 자리에 해가 들어와서 도저히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걸어가서 다른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북 배터리가 사라지기 전까지 모든 작업을 완성해야 했다. 제목을 쓰고 책 소개를 하였다. 추천 독자층도 기록하고는 목차로 갔다. 목차에 글을 정한 순서대로 옮겼는데 실수를 해서 글 한 편이 모자랐다. 그래서 핸드폰을 꺼내 그 자리에 채워놓을 글 한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읽으며 퇴고를 했다. 노트북 배터리로 인해 제한된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자 자꾸 실수를 하게 되었다. 결국 목차는 마쳤는데 책 표지 사진, 그걸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노트북에는 사진이 없던지라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어 책 배경이 될 세로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사진들은 원래 사용하던 아이폰에 있었고 카톡이 새로 산 폰에 깔려 있는 탓에 아이폰에 있는 사진을 새로 산 핸드폰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아이폰에 저장된 사진들은 다운이 참 힘들어서 내가 원하는 사진들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마음은 바쁜데 사진이 계속 말썽을 부렸다. 이럴수록 침착해야지, 하면서 숨을 가다듬고 다시 차분히 해 보았다. 결국 사진들을 다운로드하여서 와츠앱과 카카오톡 어플을 통해서 노트북에 저장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브런치 사이트에서 사진을 변경하는 게 계속 실패를 하는 것이었다. 노트북 배터리는 점점 줄어들고 화면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사진 변경을 하지 못한 상태로 브런치 북 발행을 하였다. 그리고 어두운 노트북에서 공모전 응모까지 완료를 했다.
인터넷만 되면 브런치 북 만드는 건 일도 아닌데 나의 조건에서는 꽤나 힘들고 긴장감을 주는 작업이어서 은근히 스릴이 넘치기도 했다. 게다가 처음에 작업을 하던 곳에 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노트북을 들고 해를 피하려다가 각종 쓰레기 냄새에 벌레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해가 목 뒤에서 뜨겁게 공격을 하는 바람에 엉덩이에 깔고 앉았던 옷으로 목을 감싸고는 쪼그리고 앉아 누가 보면 약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을 테다.
브런치 북을 발행해 보면서 글의 양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지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왜 계획을 세워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별 계획 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쓴 게 많아 원래 만들고 싶었던 브런치 북의 목차 구성에 힘이 많이 들어서 결국은 발행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이 너무 길어서 그동안 독자들이 읽기가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에 한 단계 가까이 접근한 거 같아 참으로 뿌듯하다. 브런치 북을 한 권 더 발행하고 싶었지만 바람도 많이 불고(그럼 인터넷이 잘 안된다) 여러 가지로 상황이 쉽지 않아 이번에는 한권만 발행하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글을 쓰겠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 쓴 글들도 꾸준히 퇴고를 하면서 다음 브런치 북을 준비해 보아야겠다는 각오도 해 보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노트북에서 글을 읽어보았는데 글씨도 크고 사진도 잘 보여서 아주 좋았다. 언젠가 아바나 호텔들이 다시 열리면 인터넷 카드를 왕창 사서 호텔 로비 한 구석에 앉아 노트북으로 브런치 글들을 자유로이 퇴고를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려면 크롬을 먼저 설치해야겠지만 말이다.(크롬 아직 시용하지 않는 일인)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의 첫 브런치 북이 공모전 하루를 앞두고 탄생을 하였다. 힘들게 발행을 한 첫 책인만큼 나에게는 두고두고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