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Sep 10. 2019

지중해에서 생긴 일

널 위해 준비했어!


지금은 카리브해에 살고 있지만 한 때 내 별명이 ‘지중해가 선택한 여인일만큼 나는 무한대로 펼쳐져있는 새파란 바다 위로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그런 지중해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매년 휴가 때마다 그곳을 찾았더랬다.


지중해 동부에 있는 작은 섬나라, 한 때 내가 한식당을 오픈해볼까 고민을 했던 사이프러스(Cyprus)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날도 아침에 늦지막히 눈을 뜨고는 침대에 누워서 전날 있었던 일을 카카오스토리(그랬던 것 같다)에 보고한 후 천천히 일어나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나에게 휴가는 한 마디로 ‘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계획 없이 그냥 한 도시에서 2주일 동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였다. 안에 수영복을 챙겨 입고 그 위에 바닷가에서 입는 흰 원피스 같은 걸 입고서는 가방 하나 챙겨서 슬리퍼를 신고 설렁설렁 나갔다. 일단 아점을 간단히 먹었다. 그리고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늘은 뭘 해볼까?



생각을 해 보니 이 곳에 와서 버스를 한 번도 안 타봤다. 그래서 그냥 버스를 타 보기로 했다. 버스비가 얼마인지 몰랐지만 일단 버스 정류장에 갔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얼마인지 묻고 잔돈을 준비했다. 버스 노선을 대략 확인한 후 어느 한 버스에 올랐다.
이 곳은 한쪽 도로 옆으로 지중해 바다가 펼쳐져 있어서 버스만 타고 있어도 힐링이 될 정도였다.


버스에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호텔이 보여서 그곳에 내렸다. 그 호텔 바닷가 썬베드에 누워서 모히또 한 잔 하면서 선탠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그런데 그 호텔 바닷가의 썬베드는 투숙객들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는 계획을 변경했다.


투숙객들에게만 썬베드가 허용되었던 호텔 앞 바닷가


해가 쨍쨍 내리쬐는 곳을 한참 걸었다.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물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집이 한 채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레스토랑이었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늦은 오후라 손님이 한 테이블 밖에 없었다. 나는 지중해가 멋들어지게 펼쳐져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조금 있다가 한 남자가 나에게로 왔다.


“안녕하세요. 뭐를 드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이 곳은 맛있는 게 뭔가요?”
“우리 집은 직접 잡은 신선한 생선이 맛나요. 여기 와서 고르면 돼요.”


나는 그 남자를 따라 생선들이 가지런히 누워있는 진열대에 갔다. 그리고 그중 한 마리를 가리키며  걸로 할게요.”라고 했다. 그리고 지중해에 오면 매일 먹는 신선한 샐러드와 내 사랑인 감자튀김도 함께 주문을 했다.


생선을 먹는데 화이트 와인이 빠질 수는 없지!


냉장고를 보니 그리스산 일인용 미니 화이트 와인이 있었다. 그걸로 일단 한 병을 주문했다. 생선이 구워지는 동안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고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는 창 밖 지중해 풍경을 보며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역시 맛있었다.


샐러드와 감자튀김이 먼저 나오고 생선이 나왔다. 이 곳 음식들은 무척이나 신선해서 올리브 오일과 약간의 소금 그리고 허브 만으로도 아주 맛나서 나는 늘 접시를 싹 다 비우곤 했다. 이 날도 역시나 맛있게 접시를 비우고 옆을 보니 접시와 함께 와인병도 한 병을 넘어 두 병이 비워져 있었고 세 병째가 비워진 두 병 옆에서 대기 중이었다.


직접 잡은 오늘의 생선이랑 신선한 지중해식 샐러드와 감자튀김 그리고 그리스산 미니 화이트 와인


손님은 이제 나 혼자였다.
혼자라 외로워 보였는지 주문을 받았던 그 남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혼자 여행 온 거예요?”
“네, 혼자 여행 왔어요.”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그는 28세의 A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이었고 오늘 잠시 어머니 레스토랑에서 도와주는 중이라고 했다. 어머니 전에는 할머니가 운영을 했었다고 덧붙였다.

그 청년은 현재 스코틀랜드에서 석유/가스 자원학 석사과정 중인데 방학 때라 잠시 돈 벌러 고향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와 내가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나!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What a small world!


“린다, 이 식당이랑 여기 있는 땅이 우리 엄마 것이어서 나는 관광객이 많은 여름 방학 때면 이곳에 와서 바닷가 앞에서 바를 운영해.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학비를 대고 생활비까지 충당하지. 아 근데 너무 아쉽네. 하필이면 지난주에 문을 닫았지 뭐야.”


그러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갔고 나는 세 병째 미니 와인도 깔끔히 다 비웠다.


깔끔하게 비우고 나란히 줄 세워진 미니 와인병들


어느덧 새파랬던 지중해에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그가 말했다.


“린다, 내 바에 가 보고 싶어? 네가 원하면 특별히 너를 위해서 오픈을 할게!”


“정말??? 문 닫았다면서? 뭐 나야 당연히 가 보고 싶긴 하지만…”


“오케이. 렛츠 고!”


계산서를 달라는 내 얘기에 와인은 자기가 사겠다며 밥값만 받았다. 나는 가방을 챙기고 그를 따라 식당 아래 언덕을 조심스레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그곳은 호텔 존이라 산책로가 있었고 그 산책로 바로 앞에 지중해 바다가 떡 하니 펼쳐져있었다.


어둠이 깔린 호텔 존 앞 산책로 그리고 바 바로 앞에 펼쳐진 지중해


내가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그는 손에 무언가를 잡고는 눌렀다.


‘지지지지지이익....’




닫혀있던 셔터문이 열리면서 지중해 바닷가 앞에 나만을 위한 바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헙............ 와...........!!!”


내 눈 앞에 정말 멀쩡한 아니 멋진 바가 나타났다. 
지나가던 호텔 투숙객인 듯한 커플들이 와서 바에 앉으려고 하자 그는 영업을 안 한다고 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나만을 위한 바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칵테일 만드는 거 가르쳐줄게. 뭐 마시고 싶은지 말해봐!”


“나? 모히또!”


예전부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모히또였다.
그는 모히또를 만들기 시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놓칠세라 열심히 동영상을 찍었다.


두 번째 잔은 나의 순서였다. 처음으로 만들어보는 모히또였는데 내가 만들어서 그런지 아주 맛났다.

암요. 당연히 맛날 수밖에! ㅎㅎ


살면서 누군가가 나만을 위한 바를 만들어 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무려 지중해에서 그걸 경험을 하다니!


두 번째 잔까지 마시고 나니 밤이 너무 늦어 내가 집으로 가야겠다고 하자 그는 바를 정리 하고는 본인 차로 나를 숙소까지 잘 모셔다 주었다. 그리고 그 섬을 떠나기 전에 그는 나를 한번 더 초대를 했다.


아... 내 사랑 지중해!


카리브해에서 나는 지중해를 이렇게 추억하고 그리워해 본다.


지중해 앞 나만의 바에서 모히또를 제조 중인 한껏 신난 나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