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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y 13. 2020

손도 한 번 못 잡아 봤는데

그렇게 우린 이별 아닌 이별을 했다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몰아닥친 경제위기인 IMF의 여파로 내가 사랑하던 첫 번째 일을 딱 일 년 하고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나는 한창 에너지가 넘치던 20대였고 집에만 있으면 좀이 쑤셔서 무언가를 해야 했다.


뭘 할까? 


고민하며 여기저기를 알아보다가 대구 시내 동성로*에 있는 한 락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하게 되었다. 그때 난 가지런한 앞머리에 아주 긴 까만 생머리를 하고 있었고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파이팅 넘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대구에서 시내라고 하면 동성로 하나였다.
**내 20대 때 아주 유명했던 술집과 클럽의 중간 단계 정도인 흥나는 장소


어느 날 남자 손님 두 명이 와서 한 테이블에 앉고는 생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그 테이블은 내 담당이어서 주문한 생맥주와 안주를 가지고 가서 맛있게 드시라고 하고는 여기저기 테이블을 바삐 움직이며 다니고 있었다. 조금 후에 그 테이블에서 다시 생맥주를 시켰고 나는 내 의무를 다하느라 양손에 생맥주를 들고는 총총걸음으로 그 테이블로 갔다. 두 명 중 한 남자가 쭈뼛쭈뼛하며 나에게 말을 했다.


“저기요.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전화번호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손님, 죄송한데 일 하는 도중에 연락처를 주고 그러면 안 되거든요. 손님 연락처를 주시면 제가 나중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고 락카페의 특성상 어두워서 그 남자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일단 급하게 대답을 했다.


“연락 안 할 거잖아요. 그러지 말고 연락처 좀 주세요…”


웃음을 띠며 내가 다시 말했다.


“손님, 손님 연락처 주시면 제가 연락드릴게요. 저 약속하면 꼭 지키는 사람이에요.”


나는 끝내 내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결국 그 남자는 포기하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처음 보는 남자였지만 일단 약속을 한 거라 다음 날 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제 락카페에서 서빙했던 사람이에요. 제가 연락드린다고 약속을 해서 전화한 거예요.”


그 남자는 아주 놀라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우왕, 정말 전화 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제가 약속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렇게 전화로 우리 둘만의 첫 대화가 시작이 되었고 그 남자는 빨리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밤이 아닌 낮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의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났지만 나는 일단 약속 장소로 나갔고 그곳에 나를 보고 볼이 빨개지며 수줍게 웃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 잘. 생. 겼. 다!


어두워서 외모는 정확히 못 봤지만 그래도 매너가 괜찮았던 사람이어서 전화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약속을 지킨 건데 이건 뭐 자다가 봉 잡은 기분이었다. 중 키에 약간 마른 그는 스타일도 꽤나 좋았고 매너는 최상급이었다. 갑자기 설레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마구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 날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을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한 살 연상이었지만 재수를 해서 학번이 같았던 그 남자는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해서 대학교 4학년인 공대생이었다.


그는 나의 알바가 마치는 시간인 매일 밤 12시에 락카페 앞에서 나를 기다렸고 내가 나오면 “우리 HJ, 오늘도 수고 많았어!” 하면서 칭찬을 해 주고는 근처 호프집으로 가서 2시간 정도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는 택시로 나를 우리 집까지 바래다주고 나서 다시 택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가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매일 우리는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무슨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지 엄청난 대화를 이어나갔더랬다.




한 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


누나 친구의 결혼식에 자신이 피아노를 쳐 주었는데 그 대가로 십만 원을 받았고 나에게 갖고 싶은 걸 말해 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는 ‘띠용’하며 좋았지만 네가 열심히 해서   건데  내한테 쓸라고? 네가 하고 싶은  해라.” 며 일단 튕겨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안 된다고 하고는 그 돈은 무조건 날 위해 써야 한다며 계속 고집을 부렸다. 결국 나는 그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이던 원피스가 모셔져 있던 옷가게로 데리고 갔다. 하늘하늘 하늘색의 그 원피스를 입고 나오자 그의 눈에서 하트가 마구 발사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줘서 나에게 고맙다고 하며 바로 계산을 했다.


그는 가끔씩 락카페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동생들에게도 맛난 걸 사주기도 하는 아주 멋진 남자 친구였다. 그리고는 우리 HJ이 한테 잘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모든 걸 고마워하던 사람이었다.




매일 만나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그는 나를 우리 집에 바래다주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전화로 계속 수다를 이어나가던 중이었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했다.


“JP야, 우리 이제 만난 지도 조금 된 거 같은데 니는 왜 아직도 내 손을 안 잡는데?”


매일을 만나는 데에도 그동안 그는 내 손을 한 번도 잡지 않아서 나는 그게 몹시 궁금했었다. 그가 손을 안 잡아서 내가 걷다가 가끔 팔짱을 끼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면서 동시에 미소가 화악 퍼져나가는 걸 몰래 훔쳐보기도 했었다. 그는 수줍음이 몹시 많은 남자였고 나는 그의 수줍음이 너무 좋았다. 내 질문에 그가 잠시 멈추더니 대답을 했다.


“HJ아, 아주 소중하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있는데 내가 손을 대면 괜히 기스가 날 것만 같잖아. 니가 내한테는 그런 존재다. 그래서 함부로 손도 못 잡겠다. 근데 니가 내 팔짱 꼈을 때, 내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아나?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질 뻔했다. 종종 팔짱 좀 껴주면 좋겠다.”


새벽이라 감수성이 더 예민했던 나는 이 말을 듣는데 갑자기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들면서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다. 대체 이 남자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가 다이아몬드는 기스가 그리 쉽게 안 난다며 그 남자 공대생 맞냐고 해서 그게 정말인지 찾아본 적도 있었다.(난 그런 거에 전혀 관심이 없는 문과생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다이아몬드에 기스가 나고 안 나고 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를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아껴주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그 사실이 나에겐 중요했던 것이었다.


우리의 만남이 조금  이어지자 그는 나에게 함께 유학을 가자고 했다. 자기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부모님이 캐나다로 유학을 보내 주시기로 했는데 나와 결혼하고 함께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물론 비용도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어디 캐나다 뿐이겠는가? 그와 함께라면 달나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겠노라 대답을 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 종종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와 연락이 안 되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도 안 받았고 내가 보낸 문자는 계속 씹히고 있었다. 그렇게 다정하고 나만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하늘이 노래졌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별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그 전 날 등짝을 너무 세게 때려서 갑자기 내가 싫어진 건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누워있어서 연락이 안 되는 걸까?”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그때 난 그에게 내가 무얼 얼마나 잘 못 했는지 곱씹어 보며 엄청 나를 자책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가 갑자기 사라질 정도로 내가 잘 못 한 건 농담으로 등짝 때린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그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사라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멕시코로 떠났다. 결국 나는 그가 나를 떠난 걸로 그와의 만남을 마무리했고 내 갈길을 다시 가기로 했다.


오뚝이처럼 또 힘을 내고 발딱 일어섰다.

가서 어학원을 알아보고는 등록을 했고 스페인어 공부를 하던 차에 우연히 몇몇의 후배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중에서 두 명의 후배와 잠시 한 집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중 한 명과 아주 마음이 잘 통해서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더랬다. 그러다가 이 남자 얘기도 하게 되었다.


일 년 후 나는 멕시코를 떠나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녀는 일 년 간의 교환학생이 끝나자 한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 간 지 조금 지났을 때에 큰오빠가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후배에게 연락을 해서 곧 한국에 갈 예정이니 가면 만나자고 했다. 그녀도 너무 좋아하며 그러자고 서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녀가 다시 연락을 했서는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제가 지금 국가고시 준비하시는 한 남자분에게 스페인어 과외를 하고 있는데요. 그 남자 누군지 알면 언니 깜짝 놀랄 거예요.”


“누군데?”


“LJP”


“뭐라고?”


그 남자의 이름이 꽤나 특이해서 그녀는 나에게 그 남자 얘기를 듣고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그 남자에게 스페인어 과외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언니, 오빠하고 얘기하다가 언니 얘기가 나와서 언니 잠시 한국에 오신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오빠가 언니 제발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만나실 수 있겠어요?”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나는 후배의 주선으로 그 남자를 몇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그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IMF로 갑자기 부도가 나면서 아버지가 쓰러지셨고, 장남인 본인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면서 그때부터 연락을 못 한 거라고 했다. 나는 “네가 그런 상황을 얘기했으면 내가 충분히 이해를 하고 도와줬을 텐데…” 하면서 우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는 아버지가 쓰러지시면서 나에게 했던 캐나다 유학과 결혼에 대한 약속을 못 지키게 되자 나를 볼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를 ‘못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이해한다고 얘기를 했다. 어차피 모두 지나가 버린 과거라 지금 내가 왜 그랬냐고  얘기한다고 해서 상황이 되돌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와 몇 시간 동안 함께 나누었던 과거도 추억하고 또 각자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는 연락처를 주고 받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2주 후에 예정대로 미국으로 돌아갔고 가끔씩 그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음번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강남역에서 만난 그는 고시공부를 하느라 신림동 고시촌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에 내가 만났던 그 순수한 JP 가 아니었다. 쑥스러워서 내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무슨 말을 하면 볼이 발그스럼해 지며 수줍어하던 그는 몇 년 사이에 고시촌 아저씨로 전락해 버렸다.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말하는 것도 영락없이 속세에 물이 많이 든 아저씨였다. 잠시 설레었던 마음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그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나름 유명했던지라 그와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 남편이 나중에 그에 대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고시에 합격을 해서 잘 나가고 있으며 결혼도 했다고.


잘 산다니 다행이군…


한 때 나를 자신보다 더 사랑했고(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했건 말건 나에게 그 남자는 여전히 볼 빨간 그 모습으로 내 맘 어느 한 구석에 남아있었고 지금도 그가 다이아몬드 운운했던 그 전화통화를 생각하면 다시 순수했던 그때가 떠올라 혼자서 미소를 지어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끄집어내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에 내 젊었던 20대가 한층 멋져 보이기까지 하다.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이 추억이 되면 그저 아름다운 모습만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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