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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다가 눈물을 쏟았다

by 쿠바댁 린다


2008년도에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외국에 있었나?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때 나는 서울에서 일주일에 구두 굽을 두 번씩 교체할 정도로 눈썹을 휘날리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당시 유행했던 인디밴드들(뿐만 아니라 대중음악도)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오직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지 그 생각만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2021년인 지금에서야 2008년에 나온 노래를 듣게 되었다. 처음 듣는 노래여서 당연히 신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온 지가 벌써 13년이 된 노래였다니! 게다가 밴드 이름이 아주 특이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한국에 와서 몇 개월 후 나는 잔나비라는 밴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잔나비의 노래에 푹 빠져버렸다. 곡은 물론이고 가사가 너무 예뻐서 노래 가사를 노트에 적고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거의 매일 걸어 다닐 때에는 잔나비 노래를 유튜브에서 듣다 보니 알고리즘을 통해서 내가 몰랐던 인디밴드의 노래들도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적재의 <별 보러 가자> 그리고 폴 김의 <모든 날 모든 순간> 뿐만 아니라 가사와 곡이 잔잔하고 아름다운 많은 노래들을 듣게 되었다.


토요일 아침, 오아시스 마켓에서 두 번째 배송을 받아서 신이 나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요리를 할 때에는 주로 음악을 틀어놓는데 역시나처럼 잔나비 노래로 시작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유튜브에서 알아서 들려주는 노래들을 자연스레 들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꽂히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그전에 여러 번 들으면서 '아, 이 노래도 참 좋네. 무슨 노래지?' 하고 봤던 노래였다. 하지만 나는 금세 가수와 노래 제목을 까먹게 되었다.


모든 건 때가 있는지 제목을 까맣게 잊어버린 그 노래가 그날 아침 따라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그 노래만 주구장창 돌려 듣기를 했다. 나는 노래 하나에 꽂히면 그 노래면 백번도 듣고 천 번도 듣는 습성이 있다. 아침을 준비하다 말고 가수와 노래 제목을 확인해 보았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였다.







오아시스 마켓의 새벽 배송에서 받은 재료로 먼저 콩나물 무침을 하였고 청국장을 끓였다. 현재의 임시 숙소를 제공해주신 언니가 얼마 전에 반찬 여러 개를 사 가지고 오셨는데(언니는 지금도 늘 나를 챙겨주신다) 그중에 하나가 콩나물 무침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 많던 콩나물 무침 반을 먹어버렸다.


쿠바에 콩나물이 없어서 한동안 안 먹다 보니 내가 콩나물을 이렇게나 좋아하는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먹어보니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도 그리고 맛도 내 입에 아주 잘 맞아서 다음 날 나머지 반까지 다 비워내었다. 그래서 콩나물 무침을 가장 먼저 한 것이었다.


콩나물 무침


그리고 청국장. 집에서는 환기 때문에 청국장을 안 해 먹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전날 집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저녁으로 청국장을 먹고는 기분이 좀 상해서 그날 밤에 오아시스 마켓에 청국장을 주문했고 아침에 바로 만들게 된 것이었다. 그 식당에서 나에게 잘못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음식을 받았는데 음식에 정성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 좀 놀랐을 뿐이었다. 아주 맛나지는 않아도 나쁘지 않은 맛이었는데 마치 한강물처럼 국물은 많은 데 내용이 부실해서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다 먹었다.


일반 동네 식당에서 무슨 대단한 걸 기대한다면 그건 내 잘못일 테다. 그래도 음식을 받고 '정성이 없다'라고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식당에서는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쿠바에 살다와서 웬만한 건 그냥 넘어가는 내가 예민해진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건 나 스스로 청국장을 해 먹으라고 복선을 깔아준 게 아닌 가 하는 억지로 끼어 맞춘 듯한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아주 건강한 유기농 청국장


멋지게 아침상을 준비해서 책상에 앉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잠시 지내는 작은 공간이라 따로 식탁이 없어서 나는 책상에서 밥을 먹는다. 언니가 작은 접이식 상을 하나 주셨지만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면 좋지 않은 허리가 더 아파서 웬만하면 의자에 앉아서 먹는 편이다. 손수 만든 음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밥과 청국장, 콩나물 무침,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을 쭈욱 나열해 놓고 유튜브에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를 가만히 들어보니 한 편의 시였다. 잔나비 노래를 들었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미묘하게 뭔가 다른 듯했다.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그때그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그때의 그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퍼

사실 아니라고 해도 난 아직 믿고 싶어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까 조금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그때의 그때


그렇게 소중했었던 마음이

이젠 지키지 못한 그런 일들로만 남았어

괜찮아 이제는 그냥 잊어버리자

아무리 아니라 생각을 해보지만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그때의 그때



밥을 먹으며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이 순수하게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 노래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로 <시인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말>에 선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햇살 좋은 토요일 아침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건강한 식재료로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는다는 이 평범하지만 보편적인 현실이 너무 행복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었다.


쿠바에 살았던 지난 2년은 나에게 인생에서의 감사함을 충분히 깨우쳐 주기에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보편적인 걸 내가 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늘 이곳에 살고 있는 분들은 느끼기 힘들 수도 있지만 오늘 아침에 내가 만든 음식들은 모두 쿠바에 없는 것들이라 특별히 더 깊은 감사로 다가온 것이었다.


처음에 흘렸던 내 눈물은 감사와 행복의 눈물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갑자기 울음이 떠져 버렸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면서 엉엉 울었다. 입안에 밥을 넣어둔 채로 나는 휴지를 뽑아서 눈물을 닦고 코를 풀었다. 왜 갑자기 울음이 쏟아져 버린 건지 영문도 모른 채 그냥 엉엉 울었다. 노래 가사 때문인지 곡 때문인지 아니면 이 노래가 불러온 나의 과거의 추억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울었다. 감정에 복받쳐서. 꺼이꺼이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 어릴 적 때 묻지 않게 순수했던 그때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또 지나간 사랑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목 놓아 울었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노래 한 편이 주는 힘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2008년도에 이 노래를 들었으면 이렇게 강한 울림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편적'이라는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을 테다.


요즘 나는 내가 스스로 쿠바를 선택해서 살았던 것에 대해서 매일매일 감사를 하며 살고 있다. 쿠바라는 완전 다른 세상에서 너무나도 색다른 경험을 하며 인생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서 사는 그곳에서 나는 사람들의 날것을 보았고 인내를 배웠다. 결핍은 내 생각을 열리게 하였고 그렇게 나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이런 값진 경험을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도 이번에 한국에 와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바탕은 내 반쪽의 순수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자극적인 걸 원하는 세상에서 이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니 나의 감성도 살아났다보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글귀와 가락에 이토록 반응을 하며 감사할 줄 아는 것에 대해서 참 기뻤다.


나는 매일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게으름이 내 발목을 자꾸만 잡아서 주저앉을 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세상이 아무리 무섭고 힘들다고 해도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가 있고 꿈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그래도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이다.



https://youtu.be/FnLlUGIUn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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