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하세요!
쿠바에 온 지 어느 듯 11개월째에 접어들었고 나도 이 곳에 어느 정도 녹아들어 생활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힘들면 힘든 대로 또 좋으면 좋은 대로. 장소가 바뀌었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바뀌었지 ‘나’라는 사람이 아직 바뀐 건 아니다. 단지 다른 곳에 왔으니 이 곳 상황에 맞게 빨리 적응하는 것뿐이다. 살아야 하니까.
한국에 살 때 내가 가졌던 일종의 ‘카리스마’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 버렸는지 찾아볼레야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고, 지금은 여느 아줌마(우리가 생각하는 살림하는 여인네)처럼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물건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오만데를 다 돌아다니는 나를 보고 내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동정했다.
동정이라...
20대 때로 돌아가 보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지구 상에 왔는가?’
라는 화두를 두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다녔고 이것저것을 많이 경험해 보았다. 정신세계에 심취했던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자기장(볼텍스)이 세다는 곳 중의 한 군데인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세도나에 가서 한동안 있으면서 수련도 하고 영적 지도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답을 찾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단련하고 또 단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그가 좋아하고 고마워할 때 나는 아주 행복했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나의 이런 점을 악용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생겨나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잘 믿었고 순진했던 나는 처음에는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고 계속 퍼 주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사회를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사람들이 내 마음 같지 않고 거짓말도 잘한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몇 번 뒤통수를 맞고 배신을 당하면서도 천성은 안 바뀌는 게 맞는지 변하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와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생에게서 뒤통수를 아주 세게 맞았는데 그것도 내가 사귀던 사람이랑 쌍으로 말이다.
그 사건이 내가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재정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변했다. 양 쪽에서 쌍으로 충격을 제대로 받았던 나는 한번 울고 나서 결심했다. 내가 잘돼서 꼭 복수하겠다고. 그리고 몇 년 후 나만의 방식으로 힘들이지 않고 복수를 하게 되었다. 내가 잘 되어서 말이다.
그 사건 이후부터 나는 주변 사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이상하고 마음에 안 들면 잘랐고 더 싫으면 차단을 했다. 그랬더니 아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좋은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게 되었다.
흑과 백이 확실했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하고만 살 수만은 없는 법이다. 두루두루 잘 지내면서 도와줄 건 도와주고 도움받을 건 도움을 받으면서 사는 중용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는 전략을 바꾸었다.
말이 너무 많은 사람(나도 많긴 하지만), 남의 말만 하는 사람, 염치없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감정 기복이 아주 심한 사람, 인색한 사람,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기 뺏기는 사람 등이랑은 최대한 만남을 피했도 그 외 사람들과는 잘 지냈다.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느니 차라리 잠을 자면서 휴식을 취하는 게 더 낫다는 결론도 내렸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내가 쿠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쿠바에 살면서 한국에서와 달리 아주 알뜰하게 변하게 되었고 나도 백수면서 돈이 없는 쿠바 남편과 시댁을 위해 내가 모든 걸 다 퍼 주는 것처럼 보이자 나를 걱정하고 동정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말은 안 했지만 예민한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를 걱정한다는 명목으로 동정하는 이들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걱정되고 아껴주는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를 동정하는 사람이 내가 도움을 줬던 사람이라면 정말 어이가 없어진다.
고마움을 동정으로 갚는다니!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고마웠다.
내 가슴속에서 쿠바에 와서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어떤 감정을 꺼내어 줬기 때문이다.
그런 이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나 린다야!
그리고 나에게는 나와 내 사랑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동정대신 응원을 해 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