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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문학을 느꼈다

시인들의 창

by 쿠바댁 린다


그동안 국제영화제라고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올해에만 두 번을 가게 되었다. 이래서 노는 물이 중요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발단은 브런치였다. 2019년의 어느 날브런치 글에 남겨진 댓글 하나를 보았다. 어떤 분이 쿠바에 오신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답글을 남겼고 그것을 계기로 인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살아보니 쿠바는 만만한 곳이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닥칠 고생을 덜어 드리고자 도와드리기로 했다. 집을 알아봐 드렸다. 쿠바의 상황과 준비해 오셔야 할 것들도 알려드리며 꾸준히 소식을 이어갔다.


시간이 흘러 그분이 쿠바에 도착하시는 날이 되었다. 자정이 넘어 도착을 하는 비행기라 남편과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모시러 갔다. 그분의 비행기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서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택시 기사님께 대기하라고 일러놓고는 내려서 걷는데 저 멀리 한국인 같은 분이 보였다. 그런데 행색이 아주 특이했다. 나보다 연장자이신데 검은색 쫄바지 위에 어정쩡한 반바지를 입으셨고 상의는 검은색 쫄티였다. 조그마한 체구에 파마기가 있는 약간은 긴 머리의 아저씨였다. 누가 보아도 평범한 분은 아니신 듯했다. 속으로 이상한 분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했다. 인사를 드리고 택시로 모셔갔다. 같은 고향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투리 구사 능력이 뛰어나셔서 오랜만에 듣는 찐한 사투리에 아찔할 뻔도 했다.


아바나의 명물인 올드카 택시가 예약해 둔 숙소에 우리를 잘 모셔다 주었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다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마침 그 숙소에는 멕시코에서 온 교환학생도 있었는데 그 친구도 덩달아 나와서 인사를 하며 순식간에 새로 오신 분을 환영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곱슬머리의 아저씨가 멕시코 공항에서 사 오신 메스깔(도수가 아주 높은 데낄라 같은 멕시코 전통주) 한 병을 꺼내셨다.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좁은 거실에서 흥겨운 술판이 벌어졌다. 이제 막 쿠바라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신 그분의 말씀을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메스깔 한 병이 끝났고 우리도 가야 할 시간이었다. 쿠바에 무사히 도착하셔서 숙소까지 잘 모셔다 드렸으니 내 임무는 완료가 되어 마음이 편했다.

집에 가겠다고 일어서자 그분이 고맙다고 하시며 한국에서부터 가져오신 선물을 주셨다. 엄마가 보내주신 귀하디 귀한 반찬도 건네주셨다. 외국에서 물건을 보내고 받는 게 쉽지 않은 나라여서 이렇게 인편으로 물건을 받아야 했기에 한국에서 오는 모든 것들은 다 귀했다. 보물들을 잘 챙겨서 남편과 집으로 돌아갔다.


쿠바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신 그분은 예정대로 삼 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쿠바에 계시는 동안 가까이 지냈다. 내가 담근 김치도 맛보셨고 함께 한국음식을 먹었다. 우리 가족들과 새해도 함께 맞이했고 쿠바에 방문한 내 친구들도 여럿 만나셨다. 그분은 독립영화감독님이셨다. 첫인상부터 평범하지 않으셨던 그분의 삶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왔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우리의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영화감독님인 그분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국제 영화제까지 가게 되었다. 첫 번째 갔던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는 국제영화제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소박해서 깜짝 놀라버렸다. 쿠바 음악영화가 출품이 되어 한국에서 쿠바 영화를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지만 내 생애 첫 국제 영화제라는 의미를 두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에 간 부산국제영화제는 분위기가 달랐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제답게 활기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으로 많은 행사가 취소되었고 영화제 기간 동안 펼쳐지는 해운대 앞 포장마차의 향연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국제영화제에 왔다는 건 느낄 수가 있었다.


요즘 나는 매일 글을 쓰며 퇴고에 집중을 하고 있기에 부산에 가서 맘껏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에 간 이유는 <시인들의 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예버덩 문학의 집'을 일 년이 넘도록 촬영을 한 작품인데 다큐멘터리인 만큼 그 영화에 출연하신 모든 분들은 현재 시인이고 작가들이다. 그 영화가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는데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이 바로 나와 쿠바에서 인연을 맺은 감독님의 동생이셔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를 받아 함께 가게 된 것이었다. 감독님도 동생분도 영화를 만드시기 이전에 시인으로 먼저 등단하신 문학인이셨다.


70분 동안 이어지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적이었다. 작가는 글 한 줄을 쓰기 위해 일어났다 앉았다 하셨고, 자세를 이리도 해 보고 저리도 해 보셨다. 신발을 벗고 자연을 거닐다가 집에 들어와 밤이 새도록 창밖만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비도 맞고 세찬 바람도 맞으셨다. 어느 날에는 정성 들여 쓴 글을 모조리 지우시고 노트북에 Q라는 한 자만 남겨 놓으셨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었는데 금세 여름이 되었고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들더니 비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 왔다. 글 한 줄을 쓰기 위해 작가들이 고뇌를 하는 동안 사계절이 지나갔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정적인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면 분명히 졸았을 텐데 이번에는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바람소리, 빗소리, 나무소리 하나 놓칠세라 귀를 쫑긋했고 눈을 똑바로 뜨고 조용히 보았다. 쿠바가 생각났고 헤밍웨이가 내내 떠올랐다. 미국인인 헤밍웨이는 거의 30년을 쿠바에 살면서 글을 썼고 결국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그러면서 든 또 다른 생각 하나.


'쿠바에 가지 않았다면 내가 '글'이라는 걸 썼을까?'


처음에는 그저 썼는데 이제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나는 그냥 B급 감성의 글을 쓰려니 했는데 이제는 문학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등단은 남의 이야기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등단하신 분들이 존경스럽고 언젠가 나도 등단이라는 걸 한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버렸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는 것조차 민망한 아직 문학이 뭔지도 잘 모르는 애송이 작가인데 꿈이 원대해져 버린 것이다.


<시인들의 창>이라는 이 다큐멘터리는 한 편의 서정적인 시를 영상으로 풀어놓은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바쁜 이 세상에서 '예버덩 문학의 집'만은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흘러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처럼.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안에서 정지해 있는 것만 같던 시간이 단어 하나를 만들어 내었고 그 단어가 문장을 만들면서 한 편의 시를 자아내고 소설을 탄생시켰다. 멈춘 듯 멈추지 않은 곳이었다. 마음의 고요가 내 열정을 끓어 올리는 듯했다.


저녁을 먹으며 영화의 주인공인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Q라고 노트북에 적어놓으셨던 그 단어가 오시기 전날 소설로 완성이 되었다고 하셨다. 축하드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내 삶이 문학과 이어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쿠바라는 곳이 글을 쓰게 해 주었고 감독님과 인연을 맺어주면서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 <시인들의 창>을 보며 그 바람이 한층 깊어지게 되었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아 오징에 게임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관심은 끌지 못하겠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내 마음에 평화를 한번 누려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고 마지막에 나오는 향나무 씬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 향나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독님의 말씀에 그 장면이 더욱더 귀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내 인생을 돌아보며 인연의 소중함에 또 한 번 감사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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