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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by 쿠바댁 린다


출판사에서 교정본을 보내 주셨다. 손 볼 게 많았다고 하시며 독자의 입장에서 꼼꼼히 살핀 후 요청한 날짜까지 다시 보내달라고 하셨다. 알겠다고 회신을 드렸다. 그리고는 피드백이 적힌 첨부파일을 읽었다. 꼼꼼히 읽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알듯했다. 글을 계속 쓰면서 나도 점차 느꼈던 것들이라 쉽게 수긍이 갔다.


아주, 전혀… 등 형용사와 부사가 필요 이상으로 많습니다.
그리고는, 그리하여, 그래서… 등 접속사가 많습니다.
습관처럼 목적어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냥 동사로 써주세요.
감상적인 글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뿌듯하다, 감사하다, 우주를 날고 있다 등 자기감정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지요. 감성적인 글이 좋은 글입니다.


수긍은 했지만 충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김정선 작가의 <동사의 맛>이었다. 그 책을 읽고 받은 신선한 충격은 내 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김정선 작가의 또 다른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해서 읽은 두 번째 책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이다.


책은 제목과 목차가 정해지면 50%는 완성한 거라더니 이 책은 제목부터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김정선 작가의 책이 유독 그런 건지 유유 출판사의 책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처럼 가볍고 꾸밈이 없는 책이 좋다. 무겁고 화려해 보이는 양장본보다 가볍고 소박한 문고판이 좋다. 원서를 거의 읽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접했던 문고판 책들은 두꺼워도 가벼워서 참 좋았다. 내 책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정선 작가의 책이 그랬다.


동사의 맛에서처럼 이번 책에도 문법만 적어놓은 게 아니라 소설 같은 이야기를 곁들여놓아 역시나 재미가 쏠쏠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이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문법 부분은 건너뛰고 그 부분만 먼저 읽을 정도였으니. 김정선 작가는 소설도 잘 쓰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여러 가지로 나에게 감동을 주었는데 가장 큰 감동은 이 부분이었다.


이제껏 수많은 저자들의 문장을 다듬어 왔지만, 내가 문장을 다듬을 때 염두에 두는 원칙이라고는, '문장은 누가 쓰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순서에 따라 쓴다'뿐이다. 나머지는 알지 못한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어쩜 이리도 단순하면서 겸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은편 양옥집 지붕에서 고양이 가족이 슬금슬금 내려오고 그 건너편 옥상에서는 할머니가 바람에 흔들리며 말라 가는 빨래를 걷고 그 아래로는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힘겹게 언덕을 오르며 귀가를 서두는 시간, 어스름이 내릴 그 무렵이면 그 모든 풍경이 마치 길고 긴 문장처럼 느껴졌다. 주어가 있고 서술어가 있으며 체언을 꾸미는 관형사와 용언을 꾸미는 부사까지 모두 갖춘 문장.
나는 생각했다. 저 문장은 얼마나 이상한 문장일까.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 얼마나 이상한 삶들이 얼마나 이상한 내용을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한 문장일까. 그리고 만일 저 길고 긴 문장을 손본다면 어떤 표기가 맞고 어떤 표기가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표현이 어색하고 어떤 표현이 그렇지 않는지는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들어내거나 고치거나 다듬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미처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쓰레기들일까. 아니면 빨랫줄에서 떨어져 흙이 묻은 빨래들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 어미를 쫓아가지 못하고 뒤처져 울고 있는 고양이 새끼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한데처럼 여겨졌다.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한데. 그 순간 마치 길고 긴 문장에 마침표를 찍듯 하늘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져 내 발밑까지 굴러 왔다. 자세히 보니 감나무에서 떨어진 감이었다. 마침표처럼 동그랗고 단단한 감.


마침표가 저 멀리 있는 얽히고설킨 내 문장에 대해서 작가가 명확하게 정리를 해 주는 듯했다.


이번에는 문제를 풀 듯 노트를 옆에 두고 적어가면서 책을 읽었다. 작가가 제시한 문장을 보고 쓰고 소리 내어 읽으면 잠시나마 내 것이 될 것만 같았다. 맞춘 문장이 많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게 옳은 문장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런 문장에서는 멈추고 고민을 하고 또 했다. 마치 무언가에 빠져 지적 탐구를 하는 것처럼. 아무도 몰라주지만 혼자 으쓱했다.


김정선 작가님의 책 두 권을 읽었을 뿐인데 출판사에서 조언해 주신 이야기가 잘 와닿았다. 그리고 퇴고를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갈 길이 멀지만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고 내 문장을 다시 보니 더하기보다 빼기를 잘해야 한다는 게 진리임을 알게 되었다.


'어깨에 힘 빼십시오!'


예전에 존경하는 분이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든 문장이든 빼기를 잘해야 하나보다. 욕심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이 말이야말로 잘 살기 위한 진리이지 않을까?


필요한 시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 문장이 이상하든 이상하지 않든 이 책은 글을 쓰는 누구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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