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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19. 2021

두 눈을 뜬 날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렸다

나의 사랑 나의 린조!



<이어지는 글입니다.>


친구야, 조단이랑 고민 끝에 아기 고양이의 이름을 지었어. 그동안 공원에서 아기 고양이를 보면 내가 '쪼꼬미'라고 불러서 조단도 같이 '쪼꼬미'라고 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경우니까 이름을 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린조



어때? 좀 유치하지?

맞아, 린다와 조단의 앞 글자를 따서 린조라고 지었어. 너도 나도 아기를 안 키워봐서 우리는 아기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아기 때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비슷한가 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우리 린조는 하루 종일 잠만 자. 정보를 찾아보니 아기 고양이는 네 시간마다 우유를 먹여야 한대서 자는 린조를 깨워서 우유를 먹이고 부드러운 타월에 따뜻한 물을 묻혀서 똥꼬를 닦아줘서 응가도 시켜주고 있어. 내 평생 집에서 동물을 키워보는 건 첨이라 인터넷 공원에 가서 아기 고양이에 관한 정보를 찾아봤어. 그리고 고양이 세 마리 키우는 친한 오빠한테도 연락해서 물어봤고.


어쩜 요래 귀엽게 잠을 자는지

한국 같으면 동물병원에 가서 건강 상태도 확인받고 필요한 용품도 구입하면 될 텐데 여긴 그런 게 없잖아. 다행히 집에 탈지분유가 있어서 그걸 먹이고 있는데 고양이가 이걸 먹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 이곳에서는 액상 우유 구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 그래서  우리가 어릴 때 먹던 탈지분유 기억하지? 그걸 먹이고 있어.


티스푼으로 우유를 먹여주었더니 입도 안 벌리고 안 먹으려고 몸부림을 하도 쳐서 우유를 다 쏟아버리게 되더라고. 그런데 조단이 나가서 주사기를 하나 사 왔어. 지난번 공원에서 아이들 엄마가 주사기로 아기 고양이들에게 우유를 준 게 기억이 나서 우리도 따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여기저기 다 찾아서 겨우 하나를 사 온 거야. 조단이도 우리 린조가 걱정이 많이 된 거야.


그날부터 우리는 주사기로 우유를 먹였고 여전히 린조는 먹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래도 스푼으로 줄 때보다는 잘 먹어서 다행이야. 이 작은 아이가 내 손에서 양다리를 위아래로 쭉 펴고 안 먹으려고 몸부림치는 걸 보면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아.


우유를 먹고 나면 흰 수염이 생겨버려 하하

먹고 나면 운동을 조금 시켜야 한다고 해서 바닥에 내려놓고 걷기를 시키는 데 눈이 한쪽밖에 안 떠진 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걷긴 하는데 다리에 힘이 없어서 뒤뚱뒤뚱거리다가 넘어지고를 반복해.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서 고개를 양쪽으로 마구 저어. 마치 사람들이 정신 차릴 때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함께 한 지 며칠 안 되었지만 린조를 보니 사람들이 왜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람 취급하는지 이해가 가는 거 있지. 고양이 하는 행동이 사람이랑 너무 비슷해. 강아지도 그렇겠지.


린조에게 집도 생겼어. 내가 한국에서부터 들고 다니던 작은 아디다스 가방이 있는데 그 안에 휴대용 티슈 팩 하나를 넣고(매트리스) 그 위에 수건이랑 휴지를 깔아서 이불처럼 따뜻하고 푹신하게 해 주었어. 앗, 면 마스크가 있길래 그걸 맨 위에 깔아주었어. 그랬더니 린조가 편한지 아주 잘 자. 하루 종일 내 손에 들고 있을 수는 없잖아. 린조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나니 나도 맘이 훨씬 편해졌어.


린조의 집이야
새 집에서 잘 자는 린조

하루하루 린조는 잘 먹고 잘 자고 다리에 힘도 생겨나는 것 같았어. 뒤뚱뒤뚱 걷다가 픽하고 쓰러지고는 다시 일어나서 머리를 마구 흔든 다음 또다시 걷기를 하다가 쓰러지고. 네가 옆에서 함께 이 장면을 봤어야 하는데. 걸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이쁜지. 형제들은 벌써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혼자 살아남아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서 기특하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팠어.


린조가 내 품에 온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어. 눈에 눈곱이 있어서 한쪽 눈을 못 뜨는 것 같은데 나는 겁이 나서 손을 못 대겠더라고. 그런데 조단이 면봉으로 살살 눈곱을 떼어주었더니 드디어 우리 린조가 양쪽 눈을 다 뜨게 되었어. 두 눈을 다 뜬 린조를 보니 얼마나 기쁘던지. 아마도 사람으로 치면 아기가 처음으로 뒤집었을 때 부모들이 기뻐하는 그 심정일 거 같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린조가 너무 예뻐서 내 손에 올려놓고 세상 구경을 시켜주었어. 세상 구경이라고 해야 우리 집 거실이었지만. 훗.


두 눈을 뜬 날, 너무 예쁜 내새끼

그날 밤 11시쯤이었어. 잘 시간이 다 되어서 린조에게 우유를 먹이고 자려고 아디다스 가방에서 자고 있는 린조를 꺼냈어.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한 거야.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서지를 못하더라고. 이상해서 조단을 불렀어. 린조가 눈도 안 뜨고 몸이 축 쳐지더라고.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면서 큰일 났다 생각밖에 안 들더라. 조단이에게 말했어.


"자기, 큰일 났어. 린조가 이상해. 병원에 가야 해. 병원 어딨는지 알아?"


다행히 조단이가 지나가면서 본 국립 동물병원이 있었고 우리는 나가서 택시를 찾았어. 그런데 11시 반이 넘은 시간이라 택시가 없더라고. 결국 내 손에 린조를 올리고 다른 손으로 덮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어. 삼십 분 좀 걸으니 동물병원에 도착했어.


내 생애 첫 동물병원인데 그게 쿠바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쿠바는 교육과 의료가 무료잖아. 근데 동물병원도 무료여서 수납처가 없더라. 다른 곳처럼 사람들이 기다리는 데로 가서 마지막이 누구인지 물어보고는 기다렸어.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개를 데려왔고 고양이를 데려 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어. 다행히 병원이 24시간 내내 열려서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치료를 받을 수가 있었어.


한 시간 반쯤 지나가 내 차례가 왔어. 조단이랑 함께 안으로 들어갔더니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이 오라고 하더라고. 그 차가운 스테인리스 판 위에 린조를 올리시길래 재빨리 바닥에 휴지 한 장을 깔아주었어. 의사 선생님이 상태를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무 어린 고양이네요. 고양이는 45일 동안 엄마 젖을 먹고 면역을 키워야 하는데 이렇게 어릴 때 엄마 없이 키우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일단 수액을 놓아줄게요. 그럼 내일 아침까지는 우유를 안 먹이셔도 됩니다. 그런데 기억하세요. 오래 못 살 가능성이 높다는 거."


그러면서 우유를 뭐 먹이냐고 묻더라고. 탈지분유를 먹인다고 하자 '난'이라는 우유를 먹이라고 하더라고. 몇몇 슈퍼마켓에서 본 적이 있는 아기들이 먹는 비싼 분유였어. 그리고는 의사 선생님이 주삿바늘을 린조에게 꽂아서 수액을 놓아주셨어. 이 작은 생명에게 주삿바늘을 꽂는데 린조는 아무 반응도 못하고 계속 축 늘어져만 있더라고.


병원에 갔을때 축 쳐진 린조 / 수액 바늘을 꽂은 린조

수액을 다 맞고 다시 린조는 내 손에 왔어.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느꼈고 린조는 안심한 듯 보였어. 여전히 몸은 축 늘어져있었지만 말이야. 마침 택시가 있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린조가 내 손에서 쉬를 했어. 나는 그게 무슨 신호인지도 모르고 쉬를 한다고 좋아했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린조를 침대 위에 잘 올려놓고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글쎄 린조가....


느낌이 이상해서 손을 대어보니 숨을 쉬지 않더라고.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거야. 하필이면 그때 조단이 집에 없었어. 우리가 동물병원에 있을 때 할머니 맥박이 이상하다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셔서 린조 수액을 다 맞고 잠시 할머니 병원에 갔다가 나만 택시를 타고 온 거였거든.


조단에게 전화해서 엉엉 우니까 바로 집으로 왔어. 조단도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는 린조를 보더니 어쩔 줄을 몰라하더라고. 그런데 조단이는 너무 서럽게 우는 내가 걱정이 되는지 나부터 진정을 시켰어. 그리고는 린조 물건들을 챙겨서 린조와 함께 박스에 담고 묻어주러 가겠다고 했어. 같이 갈 건지 물어봤는데 나는 도저히 그 모습을 못 볼 거 같아서 안 간다고 했어.


새벽 세 시에 조단이 혼자 집 근처에 있는 영웅 공원에 가서 땅을 파고는 린조를 묻어주었어. 그리고 그 위에 돌을 하나 올려주었대. 조단이 종교인 요루바에서 돌은 영생을 의미한대. 그래서인지 비록 린조의 몸은 하늘나라로 갔지만 영혼은 영원히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는 거 같아.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린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걸 보면.


조단이 만들어준 린조의 무덤

린조를 위해서 기도했어. 하늘나라에서 형제들 만나서 행복하라고. 그리고 거기서는 엄마를 만나서 엄마젖을 맘껏 먹으며 건강하게 살라고.


친구야, 난 린조가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어. 자면서도 알람을 맞춰놓고 네 시간마다 일어나서 린조에게 우유를 줬는데.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떨어져서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면역이 없는 상태여서 그렇게 빨리 가 버린 것인지, 우유가 맞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의사가 놓아준 그 수액이 문제였던 건지...


뭐가 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단이랑 나는 일주일 동안 어떻게든 린조를 잘 키워보려고 애를 썼는데 린조가 떠나버린 거야. 어찌 보면 아주 짧은 일주인인데 린조와 함께 한 이 시간은 내 생애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이라 잊을 수가 없어. 린조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가만있으면 눈물이 자꾸 나오더라. 그럴 때마다 조단이 안아주며 나중에 우리 집으로 이사를 가면 고양이를 키우자고 하면서 달래줘.


근데 친구야, 참 이상하지. 린조가 두 눈을 뜬 날 무지개다리를 건너 가 버린게. 아마도 자기를 평생 잊지 못하도록 두 눈을 뜬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그리고 난 그런 린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오늘도 우리 예쁜 린조가 묻혀있는 영웅 공원을 지나며 린조가 하늘나라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서 맘껏 뛰어노는 걸 상상하며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보아.


나의 사랑 나의 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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