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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23. 2021

나의 첫 지적인 남자

나의 아저씨


남자를 알아가던 어린 시절 나는 지적인 남자가 좋았다. 당시 내가 정의한 지적인 남자는 내가 모르는 걸 다 아는 남자였다. 그러니 또래의 남자들은 남자로 보이지도 않았고 나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남자애가 누나라고 하지 않고 이름을 부르면 혼쭐을 내어줬다. 나에게 그들은 남자가 아니었고 그냥 한 인간이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살던 아파트 옆에 한방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에는 한의대 본과생들이 공부하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어떻게 내가 그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 한참을 그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대학생 언니 오빠들 틈에서 여고생이 와서 공부를 하니 몇몇 오빠들은 귀여워서 말도 걸고 먹을 것도 주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 도서관에 한참을 다닌 게 아닌가 싶다.


도서관에 자주 오던 오빠들 중에 내가 좋아했던 남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고 당시 본과 3학년생이었다. 키도 별로 크지 않고 잘 생긴 얼굴도 아니었지만 검정 뿔테를 쓰고 나지막한 목소리고 조용조용 말하는 그는 내가 만난 첫 번째 지적인 남자였다.


나는 여고를 다니고 있었고 또래 남자들에게는 관심이 일도 없었다. 나는 그 아저씨가 좋았다. 그 아저씨가 진정한 남자 같았다. 아저씨를 알기 전에는 다른 여고생들처럼 총각 선생님을 좋아했지만 아저씨를 알고 난 다음부터는 아저씨만 좋아했다. 그를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갔고 아저씨가 말이라도 걸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저씨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 더 자주 갔고 아저씨는 나를 보면 미소를 지었다. 힘들지 않냐며 가끔씩 공부하는 것도 봐주셨고 밥도 사 주셨다.


지적인 그 아저씨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절대로 누구를 야단칠 것 같지 않았고 화도 낼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동요 없이 그저 차분하게 일을 처리할 것 같았다. 말수는 적었지만 한마디 한마디 말에 깊이가 있었다. 본과 1학년생 중에서 나에게 말을 걸며 아는 척하던 뺀질뺀질한 오빠가 있었는데 그 오빠는 아저씨를 두려워했다. 하늘 같은 선배여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아저씨의 존재감 자체가 깊이가 얕은 그 오빠에게도 크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도서관에서 아저씨랑 소곤소곤 얘기를 하던 도중 아저씨 집이 경주라는 걸 알았다. 아저씨와 많이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지금은 이것 외에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고 3 때 이사를 가면서 더 이상 그 도서관을 가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아저씨랑도 자연스레 이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 까맣게 있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한의대를 졸업했으니 이변이 없는 한 한의사가 되었을 테고 대구나 경주 아니면 서울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되면 좋겠지만 내가 찾아가면서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다.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그 추억을 깨지 않고 싶으니까. 그런데 이 아저씨는 다시 만나고 싶다. 거의 삼십 년 전에 만났던 아저씨가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그 시절 우리는 참 순수했는데...아저씨는  아직도 말수가 적고 머리숱이 많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아저씨는 나에게 사랑이었기보다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사랑이든 존경이든 중요하지 않다. 나의 첫 지적인 남자였던 아저씨가 이 지구 상 어딘가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더라도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며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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