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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30. 2021

남편 따라 하다가 넓어진 내 이마


거울 앞에 선 남녀의 반응이 극과 극인 것을 만화로 표현해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그저 그런 남자들도 거울 앞에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반면, 남들이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여자도 거울 앞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만 보고 걱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운 내용이었지만 사실이었다. 나도 그랬으니.


지금은 나이가 들어 포기할 건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지만 예전의 나는 거울 앞에서 얼굴 부위를 하나씩 뜯어보며 걱정하곤 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널찍한 반달을 엎어놓은 것만 같은 매끈하고 훤한 이마를 가진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귀티가 줄줄 나 보였다. 관상에서도 이마가 훤하면 초년복이 좋다던데, 난 이마가 좁고 안 예뻐서 젊은 시절에 고생을 사서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이마에 불만이 꽤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옛날 사진을 보니 그 정도로 걱정할 수준은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결혼을 했는데 하필이면 내 남편의 인종이 흑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백인과 흑인이 섞인 물라토이지만 크게 봤을 때는 흑인인 것이다. 백인이나 황인들은 올곧은 머리카락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고 기껏해야 나 같은 반곱슬이지만, 흑인들은 주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까만 내 남편도 당연한 듯 그런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서 가끔 우리는 머리카락으로 농담을 하곤 했다.


"자기, 여기 라면 있어. 진까 꼬불꼬불해."


그러면 남편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국말로 대답했다.


"맛있게 드세요!"


남편 머리를 위에서 보면 꼬불꼬불한 게 라면과 똑같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신기해서 말한 건데 남편이 재치 있게 받아주어서 웃으며 농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는 데다가 앞머리는 수시로 다듬었다. 짧은 머리카락의 젊은 흑인 남자들의 앞머리를 보면 대부분 가지런한 일자로 되어있는데 남편의 앞머리도 그런 스타일이었다. 세밀한 작업이라 가위로 살짝 자르고 난 후 나의 눈썹 칼로 앞머리를 살살 다듬는데 그걸 보던 어느 날,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 바로 실천을 해 보았다.


눈썹 칼을 들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마선에서 비뚤비뚤하게 나와있는 잔머리부터 살살 밀어주었다. 겁은 났지만 조금씩 하다 보니 점차 헤어라인이 가지런해졌고 이마가 한층 넓어 보였다. 대만족이었다! 진작할 걸, 하면서 이 작업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씩 해 주었다.


그날도 거울 앞에 서서 헤어라인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체 거울 앞에서 뭐를 저리도 열심히 할까 싶어 궁금했는지 지나가던 남편이 돌아와 작업하는 나를 보며 말을 건넸다.


"자기 뭐해?"

"자기 따라 하는 거야."  


순간 남편이 빵 터져서는 깔깔대며 배꼽을 잡는 것이었다. 속으로 별 걸 다 따라 한다고 생각했을 테다. 한참 웃던 남편이 "자기 너무 귀여워!"라고 말하고는 너무 많이 다듬으면 보기 안 좋으니까 적당히 하라고 고해 주었다. 편이 내가 하는 걸 따라한 적은  많았지만 내가 남편을 따라 한 건 처음이라 웃기기도 하면서 자신을 따라 하는 내가 귀여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쿠바에서 정기적으로 이마를 넓혀주다가 한국에 와서는 그 작업을 멈추었다. 쿠바에서는 늘 올백 머리를 했기 때문에 이마가 중요했는데, 한국에 와서  머리를 짧게 자르면서 굳이 이마를 넓힐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훤한 이마가 예뻐 보이고 부럽긴 하지만 앞머리가 가려져 이마선이 보이지도 않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신경 쓰는 것조차 귀찮아진 탓이기도 하고.  


내가 옆에 없어서인지 요즘 남편은 내가 안 좋아하는 수염도 많이 기르고 머리도 예전만큼 자주 자르진 않는데, 다시 만나면 꼬불꼬불한 짧은 라면머리에 일자 앞머리로 돌아오겠지. 남편의 일자 앞머리를 보면 나는 또 눈썹 칼을 들고 거울 앞에 서서 훤한 이마를 만들까?


내 앞으로 자신의 까만 머리를 들이밀며,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는 귀여운 남편을 생각하니 미소와 함께 아침부터 라면이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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