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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26. 2021

당신 이름은 린다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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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혼인신고 서류를 준비하던 중 남편에게 나의 서류를 보여주며 내 한국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당신 이름은 린다 아니었어?"

"린다는 일 때문에 내가 만들어서 오래전부터 사용을 했고 원래 내 이름은 이거야."


 말을 듣고 남편은 너무 놀랍다며 어떻게 진짜 이름을 이제야 알려주냐며 화(?)를 내었다. 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말한 거였는데 남편이 정색을 하자 놀라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뭐 이런 일로 그렇게 놀라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자기는 원래 내 이름이 조단인데 처음부터 제임스라고 하면서 계속 만났다가 어느 날 내 이름이 조단이라고 말하면 안 놀라겠어?"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놀라울 것 같았다. 남편은 또 혹시라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 진짜 이름을 모르고 계속 린다라고 하면 곤란한 상황이 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그 말도 맞았다. 그제야 미안하다고 하면서 진정하라고 하자 남편도 감정을 억누르고 발음하기 힘든 내 한국 이름을 함께 불러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나의 이름 '린다'는 2007년에 내가 만든 이름이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이 고객인 일을 시작하면서 고객들에게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초반에는 회사에서 일을 한 게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을 했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게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나의 한국 이름에는 받침이 있는 데다 발음이 어려워서 그동안 만났던 외국인들이 내 이름을 힘들어하며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객들이 한번 들으면 잊않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종이에 여자 이름들을 쭉 적어 보았다. 한국 이름처럼 두 자로 되어 있고 부르기 쉬운데 의미도 괜찮은 걸로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삼일 동안 고민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름이 '린다'였다.


린다(Linda)는 스페인어로 예쁜, 귀여운, 상냥한 등의 의미를 가진 형용사이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부르기도 쉬워서인지 영어권이나 스페인어권에서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린다라는 단어는 쿠바에서 길을 걷다 보면 할 일 없는 남자들이 길거리에 앉아서 여자들이 지나가면 부를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쿠바에서 혼자 길을 걷는데 자꾸 린다라고 불러서 내가 아는 사람인 줄 알고 계속 돌아봤더니 죄다 모르는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어이, 이쁜이' 이런 의미로 부른 거였다. 캣 콜링 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 것이다.


2007년부터 린다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보니 그때 이후에 나를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내 한국 이름을 아는 이가 드물어서 겪은 에피소드여럿 있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 택배기사님이나 배달하시는 분이 오셔서 내 한국 이름을 말하면 리셉션이나 신입들은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이름을 아냐며 물어보곤 했다. 사람들이 팀장님 이름이라고 하면 아~하면서 그제야 택배를 받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럴 때면 일하다 말고 다들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나도 내 이름이 어색해, 하하하!"


공식적인 서류 외에는 한국 이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내 진짜 이름을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어색해져 갔다. 내 한국 이름은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뜻이 아주 웃기다. 진짜 솥뚜껑. 오빠들과 같은 돌림자를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빠께 이름을 바꿔도 되겠냐고 여쭤봤더니 그래도 된다고 하셔서 이왕 린다로 불리는 거 아예 공식문서에도 바꿔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일이 생겨서 아직까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쿠바에서 혼인신고를 하는 날이었다. 쿠바에서는 혼인 신고를 공증 사무실에서 공증 변호사가 집도한다. 우리 담당 변호사는 여성분이셨고 커다란 테이블에 남편과 내가 앉았고 맞은편에 그녀가 앉아서 여러 장의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내용이 많다 보니 아주 빠른 속도로 읽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내 한국 이름이 나올 때면 그녀는 잠시 멈춤을 해야 했다. 그녀에게 몹시 어려운 새로운 언어를 제대로 읽는 게 쉽지 않아 천천히 힘들게 더듬더듬 내 이름을 읽었는데 그럴 때면 그녀도 우리도 함께 웃었다. 쿠바인들은 내 한국 이름을 들으면 다들 어렵다며 웃었다. 내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이 웃으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위기가 썰렁할 때 내 한국 이름을 말하면 분위기 전환용으로 꽤나 쓸모가 있으니 말이다.






쿠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에 '쿠바댁'이라고 하다가 '린다'를 붙여서 카톡 프로필에 '쿠바댁린다'라고 적어놓았던 게 이제는 나의 이름으로 굳어져 버렸다. 나의 모든 SNS 프로필 이름이 쿠바댁린다이니. 나의 한국 이름도 좋고 린다라는 이름도 좋은데 나는 쿠바댁린다 가 참 좋다. 앞으로도 나는 쿠바댁린다 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고 이 이름으로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그렇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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