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Oct 25. 2021

사랑은 유치한 거랬어요


'식욕은 20대인데 소화력은 60대'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문장 같았다. 한동안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등산을 하면서 식욕이 폭발했고 그때는 뭘 먹어도 금세 소화가 다 되어 배가 나올 틈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발 때문에 등산의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자 바로 몸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않으려면 조금만 먹어,라고 명령이라도 하듯 보통처럼만 먹어도 소화를 잘 못 시키고 어린아이처럼 윗배부터 빵빵해졌다. 필라테스라도 계속하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걸로도 소화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몇 년 만에 부산에 갔을 때 첫 끼로 먹은 언양불고기가 맛있어서 조금 욕심을 냈더니 그 후부터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자 도저히 힘이 들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찾아온 추위가 내 몸을 더욱더 움츠려 들게 해 버렸다. 당시 나에게는 겨울 옷이 없었다. 임시 숙소라 겨울 옷까지는 챙겨 오지 않았던 거였다. 잠시 찾아왔던 추위가 살짝 물러나자 낮시간 동안의 햇살이 조금은 따스하게 여겨졌다.


그날도 밥을 먹고 나니 배가 빵빵해졌다. 산책 가는 길을 향해서 일단 걸었다. 집 근처에 있는 넓은 대학교 캠퍼스로 들어가 익숙한 길을 걸어갔다. 학교가 꽤 커서 학교 안만 다 걸어도 소화가 될 것만 같은데 나는 늘 걷던 길로만 걸었다. 내가 걷는 길에 오르막이 있는데 나는 그 오르막을 좋아했다. 가장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산과 연결된 산책로가 나온다. 그곳에서 나는 산에도 갈 수 있고 호수에도 갈 수가 있다.


호수로 산책을 하고 었지만 잠시 후면 어둑어둑 해 질 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산책을 하는 건 무서워서 관두기로 했다. 일단 가장 가파른 오르막까지 올라갔다. 그리고는 다시 내려왔다. 아쉬운 마음에 오르막을 한번 더 올랐다. 그리고 또 내려왔다. 갑자기 이 오르막을 올랐다 내렸다만 여러 번 해도 소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오르막 길을 올랐다 내렸다를 계속했다. 열 번도 넘게 했다. 그렇게 혼자서 몇십 미터쯤 되는 오르막을 올랐다 내렸다 하다 보니 남편과 함께 했던 그 일이 생각났다.






코로나로 나의 외출이 금지가 되어 집에만 있을 때였다.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산책을 가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어서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거실이라도 걷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는 원 베드룸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거실은 아담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에 남편 손을 잡고 몇 미터가 되지 않는 거실을 걸었다. 그런데 그냥 걷기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현관문과 반대편 벽에 도착하면 '쩐'이라고 하며 문과 벽을 치고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이런 놀이를 던 게 어렴풋이 기억나 따라 해 보았다.


학다리를 가진 남편이 몇 번만 걸으면 끝나는 거실을 우리는 계속 돌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둘이 손잡고 쩐 하면서 현관문을 쳤다가 돌아 반대쪽으로  걸어가서 벽을 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누가 조금이라도 빨리 쩐을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둘이서 깔깔 대며 열 번을 넘게 그러면서 놀았다. 남편이랑 둘이 그러고 나면 소화가 쬐금은 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걸어서 소화가 된 게 아니라 하도 웃어서 된 것일 수도.


그때를 생각하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내렸다 하니 웃음이 나왔다. 아무도 없는 산 근처라 마스크를 벗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CCTV가 있어서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아마 반쯤 실성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었을 테다.


사랑은 유치한 거랬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사랑이 싹트고 사소한 것에서 감정이 상한다. 남편과는 이렇게 유치한 행동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내가 어떤 유치한 행동을 해도 다 받아주고 본인이 하기 싫어도 내가 하자고 하면 함께 해 주는 남편 덕분에 격리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요즘은 사람들도 잘 안 만나고 혼자서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많아서 별로 웃을 일이 없는데 어제 남편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엄청 웃었다.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을 하고는 전화를 했는데 운동하고 나서 향상된 몸매를 자랑하느라 웃기는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보여주는 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자랑할 때마다 나는 "우와~~ 자기 최고!"라고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었고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입을 씰룩씰룩하며 남편만의 그루브로 보답했다.


코로나19로 내가 계획한 게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불투명해졌고 내 머릿속도 복잡하긴 하지만 남편의 웃음을 보면 힘이 난다.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걸 새로이 시작해야 하지만 남편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테다. 20대도 아니고 30대도 아니고 낼모레 50에 다시 시작한다는 게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끔은 두렵고 가끔은 움츠려 들기도 하지만 남편과 함께 차분히 잘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건 두렵기도 하지만 설렘도 크다. 초반에는 서로 많이 힘들겠지만 힘들 때마다 유치한 짓을 하며 깔깔대고 웃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오르막길에 올라가 있지 않을까?라고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은 오징어 게임이 무섭다고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