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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Oct 21. 2021

남편은 오징어 게임이 무섭다고 했다

나도 무섭다


어제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남편이 말했다.


"자기, 오징어 게임 무서워!"

"아, 오징어 게임? 하하하."

"사람들을 다 죽여. 무서워..."

"응, 다 죽이지 한 명 빼고. 근데 한국은 총기 소지가 불법이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도 남편은 계속 무섭다고 했다. 게임에 지면 총을 든 암살자들이 모조리 다 죽여버리니 자기가 알고 있던 한국이랑 너무 달라서 많이 놀란듯했다. 사촌이랑 함께 오징어 게임을 봤는데 사촌이 남편도 한국에 가면 저렇게 죽을까 봐 남편을 걱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쿠바인들도 무서워하냐고 물어보니 당연한 거 아니냐며 다들 무서워한다고 했다. 남편은 이제 오징어도 무서워서 못 먹겠다고 했다. 어차피 쿠바에서는 일반인이 오징어를 먹는 건 힘드니 남편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아무튼 자본주의에서 나온 열화와 같은 반응과 달라서 좀 놀라웠다.


혹시 인터넷이 잘 안 되는 쿠바에서도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보나? 하고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 테다. 쿠바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넷플릭스로 보는 게 아니고 누군가가 불법 다운을 받아 그 파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남편은 '마이네임'이 이제 대세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쿠바에서.


내가 넷플릭스를 처음으로 본 건 멕시코에서였다. 삼 개월에 한 번씩 장 보러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에 가면 그때 넷플릭스를 볼 수가 있었다. 멕시코는 인터넷이 빵빵 터졌으니.


한국에 와서 넷플릭스 멤버십에 가입했다. 하지만 나는 시리즈물을 거의 보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넷플릭스에 없는 게 많아서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 나왔을 때 나는 멤버십을 해지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직 오징어 게임을 풀영상으로 시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오징어 게임에 관해 설명해 놓은 걸 여러 편 보고 나니 굳이 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오징어 게임을 꼭 봐야겠다는 욕망은 일지 않았다.


남편을 이해한다. 죽음에 민감하고 생명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남편이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할리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고 온갖 매스컴에서 앞다투어 오징어 게임에 대해서 그리고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지금, 분명 어딘가에는 남편과 나처럼 오징어 게임이 무섭고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국뽕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다. 20대부터 외국에서 생활을 했고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외국인들과 만나면 내 나라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샘성(삼성), 현다이(현대) 그리고 엘쥐(LG)를 말하면 아~~ 하면서 그 나라가 한국이구나,라고 말을 했다. 그러면 나는 자랑스러워서 어깨에 장착한 뽕을 한번 쳐 올리고는 응, 내 나라야,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한국 역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외국인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는 북한과의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다.


요즘은 화장품과 드라마를 비롯한 문화가 대세다. 한국 음식들도 줄줄이 인기를 얻고 있고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는 국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제 본 유튜브에서는 뉴욕에서 한국 핫도그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며 엄청난 줄까지 선다고 말했다. 멕시코 코스트코에서 비비고 만두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판매하는 걸 봤을 때, 놀라면서 기뻐했던 내 모습도 오버랩이 되었다. 마치 내가 비비고인양 자랑스러웠으니.


그런데 지금은 오징어 게임이다. 나의 편협한 시각으로 오징어 게임을 간단히 말하자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내용인데 재미있게 잘 만든 시리즈물이다. 오징어 게임을 연출하고 만든 황동혁 감독은 그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어릴 때 하던 놀이를 가져왔다. 혹자는 일본 드라마를 표절한 거라고 했지만 그런 걸 본 적이 없는 나는 이 게임들을 보면서 아주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제목의 오징어 게임 빼고 내가 다 했던 거니까.


특히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핫한 달고나는 초등학교 때 매주 성당을 다녀오면서 빠지지 않고 늘 했던 것이다. 우리는 '국자'라고 불렀다. 육십도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동그란 천막 속 낮은 의자에 앉으셔서 나 같은 초등학생들이 오면 할아버지의 밥줄이자 훈장 같은 아주 낡은 국자에 설탕을 퍼 넣으시고 저으셨다. 설탕이 녹아 투명해지면 소다를 집어서 좀 넣으시고 건강한 똥색을 띠며 부풀어 오르면 국자를 뒤집어 설탕 덩어리를 스테인리스 판에 탁 하고 놓으셨다. 그리고는 평평한 솥뚜껑 같은 작은 원판으로 덩어리를 살포시 눌러 납작하게 한 다음 내가 원하는 모양을 찍어주셨다. 그러면 나는 이미 들고 있던 바늘로 심혈을 기울여 그 모양대로 살살 떼내었고 성공을 하면 하나를 더 받았다. 정말 스릴 만점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친구들이랑 참 많이 했다. 동생들이랑도 많이 했고. 오빠들은 틈만 나면 나가서 친구들이랑 구슬치기를 했고 딱지치기도 많이 했다. 친구들에게 이겨서 딱지를 두툼하게 가져오는 날에는 기세가 등등했다.


나는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를 좋아했다. 특히 고무줄을 잘해서 나는 늘 끝까지 남은 사람이었다. 고무줄놀이하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게 학교에서 여학생들끼리 고무줄놀이를 할 때 가위를 가져와 고무줄을 자르고 도망가는 남학생이다. 그때 남자아이들은 그걸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당하는 여학생들은 그게 그렇게 분하고 짜증이 났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귀엽다.


땅따먹기도 많이 했다. 그게 오징어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긴 건 비슷한 것 같다. 어린 시절 그런 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소소하고 그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추억들이 잔인하게 변해버렸다. 걸리면 죽는다,라고 한 게 진짜가 되어 버렸다. 걸리면 다 죽였고 걸린 사람들은 다 죽었다. 맨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나는 그 여자 인형이 너무 무서웠다. 꼭 처키처럼 생겨서 로봇처럼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리고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사람을 찾아서 총을 쏘아 죽여버리는 그 인형이 어찌나 잔인하던지. 꼭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았다. AR 기술로 만든 안경을 끼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점수까지 나와 점수가 낮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미래. 중국에서는 이미 시작을 했고 그렇게 한 지가 좀 됐다고 들었다. 총을 쏘아서 죽이는 거나 존재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나 죽이는 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게임 전에 공유가 나와서 전철역에서 딱지치기를 하자고 한 건 또 어떤가. 선하고 잘생긴 얼굴의 남자가 돈을 미끼로 무자비하게 뺨을 때리는 걸 보면서 유아인이 나왔던 영화 베테랑이 생각났다. 실컷 때리고 돈을 던져주는 그 장면. 모 회장을 모티브 했다는 그 영화를 보고 나서도 마음이 참 아팠고 분노했던 기억이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 남편은 이 장면에서도 엄청 놀랐을 테다.


456억이라는 돈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배신했다.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했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잔인했다. 다른 사람을 죽여야 내가 가지는 돈이 늘어나니 그 돈을 가지기 위해서 혹은 죽지 않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했다. 게임이 하나 끝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에서 사람들을 죽였을 때는 충격적이었지만 지는 사람은 죽는다는 게임의 룰을 알게 된 이상 죽는 게 그리 이상하는 게 아닌 걸로 되어버렸다. 죽고 죽이는 게 쉬운 걸로 각인이 되어 버렸다. 이 시리즈를 전 세계가 보았고 어린이들까지 봤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오징어 게임은 대단했다. 컬러풀하고 화려한 무대며 추억의 놀이를 대입시킨 줄거리며 배우들의 연기며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멋진 시리즈였다. 그런데 그걸 빌미로 죽음을 너무 쉽게 또 잔인하게 만들어버린 건 몹시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현실이 오징어 게임보다 더 잔인할 수도 있다. 몇 십만 원에 사람을 죽이고 또 스스로 죽기도 하니까. 물론 내가 보는 이 관점이 아닌 다름 관점으로 오징어 게임을 시청하고 평가하는 분들도 많을 테다. 사물 하나를 보아도 각자가 느끼는 건 다르니까. 모든 이의 의견을 존중한다.


내가 노파심에 걱정하는 건 손가락 하나로 쉽게 접하는 매체를 통해서 (게임을 하다가 쉽게 죽는 것처럼) 죽음이라는 게 대중들 속에 쉽게 스며들어 더 잔인하고 자극적인 걸 접하다 보면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사람은 그걸 현실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움직이면 죽어,라고 말했던 게 현실이 된 것처럼. 리고 이게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면서 모두가 봐야만 하는, 보지 않은 이는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드니 더 많은 이가 보게 되고 그 더 많은 이들의 뇌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이라는 게 아주 쉬울 수가 있다는 생각이 각인이 되어버렸을 수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처럼 한국의 어떤 감독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시리즈를 획기적으로 만들어서 이 세상을 사랑으로 하나 되게 만들면 어떨까? 어찌 보면 식상한 주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이라는 소재도 식상한데 황동혁 감독이 획기적으로 만든 게 아닌가. 그러니 사랑이라는 소재로도 깜짝 놀랄 만한 게 나올 수 있다고 믿어본다.


화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다. 남편과 내가 원하는 그런 세상.


그저 그런 나의 단순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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