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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24. 2022

49살에 다시 입사했다

모든 게 우발적이었다.

퇴사하기 전에 나의 재정상황을 꼼꼼히 확인하고, 퇴사 후에는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한 후 최적의 시기에 퇴사한 게 아니라 나의 퇴사는 하늘에서 계시를 받은 것 같은 무언의 메시지를 들은 날 결정되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일할 때는 내가 봐도 매우 논리적이며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나 자신의 일에는 머리보다는 가슴의 소리를 듣고 따르는 누군가가 일전에 말한 이상주의자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2017년 10월 보름 동안 첫 쿠바 여행을 다녀온 후 정확히 일주일이 되던 날 퇴사를 결정하고는 2개월 후인 12월에 퇴사를 했다. 소위 스카우트를 받아 시작하게 된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내 한 몸을 내던져 최선을 다해 만들어 온 팀을 떠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최선을 다하였기에 아무련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퇴사 결정을 하고 2개월 동안 남아있는 이들이 문제없이 일할 수 있도록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걸 아낌없이 알려주었고 퇴사 후에도 파트타임으로 잠시 동안 일하며 필요한 부분들을 보충시켜주었다.  


일반일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주재원 업무는 지금도 생소해서 희소가치가 있는 블루오션에 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목표지향적이었던 나는 입사 후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였고 그 결과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그룹에서 인정을 받았고 그것은 곧 업계에서의 인정으로 이어졌다. 이 회사에서 많은 성장을 했고 내가 했던 업무가 여러 방면에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는 글로벌 이주정착 서비스 전문가(Global Mobility Specialist)로 주재원들이 한국에 부임하기 전 한국에 방문해서 진행하는 오리엔테이션부터, 부임이 확정되면 받아야 하는 상용비자, 한국에서 거주할 집을 렌트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 국제학교도 알아봐 주며, 정착에 필요한 은행계좌 오픈과 운전면허증 교환 등 한국으로의 입국부터 퇴거하기까지 한국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거래처도 다양했고 만나는 이들도 많았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사건 사고 및 까다롭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다양한 국적, 다채로운 성격과 인격을 가진 분들을 만나니 지루할 틈이 없었을뿐더러 훌륭한 분들을 만날 때에는 일에 대한 보람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팀원들에게는 고객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우리야말로 민간 외교관이라며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자고 했고 모두들 잘 따라주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마냥 장밋빛만 있는 게 아니듯 자랑스러워하던 회사의 그룹 CEO 가 바뀌면서 회사 방향이 달라졌고 그동안 좋아했던 회사가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게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그만두지 못하다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발적으로 퇴사 결심을 했으니 지금 돌아보면 좀 웃기기도 하다. 여전히 후회는 없지만 말이다.


10여 년을 했던 일이라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하는 일이었지만 퇴사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고 더 이상 이 일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서의 삶을 완전히 정리하고 남편의 나라인 쿠바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그곳에서 새로운 일을 하며 잘 살아보려고 영주권도 받고 작은 아파트도 하나 사서 1년을 넘게 수리했다. 센 언니로 불리며 카리스마를 장착했던 나였는데, 오랫동안 함께했던 그 카리스마는 쿠바란 새로운 곳에 오면서 내 품을 훌쩍 떠나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미련 없이 날아가버렸고, 화기가 많았던 나란 사람이 웬만한 일에는 화내지 않으며 날이 갈수록 인내심이 늘어가는 순박한 여인으로 변신했다. 나는 다시 밑바닥에서부터의 온전히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있었다. 극과 극의 삶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전 세계에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돌았고 원래도 인프라가 없던 쿠바가 코로나19로 점점 살기가 더 힘들어지자 남편의 권유로 혼자서 잠시 한국에 쉬러 왔는데,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을 다시 하게 된 것이었다.


퇴사 후 4년 동안 특별한 경제활동은 하지 않았고 쿠바에서 글을 쓰고 요리를 하며 운동을 했다. 지나고 보니 참 소중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한국에 와서 보니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고 쿠바에서의 느긋한 삶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세상에 맞는 새로운 일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쿠바에 있는 남편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전화할 때마다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최고로 아날로그적인 남편은 내가 하는 말이 그리 와닿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그동안 내가 알던 긍정적인 남편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몹시 나약해져 궁지에 몰린 듯 불안해져 있었고 내가 하려던 일에 반감을 느끼며 다시 회사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면 저런 얘기를 할까 하는 생각에 놀라면서도 몹시 마음이 아팠다. 결국 안정된 삶을 원하는 남편의 간절함으로 내 계획에 전혀 없었던 이 일을 다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퇴사할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일을 하게 된 것도 나의 계획이 아닌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의 간절한 소망을 듣게 된 그날 다시 예전에 하던 일과 연결이 되었고 예전 회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옛 동료가 대만에서 2017년에 새로이 시작한 회사의 한국지사를 맡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이 나이에 일을 구했다는 것에 대단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는 정년퇴직이 60세 이상이었지만 이제는 40대에도 퇴직을 하는 시대라 남들은 퇴직을 하는데 나는 다시 회사에 입사를 했으니 말이다.


내가 운이 좋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내가 하는 일이 일종의 특수분야이기도 했고, 이 일을 아는 사람 특히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희소성의 가치로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하는 나의 일은 로봇이 대체할 수도 없는 일이라 아마도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업무 강도가 높은 일인 만큼 피로도도 높아 얼마 동안이나 일을 할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다음에 퇴사할 때에는 우발적이 아닌 계획을 잘 만들어놓고 해야지 하는 생각이다. 그때는 싱글이었고 지금은 가족이 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시 일을 하니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는데, 예전에 비해 할 일이 더 많아져서 조금 힘에 부치는 감이 있긴 하다.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거겠지. 그러니 예전처럼 막무가내 정신으로 죽기 살기로 일하는 건 위험한 일일 테고 컨디션 관리를 잘하며 길게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해야 할 테다. 나이가 들면 몸은 좀 더 힘들지만 마음은 좀 더 여유로워지고 삶의 지혜가 더 발휘될 테니 잘 활용해 보아야지.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이 한국에 와서 옆에서 응원해주면 힘이 솟아 더 잘할 수 있을 테다. 자기야 얼른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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