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산길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장마 전에는 산길로 올라갔다가 큰길로 내려왔는데 장마로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지난번에 올라가 보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군데군데 길을 막아둔 곳이 있어서 요 몇 주동안 계속 큰 길로만 남산을 올라갔더랬다.
좁은 산길을 올라가다가 할아버지 세 분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그중 맨 앞에서 씩씩하게 오르는 분의 발을 우연히 보았는데 맨발이었다. 평지에서 맨발은 이해하지만 산길은 가시도 많고 작은 돌도 많을 텐데 맨발로 걸으시다니! 게다가 그분은 걸음이 빠르셔서 맨발임에도 불구하고 성큼성큼 잘 걸으셨다. 일행인 줄 알았던 다른 두 분과 격차가 많이 나길래 살펴보니 혼자 오신 분이었다. 그분을 앞서다가 잠시 안내표지판 사진을 찍는 동안 내 앞으로 진격하셔서 다시 뒤에서 따라가게 되었다.
그러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어른들이 어디에선가 나타나셨는데 그분들도 맨발이었다. 설마? 하며 한 분씩 발을 다 확인했데 열 분이 넘는 분들 중에서 맨발이 아닌 이가 한분도 없었다. 그곳에서 신발을 신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거기엔 멍석 같은 게 깔려있어 산길보다는 안전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요즘 맨발로 산책하기가 유행인가?
산에서 맨발로 걷는 게 건강에 좋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단체로 맨발인 경우는 처음 봐서 신기했던 것이었다. 게 중 어떤 분은 그곳에 운동화를 벗어놓고 왔다 갔다 하시는 건지 좀 더 걷다가 운동화 한 켤레가 나뭇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문득, 그분들 사이에서 걷다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모두가 맨발인 곳에서 나 혼자 신발을 신고 있으니 왠지 나도 신발을 벗어야만 할 것 같았다. 만약 짧은 구간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걷는데 모두가 맨발이면 신발을 신고 걷는 내가 잘못된 것 같아서 나도 벗어야지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신발을 신고 걷는 게 정상(?)인데 말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나란 사람에게 내 의견이 없고, 늘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나도 얼떨결에 신발을 벗을 수도 있겠구나. 신발을 벗고 산길을 걷는 건 건강에 좋은 일이지만, 만약 좋은 일이 아닌데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똑같이 하고 있다면 올바른 가치관이 없거나 판단력이 없는 경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충분히 휩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발의 어른들을 보다가 너무 깊은 생각에 빠져버렸나? 훗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좁은 산 길이 끝이 났고 큰 길이 나왔다. 이른 토요일 아침인데 많은 분들이 산책을 하고 계셨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발을 먼저 확인했다. 큰길에서는 모두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내가 별 생각을 다 했네 하며 그냥 씩 웃어 버렸다.
잠시 후 벤치가 보여 글을 쓸 겸 앉았는데 곧이어 맨발의 할아버지가 내가 앉은 벤치 옆에 가방을 내려놓으시더니 긴 바지를 벗으시는 것이었다. 뭐지? 하고 봤더니 반바지가 나왔고, 수건을 꺼내어 발을 닦으시고는 신발을 신으셨다. 산 길에서만 맨발이었던 것이었고 큰길에서는 신발을 신으셨다. 정상인으로 변신! 하하하
발이 안 좋아서 예민한 나는 아무것도 없고 평탄한 곳에서는 맨발로 걷기가 가능하겠지만 산길에서 맨발로 걷는 건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건강을 위하여 산길에서 맨발로 걸으시는 어른들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요즘 매일 아침 남산에 오를 때가 참 행복하다. 초록 초록한 나무들을 보면 눈이 시원해지면서 멀리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잘 보이는 것 같고, 초록의 푸르른 향이 온몸을 자극해 걷는 내내 기분이 시원하다. 오늘 아침엔 마치 가을 인양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 땀으로 꾸덕해진 내 몸을 말려주었고, 하늘까지 맑아서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매일 산에 가다 보니 간간히 재미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니 혼자 가는 산길이 외롭지가 않다.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서 남산에 가야겠다. 일요일에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