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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n 27. 2020

그래서 저는 장 보러 멕시코에 갑니다.-제14화-

윤희와의 두 번째 데이트


윤희가 학교 안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언니, 여기가 우리 교실이야.
언니, 우리가 들어온 문은 뒷문이고 여기가 정문이야. 이 쪽으로 들어오면 신분증 맡겨야 해.

여기는 내가 친구들이랑 점심 먹는 식당이야.


윤희가 학교의 이 곳 저곳을 소개해 주었다.


윤희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UNAM(Universidad Nacional Autonoma de Mexico) 우남 대학교(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는 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멕시코 시티의 국립대학교이다.


이 대학교는 1551년 9월 21일에 처음 설립이 되어 1910년 4월에 멕시코 국립 대학교로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1929년에 자치권을 획득한 이 대학은 정부의 간섭 없이 자체 커리큘럼을 만들고 자체 예산을 관리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게 되었다. 서울 여의도(약 2.8제곱킬로미터) 면적에 캠퍼스 내에 건물만 2,000개가 넘고 셔틀버스 노선이 13개이고 메트로 버스 정류장이 4개에 지하철역 2개가 우남대학교를 지나간다고 하니 스케일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긴 크다.


윤희와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치과 재료상에 가기 위해서 천천히 학교 구경을 하면서 걸어갔는데 저 멀리 벽화가 아주 멋진 건물이 보였다. “우와, 윤희야 저 건물 되게 멋지네!”라고 말하자 “언니, 저게 중앙 도서관이야.”라며 윤희가 알려 주었다.


1950년부터 6년 동안 멕시코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후안 오고르만(Juan O’gorman)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서관의 모자이크 벽화(4면이 모두 벽화임)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벽화라고 했다. 멀리서 대충 보아도 스페인 정복 전의 멕시코 역사인 것 같았는데 확인해 보니 뒷 면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정복하기 전, 앞 면은 정복 이후의 역사와 과학적 업적이 새겨져 있었다.  


멀리서 본 아주 멋진 중앙 도서관 뒷면


이 건물 이외에도 멋진 건물들과 조각들이 여럿 보였고 대부분 역사와 관련이 많은 듯했다. 내가 그곳에서 가장 신기했던 건, 대학교 캠퍼스 안에 원주민들이 들어와서 장사를 하고 있는 거였다.(사진이 없어서 안타깝다.) 어른들도 있었고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노점도 아닌 곳에서 그냥 앉아서 혹은 서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원래 원주민들의 땅이었던 이 곳에 유럽의 백인들이 쳐들어와서 그들을 학살하고 땅을 다 빼앗아 지금은 오도 갈 데도 없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원주민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한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역사는 강자의 편이라고 하니 이들의 가난에 대한 대물림은 아무래도 끝나는 게 힘들 것 같아서 참 마음이 아팠다.


21년 전 멕시코에 처음 발을 디딘 다음 날, 점심을 먹으로 한 레스토랑에 갔는데 아주 어린 원주민 남자아이가 와서 장미꽃을 팔았다. 마음이 짠해서 사 줄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사지 말라고 했다. 그걸 팔아서 돈이 생기면 아이들이 마약을 산다고 했다. 밥을 먹고 걸어가는 데 길가에 아이들을 줄줄이 데리고 앉아 구걸하는 원주민 여인들을 보았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고는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신대륙을 발견했다던 그렇게 대단한 콜럼버스가 미워지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원주민 학살에 대해서 배울 때, 아무 생각 없이 달달달 외우기만 했던 그때의 나도 반성이 되었다.






윤희와 쫑알쫑알 얘기를 하며 걷다 보니 치과 재료상에 도착을 했다. 꽤 큰 약국 같은 곳이었다. 3월에 미처 사지 못 한 것을 드디어 그곳에서 구입했다. 재료는 생각보다 비쌌지만 리스트에 있는 할 일 하나가 마무리가 되자 마음이 좀 더 가벼워졌다.


첫 번째 목표가 완성이 되자 윤희가 좋은 동네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저녁을 고기로 배를 채울 예정이어서 점심은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언니, 메트로 버스 타봤어?

아니, 아직 안 타 봤어.

아, 그럼 우리 메트로 버스 타고 가자.


그리하여 윤희 덕분에 처음으로 메트로 버스를 타 보았다. 메트로 버스에는 핑크색의 여성 칸이 있었는데 그곳이 안전하다며 우리는 그 칸에 탔고 한가한 낮시간이라 자리가 있었다. 일반 버스에 비해 요금이 좀 더 비싼(350원) 메트로 버스는 저렴한데 비해 깔끔하고 지하철보다 안전해서 그 후로 나는 메트로 버스를 몇 번 더 타 보았다.


메트로 버스와 여성 전용칸


메트로 버스에서 내려 좀 걷다 보니 학교 근처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나타났다.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힙하고 분위기 좋은 동네 중의 하나인 라 꼰데사(La Condesa)였다. 3월에 내가 마지막 날 갔던 미니소가 있던 그 동네였다. 동네 가운데에 나무들이 울창한 예쁜 공원(시티 공원)이 있었다. 뉴욕에 있는 센트럴 파크의 미니미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커다란 연못에 분수도 있었고 어린이들을 위한 넓은 놀이터도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 놀이터보다 더 넓은 멍멍이 전용 놀이터도 있어서 멍멍이들에게도 환영받는 공원이었다. 평일 낮이라 역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걷다 보니 아주 멋진 건물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멋진 건물들은 대부분 카페나 레스토랑이었다.


윤희가 “언니, 여기야.”라고 하며 아주 예쁜 건물 앞에 멈추었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노란 등이 여기저기에서 은은한 빛을 비추고 있는 내부를 지나자 아주 컬러풀한 벽화로 둘러싸인 초록 초록한 널따란 외부 카페가 나타났다. “어머, 윤희야. 여기 너무 이쁘네.” 하고는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젊은이들이 딱 좋아할 만한 그런 힙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카페에 왔으니 카푸치노를 시켰다. 커피 맛은 놀랄 만큼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너무 빨리 카푸치노를 마셔버린 나는 후렌치 후라이와 맥주 하나도 시켰다.


카페는 이런 분위기였다(윤희의 도촬)


전 날 월마트에서 쇼핑을 제대로 했기에 이런 여유도 누릴 수 있는 거였다. 한가한 평일 오후에 이런 분위기 좋은 카페에 혼자 와서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시킨 후렌치 후라이와 맥주도 어느새 비워져 있었다. “언니, 이제 갈까?” 하며 윤희가 계산서를 요청했고 계산서가 나오자 “언니, 일요일에 저녁도 언니가 사고 택시비도 냈으니 이건 내가 계산할게.” 하면서 윤희가 쿨하게 계산을 했다. 윤희야 고마워!






우리는 우버를 타고 저녁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고 저녁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우리는 걷기로 했다. 레스토랑은 최고급 샵들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프레지던트 마사맄 애버뉴에 있었다. 지난 12월에 매일 아침 쿠바 영사관을 갈 때 지나가던 곳이었다. 혹시라도 쇼핑할 데가 있을지 두리번거리며 윤희랑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큰 약국을 발견했고 그곳에 들어가서 남편이 부탁한 할머니 약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필요한 약 세 종류 중에서 두 종류가 있었다. 그런데 약값이 꽤나 비쌌다. 왜 이렇게 비싼가 하고 보니 한때 나의 고객이었던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에서 만든 약이었다. 글로벌 제약회사의 약값 횡포는 이미 만연한 지 오랜지여서 더 놀랄 것도 없었지만 이렇게 비싸면 돈 없는 멕시코 사람은 약 사 먹기도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한 통씩 구입했다. 멕시코는 약국마다 약값이 다 달라서 나는 한 군데서 약을 한 통씩만 구입을 하고 좀 더 저렴하고 할인을 해 주는 곳을 찾게 되면 그곳에서 여러 통을 샀다.


쿠바의 경우, 이번 코로나 기간에 이탈리아를 비롯해 중남미 18개국 정도에 의료진을 보내어 도와줄 정도로 훌륭한 의료진은 많으나 병원 시설이 아주 낙후되었고 무엇보다 약이 아주 귀하다. 병원 진료비는 무료이기 때문에 몇 시간 줄을 서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도 약국에 약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즐비하다. 하물며 나는 남편의 충치 치료를 위해서 멕시코에 와서 치과 재료까지 구입을 했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테다.


대부분 쿠바의 약국에 있는 약들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아서 남아 있는 것들이고 정작 쿠바인들에게 필요한 당뇨나 고혈압, 심장병 약들은 약국에 없어서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외국에 가족들이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외국에서 약을 공수해서 복용을 할 수라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암이나 심각한 병에 걸리면 약이 없어서 죽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할머니는 아끼는 남편은 내가 멕시코에 갈 때마다 할머니 약을 부탁하였고 나는 늘 할머니 약을 종류별로 몇 통씩 사 가지고 갔었다.


약국에서 나와서 걷다 보니 작은 백화점이 보였다. 길 가다가 보면 눈에 띄는 흔한 곳이라 몇 번 들어가 보았는데 딱히 살 만한 건 없었다. ‘이 동네는 다를 수도 있어’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해 보았는데 USB로 충전해서 사용하는 작은 사이즈의 탁상용 선풍기가 있었다. 선풍기가 없는 부엌에 두고 요리할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두 개를 구입했다. 물론 하나는 시댁에 드리고 하나는 우리가 사용할 것이었다.


이래 저래 구경하다 보니 저녁 예약을 한 시간이 다 되었고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도착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 오른쪽에 레스토랑 입구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좌석 배정을 기다리면서 내부를 살펴보니 꽤나 넓은 곳이었다. 나름 이름이 있는 곳답게 내부 인테리어는 괜찮았고 저녁을 늦게 먹는 멕시코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레스토랑에 많아서 아주 활기가 넘쳐흘렀다. 내가 12월에 갔던 스테이크 하우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혼자 먹든 둘이 먹든 나는 밥 먹을 때에는 시끌 시끌한 것보다는 조용한 걸 선호한다. 그래야 옆 사람과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고 밥을 먹어도 여유롭게 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나는 밥을 아주 천천히 먹는다.) 분위기 깔끔한 도떼기시장 같은 이 스테이크 하우스에는 근처 비즈니스 맨들이 많아 보였다. 회사를 마치고 와서 한잔하는 사람들이었다. 지훈이와 귀염둥이 동생 한 명도 온다고 해서 4명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자리에 앉자 나초칩과 6종류의 소스를 서비스로 주었다. 윤희와 나는 와인을 한 잔씩 시켰고 동생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걸을 때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를 피하느라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오라고 답장을 보내고는 메뉴를 보았다. 대략 뭐를 시켜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서비스로 제공되는 나초칩과 6종류의 각기 다른 살사들(소스)


조금 후에 지훈이와 귀염둥이 동생이 도착을 했다. 귀염둥이 동생은 밴쿠버에서 같이 공부를 한 멕시코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잠시 온 거라고 했다. 그래서 지훈이와 윤희와 나 이렇게 셋이서 저녁을 먹는 거였다. 내가 "우리 이것저것 시켜서 같이 나눠 먹을까?”라고 했더니 윤희와 지훈이 모두 찬성을 했다. 나는 그리스식 샐러드와 문어 구이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물론 스테이크를 먹을 때 함께 먹을 아스파라거스도 함께. 


샐러드가 먼저 나왔고 문어구이, 스테이크의 순서로 하나씩 나왔다. 스테이크가 나오자 서빙하시는 분이 지글지글 돌판에서 익고 있는 스테이크를 잘라서 주었는데 내가 볼 때에 이 레스토랑에서는 이 장면이 좀 볼만한 것 같았다. 샐러드와 문어는 맛이 괜찮았다. 이 두 가지는 맛이 없었던 곳이 기억에 안 날 정도로 재료만 신선하면 웬만하면 맛있었다. 문어가  큼직한 게 그릴이 적당하게 잘 되어 있어서 내 입에 딱 맞았다.


그리스식 샐러드와 문어구이


드디어 스테이크를 맛 볼 차례였다. 한 조각을 가져와서 입에 넣었는데, 흑... 12월에 혼자 동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고기가 약간 질겼다. ‘그냥 해리스 갈 걸…’ 한 번뿐인 외식인데 몹시 안타까웠다. ‘멕시코 요리를 알아보기 위해서 멕시코에 온 지훈이에게도 더 야들야들한 맛난 고기를 맛보게 해 줬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괜히 지훈이한테도 미안해졌다. 그래도 어린 지훈이는 맛있게 잘 먹었다. 다행이었다. 혼자였음 분명히 남겼을 텐데 셋이 같이 먹으니 접시가 깨끗이 비워졌다.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디저트도 하나 시켰다. 오, 디저트가 아주 예뻤다. 맛도 좋았다. 이 곳은 디저트 맛집인 것 같았다.


좀 질겼던 스테이크
모양도 맛도 좋았던 디저트


화장실을 갔더니 멕시코에 온 걸 실감하게 하는 예술품 접시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고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타일의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이 레스토랑은 화장실이 가장 예쁘구만!’하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화장실이 마음에 들자 질겼던 고기가 쬐금은 용서가 되었다. 나는 식당에 가면 화장실과 부엌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 두 군데를 보면 식당의 위생상태나 인테리어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집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화장실이 마음에 들면 발길이 다시 향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아마 내가 여자여서 화장실에 예민한 것일 수도 있겠다. 노포 같은 식당들도 나는 무척 좋아하는데 그런 곳에 갈 때에는 맥주는 금물이다.


마음에 들었던 화장실 인테리어


환할 때 들어왔는데 벌써 밖이 깜깜해져 있었다. 계산서가 나오자 지훈이가 자신의 몫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현금이 모자라서 내일 돈을 찾아서 주겠다고 했다. 한참 어린 착한 지훈이에게 고기 한번 사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터라 괜찮다고 했는데도 다음 날 지훈이는 나에게 자신의 몫의 금액을 공손히 건네주었다. 회사에 다닐 때였으면 “누나 부자야”라고 큰소리 땅땅 치면서 절대 안 받았을 텐데 백수여서 여러 번 거절을 하지는 못하고 민망한 마음으로 지훈이가 주는 돈을 받았다.


지훈아,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있고 그때 누나가 돈을 잘 벌고 있으면 더 좋은 데 가서 훨씬 맛난 스테이크 사줄게!


참고로 나보다 세 살 동생인 윤희는(키가 커서 얼핏 보면 언니 같음) 한국에서 좋은 회사에 다니다가 잠시 스페인어를 공부하러 온 가진 자여서 지훈이처럼 내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한참 더웠던 작년 8월에 윤희가 쿠바에 놀러 왔을 때, 아바나 가이드도 해 주었고 100세 할머니 생신 잔치에도 데려가면서 멕시코에서 윤희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가 있었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나와서 우리 셋은 우버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윤희는 거실에 잠시 앉아서 얘기를 하다가 내가 쿠바로 떠나기 전 날 다시 오기로 하고 너무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윤희에게 고마웠던 또 하루가 마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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