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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다!

by 쿠바댁 린다

사랑 하나만 보고 쿠바 남자와 결혼을 해서 한국생활을 완전히 접고 쿠바에 와서 살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넘어야 할, 말도 안 되는 산들이 많아서 이 곳에 온 지 2개월이 채 못되어서 남편을 붙들고 대성통곡을 한 번 한 후에 오기 전에 계획했던 일들을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계획을 접자 나에게 주어진 건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일을 할 때에는 늘 시간에 치여서 살았었는데 시간이 멈춘 이 곳에서는 불안할 정도로 여유가 생겨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힘들게 가져온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이 후로 쓰지 않았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나름 화려한 골드미스의 삶을 살았고 휴가 때마다 혼자서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재미나고 신기하기도 한 일들을 경험하여 여행지에서 있었던 각종 이야기들을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들려주면 “언니, 이런 건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책을 좀 써 봐. 아니면 까먹기 전에 어디 기록이라도 해 놓아!” 라며 책을 쓸 것을 많이들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책은커녕 어딘 가에 기록도 해 놓지 않아 어느 날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제대로 작동을 하면 그때는 이런 추억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살 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이런 사람들이 있다. 십 년 전 일을 방금 겪은 일처럼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을 하면서 내가 그때 무슨 옷을 입고 있었고 무슨 신발을 신고 있었는지 얘기해 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와 너무나 달라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지극히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 과거의 일들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기억을 잘하지도 못하고 기억을 하더라도 아주 중요한 내가 꼭 기억을 해야 하는 것만 기억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지나 간 일들에 대해서 기록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곳 쿠바에 와서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기록하기였다.


그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내 지나간 삶에 대해서 글로 표현을 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쓰기는 말하기와는 달라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분명 내가 모두 겪은 일들인데... 그리고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 줄 때에는 아주 재미나고 호기심을 자극해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었는데 글로 조리 있게 표현을 하려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그냥 저장만 해 놓은 것들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친한 동생에게 쿠바에서 심심해서 일기도 쓰고 시도 쓰고 글도 쓰는데 생각보다 글 쓰기가 쉽지가 않다며 글을 잘 쓰고 싶다고 얘기를 했더니,


언니, 브런치 알아? 브런치 작가 등록을 하고 브런치에 조금씩 글을 올려봐.”


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지금 브런치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글을 아주 감성적으로 잘 쓰는 재주꾼이라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부터 자신의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려서 꽤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럼 브런치로 글쓰기를 해보자!’


라는 마음을 먹고 작가 등록을 어떻게 하는지 확인을 해 보니 원한다고 누구나 작가로 등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일정의 절차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작가 등록에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이 곳은 인터넷 사용이 쉽지 않아 먼저 집에서 글을 쓴 후 저장을 하면 네트워크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서 ‘저장 실패’로 나온다. 그런데 인터넷 공원에 가서 인터넷이 연결이 되면 그 글을 찾을 수가 있어서 맞춤법 검사를 하고 저장을 해 둘 수가 있었다.


동생에게서 브런치 얘기를 듣고 지난 3월에 인터넷이 자유로이 되는 이웃나라 멕시코에 갔을 때 브런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여서 그때부터 조금씩 글을 쓰고 저장을 해 놓았는데 저장한 글을 읽어보면 마치 보고서처럼 너무 사실적이기만 하고 감동이나 재미가 없는 듯하여 계속해서 글을 쓴 후 저장만 하고 작가 신청은 미뤄두고 있었다.


잘 쓰든 못 쓰든 나만이 보는 글쓰기를 하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동생에게 나의 쿠바 생활에 대해서 카톡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다가 동생이 얘기했다.


“언니, 브런치 작가 신청 중이야? 언니 브런치에는 다른 형식으로 쓸 거 같으니까 우리 일주일에 한두 번 일상 편지 주고받는 거 내 브런치에 카테고리 하나 만들어서 <쿠바에서 편지>로 올려보면 어떨까?”


동생이랑 일상에 대해서 편하게 편지를 주고받는 거니까 일단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접어 둘 수 있고 동생의 아이디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바로 그녀의 의견에 동의를 하였다. 멀리 살면서 브런치 작가 신청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언니를 생각해서 그런 제안을 해 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동생과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고 있고 내용에 맞게 사진도 같이 보내면서 조금씩 발전을 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동생의 브런치(erin andyou)에 <쿠바에서 온 편지>로 지금까지 여러 편의 편지가 올라갔는데 어느 편지 글 아래에 어느 분이 이런 댓글을 올리셨다.


“글이 참.. 뭐랄까, 한 편의 작품을 읽는 느낌이었네요. 그런데 또 그 느낌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분위기라든가, 배경이 막 떠오르고…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집은 구했냐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요. 작가님 답장도 매력적이지만 언니 분 글도 상당히 좋은데요. 언니 분도 브런치 하시면 구독하고 싶네요. 힐링이 되는 글이 있다면 이런 글이 아닐까 싶네요. 조곤조곤하고 따뜻하고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에 힘을 쫘~악 빼고 말하듯이… 중략”


나는 블로그를 해 본 적이 없고 SNS라고는 인스타만 하고 있는데 댓글도 대부분 지인들 하고만 주고받고 모르는 사람들과는 말을 잘 섞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생판 모르는 이 분의 댓글을 읽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워서 쑥스러웠지만 그분의 댓글 아래에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이 분의 댓글 하나에 나는 엄청난 힘과 용기를 얻게 되어 본격적으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짧게 산 인생은 아니지만 글쓰기는 새내기라 많은 글을 잘 쓰시는 분들에 비해서 부족한 것은 많을 테다. 하지만 한국인이 별로 살지 않는 지구 반대편 쿠바(게다가 사회주의 국가임)에서 쿠바인과 사는 사람은 별로 없고 또 한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유일무이한 이 곳에서 경험하는 색다른 일들에 대해서 기교는 없더라도 정성껏 솔직하게 글로 써가면서 나를 위한 기록도 남기고 다른 이들과 함께 공감도 하면서 순간순간을 즐겨 보려고 한다.


‘인생에서 가장 한가하고 게으른 때가 결국 가장 생산적인 순간이라고, 니체도 말했지만 우리도 실천해보니 사실! 매 순간을 즐기길.’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표님이 이런 글을 보내셨는데 지금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린다 작가님’이라는 말을 어느 날 듣게 된다면 그 날 나는 아마도 꿈을 꾸듯 하루하루를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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