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쓰기 초보의 변명 아닌 변명
예전에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면 늘 감탄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막’이었다.
‘어쩜 저리 적시 적소에 저런 표현을 쓸 수가 있을까? 정말 기가 막힌다 표현을 저렇게 재미나게 잘하는 방송 작가들은..!’
원래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보지는 않았지만 간혹 볼 때면 방송작가들의 자막 한 마디 한 마디에 감탄을 했고 그 자막 때문에 기절하듯 웃곤 했다.
그러면서 그들에 대한 경이감 같은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글을 좀 재미나고 맛깔나게 쓰고 싶은데 왜 내가 쓰는 글은 모조리 보고서 같지?’
‘십여 년을 회사에서 일하면서 매일같이 고객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시키기 위해서 기승전결 논리적으로 이메일을 쓰고 보고서를 쓰던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 걸까?’
‘아님 내가 그동안 읽은 책들이 대부분 철학책을 비롯한 인문학 서적들이고 감성적인 에세이나 시, 소설 같은 책들은 잃지 않아서 그런 감각을 잃어버린 것일까?’
소실적에는 감성 터치하는 책들을 많이 읽었더랬다. 그리고 그런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설레어 잠도 못 자고 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런 책들이 내 마음에 별로 와 닿지 않았다.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일까?’
사회생활의 경험이 많아지면서 사석에서 우연히 또는 소개로 그리고 모임을 통해서 글재주가 좋고 많은 책을 출간하신 작가들을 만날 기회도 늘어났다. 그런데 그런 분들과 간혹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부분과 너무 달라 실망 아닌 실망을 하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든 적이 몇 번 있었던 것이다.
문자 한 통을 보내는 게 20원이던 시절에 친하던 동생이 어느 날 말했다.
“언니는 오늘부터 별명이 이십 원이야.”
난 이십 원이란 말에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왜 이십 원이야?”
“언니는 문자 한 통에 상대방 마음을 느껴서 기분이 좋았다 안 좋았다 하잖아. 그래서 언닌 이십 원, 난 김밥 한 줄만 있음 행복해지니까 천원이야. 하하하”
그랬다. 예민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문자를 받으면 상대방의 마음이 느껴졌더랬다. 글자만 읽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읽혔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데 화려한 미사여구를 사용해 감성을 자극하는 글은 나에게 거짓이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멀리했던 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감성을 자극하든 자극하지 않든 책을 출간한 작가들은 그 자체로 대단해 보이지만 그땐 그랬다.)
그래서인지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참으로 사실적이긴 한데 아름답게 돌려서 표현하거나 재미나게 또는 맛깔나게 표현하는 데 있어서 많은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몇몇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어 도전을 했고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그냥 내가 잘하는 것을 좀 더 잘 하자!’였다.
누구나 가진 달란트가 다르듯이 글을 쓰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또한 독자들의 기호도 달라서 내가 잘하지도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표현으로 굳이 감성터치를 하지 않아도 내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느끼고 공감하는 독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걸로 나는 행복하기로 했다.
대신 내가 쓰는 글은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 정성스럽게 그리고 꾸밈없이 진실되어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 하기를.. 그런 작은 바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제 한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으로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는 와중에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린다야, 어제 직장동료가 네 글을 브런치에서 읽었대. 그러면서 너 필력 있다고 했어. 그리고 ‘쿠바에 살아요’ 연재를 기다린다고ㅎㅎ”
아... 카톡을 하다가 울컥했다!
오늘 달력을 보니 내가 쿠바에 도착한 지도 벌써 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지난 8개월간 새롭고 낯선 머나먼 이국 땅인 쿠바에서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말할 테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거예요.”
아마 쿠바에 오지 않았더라면 난 아직까지 글을 쓰지도, 브런치와의 인연도 맺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천둥 번개가 엄청나게 치고 비가 쏟아지는 이 곳 쿠바에 있음에 감사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한 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 리. 고 무엇보다도 내 글쓰기를 응원하고 격려해주시는 분들께 더없이 감사하는 마음은 가슴 깊은 곳에 잘 모셔두었다.
그중 한 분인 지평선님께서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글을 쓰신다고 했다.
“지평선님, 저는요... 글을 쓰니까 행복해져요. 그럼 이거 똔똔인 거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