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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23. 2020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거 몰랐어?

그리고 나는 다시 웃는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다른 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글쓰기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리고 이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글을 쓰지 않고 읽기만 했을 때와는 상이한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니 나답지 않게 내가 아주 작아져버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저 친구는 이제 스무 살 남짓인데 글의 깊이가 나는 넘보지도 못하겠네.’ ‘내 글은 왜 이렇게 깊이가 없지?’ 하면서 글 잘 쓰는 이들을 부러워도 해 봤다가 스스로를 책망도 했다가 멍해지는 그런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반가운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니는 카톡을 몇 개 보내시더니 화끈하게 “린다, 보이스 톡 돼?”라고 하시며 바로 통화를 누르셨다. 다행히 인터넷에 연결이 되어 있었고 몇 개월 만에 언니와 하하호호 웃으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언니가 다짜고짜 “린다, 계좌번호 불러봐!”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놀란 나는 “언니, 왜요?”라고 말하며 언니가 원하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많이는 아니야. 일단 불러봐!”라고 하시다가 내가 망설이는 걸 아신 언니는 “언니, 빡빡 긁어서 많이 보내이소!” 이래야 린다 답지 “언니, 부담스러워요. 괜찮아요.” 이렇게 말하는 건 린다 답지 못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는 “근데 언니, 저는 부담스러운데요!” 하면서 하하하 웃었더니 언니도 웃으시고는 다른 화제로 계속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갑자기 문득 옛날 생각이 떠 올랐다. 그때도 지금도 한국에서 아주 유명하고 잘 나가는 외국계 기업 대표님과 하얏트 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잠시 미팅이 있어서 만났더랬다. 독일인인 대표님도 그리고 사모님도 인성이 좋으셔서 언제나 봐도 참 기분 좋은 분들이셨다. 진지하게 미팅을 마치고 자리를 뜨기 전 계산서가 테이블에 도착을 했다.


대표님은 당연히 본인이 내시겠다며 계산을 하시려고 했는데 내가 그 순간, “아니야, 내가 낼게.” 하면서 계산서를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표님이 약간 당황을 하시며 괜찮다고 본인이 내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몰랐어? 나 가진 게 돈 밖에 없잖아. 그니까 계산서 이리 줘!”라고 말했더니 대표님이 처음에는 얼빠지신 듯 나를 보시더니 곧이어 박장대소를 하시며 그제야 나에게 계산서를 주셨다.


정말 가진 게 돈 밖에 없는 사람(다른 것도 많으시지만) 앞에서 일개 거래처 팀장이 가진 게 돈 밖에 없다며 깐죽댔으니 이 대표님은 속으로 얼마나 웃겼을까? 아마 유럽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을 농담이었겠지만 유쾌하신 이 대표님은 나의 의도를 눈치채고 바로 나를 위해서 계산서를 주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계산을 하자 참 남자답고 심플한 대표님이 고맙다며 인사를 꾸벅하셨다.(아, 커피값은 얼마 되지 않았고 물론 법인카드로 긁었다.)






남자답다...  말을 떠 올리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가장 남자다운 한 분이 생각이 났다. 내가 이 분을 처음 만났을 때 이 분의 신체나이는 거의 육십 세였지만 에너지만은 이십 대를 능가하셨더랬다. 게다가 인성은 또 어찌나 훌륭한 분이신지!


처음에 한국에 부임하셔서 일을 해 보시더니 한국에서는 직원들이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집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고 그 사실을 알게 되시자 본인이 먼저 정시에 퇴근을 하시기 시작했다. 일이 남아있어도 직원들을 퇴근시키기 위해서 시간이 되면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남은 일은 집에 가셔서 하셨던 것이었다.


제대로 깨인 사상을 가지신 이 분은 한국 여성들이 아주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데 회사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이 적은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하셔서 기존 한국 남자 임원들과 그 문제로 한참을 부딪치기도 하셨다.(아쉽게도 결국은 지치셔서 본인의 뜻을 못 이루고 떠나셨다.) 또한 여권 신장에 대해서 대학교와 기관에서 강의도 하러 다니시면서 본인의 여성 직원들에게도 여러모로 큰 힘이 되어 주셨던 분이셨다.


그러던 그분이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린다, 나 여자 친구 생겼어. 그런데 너보다 나이가 적어.”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아, 그래? 축하해!” 하면서 웃고는 엄치 척을 해 보였다. 그러자 그분도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분이 나에게 그렇게 말씀을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언젠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나이 많은 남자는 만나봐서 이제는 젊은 남자를 좀 만나봐야겠어요!” 하면서 딱 잘라 버렸던 것이었다. 그러자 그분은 그게 너무 웃겼던지 하하하 웃으시면서 “알겠어!” 하시고는 두 번 다시 나에게 개인적인 말씀은 던지지 않으셨다. 그러면서도 일적으로는 필요시 늘 조언을 해 주시면서 공평하게 기회를 주셨고 끊임없이 도움을 주셨더랬다.


알고 보니 그의 새로운 여자 친구는 그보다 서른 살이 어렸고 뛰어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또 다른 나라의 여성분이셨다. 두 분은 한참을 만나다가 결국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기가 탄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여성분은 이 분이 결혼한 세 번째 여성이었고 그 아기는 이 분의 세 번째 아기였다.


이 분은 스무 살에 첫 번째 부인과 자녀 한 명을, 마흔 살에 두 번째 부인과 두 번째 자녀를 그리고 예순에 세 번째 부인과 세 번째 자녀를 가지게 되신 것이었다. 즉, 세 명의 부인에게서 각기 다른 자녀를 한 명씩 가지셨더랬다. 터울도 정확하게 20년씩!


별별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나도 이런 분은 처음이라 좀 많이 놀랬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웃겨서 대단하다며 마구 웃었더랬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 분을 욕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분만큼 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의감이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공평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기에(실제로 이런 분은 아주 드물다) 그런 그의 삶이 참 멋져 보였다.


지금은 벌써 은퇴를 하시고 어느 한적한 풍수 좋은 마을에서 토끼 같은 아이와 어여쁜 부인과 함께 유유자적한 인생을 즐기고 계시겠지? 그리고 상남자답게 부엌에 가서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아이와 함께 즐겁게 놀아주실 테지. 그분은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지.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 어떤 게 소중한 지 아시는 참 멋지신 분이니까!






언니의 협박 비스무리한 부탁에 나는 결국 계좌번호를 보내 드렸고 다음 날 아침에 통장을 확인해 보니 잔고가 늘어나 있었다. 예전에 그 독일 대표님께 했던 것처럼 “언니, 나 가진 게 돈밖에 없는 거 몰라?”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지만 쿠바에 와 보셨던 언니는 이 곳 상황을 너무 잘 아시기에 차마 예전처럼 멋지게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 다 들 내가 굶어 죽을까 봐 이렇게들 마음을 써 주시고 걱정해 주실까? 언니에게 너무 고맙다며 언니가 보내준 금액의 반은 내가 그리고 나머지 반은 가난하고 착한 쿠바인들을 위해서 쓰겠다고 편지를 적어 보내었다. 그리고 멍했던 나는 잡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복잡할 땐 요리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요리는 나에게 힐링이자 명상이라 요리를 하는 순간에는 무념무상의 나로 돌아가니까.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내가 아주 존경하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선생님께 이런저런 내 안에 있던 고민을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지금 내가 있는  천국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귀인입니다.


처음에 나는 “여기가 천.. 국... 이라고요?” 하며 처음엔 살짝 반항을 했지만 이내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요즈음 갈수록 비평가가 되어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지. 내 글이 다른 이들의 글보다 깊이가 없다고 고민할 시간에 차라리 책을 더 읽고 글을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도움이 될 거야.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친구랑 수다를 떨다 보면 스스로 풀리면서 답을 얻는 것처럼 글도 그럴 테지. 고민하고 망설일 시간에 그냥 이것저것 적다 보면 그런 것들이 쌓여서 점차 깊이도 깊어지겠지. 몸에 힘을 쭉 빼고 처음처럼 다시 해보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리고 나는 말레꼰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여전히 반짝였고 하늘은 평화로웠다. 낚시꾼들은 겸손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나는 빙그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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