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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Aug 04. 2020

이 정도면 살 수 있겠어

이 마음 오래오래 가길 바래


달이 바뀌었다는 걸 각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이 요 며칠 전부터 습도가 확 올라 집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8월이 되었다. 그런 8월의 첫날에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우리 공사 이번 달에 모두 마무리하자. 이제는 달러 상점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살 수 있고 재료도 웬만한 건 다 있으니 더 이상 지체하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리고 자기도 9월부터는 이것저것 할 게 많으니 공사는 8월에 다 끝내는 게 좋을 거야.”


남편도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했고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나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 공사는 대략 다 끝냈고 남은 건 여기저기 페인트 덧칠 및 가구 페인트와  각종 디테일한 일들이었다. 남편도 나도 공사를 직접 하는 게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있었고 공사 초반부터 물이 아래로 새는 문제로 화장실을 다 때려 부수고 정부와 싸우느라 몇 개월간 공사가 중단이 되었더랬다.


게다가 공사 재료 구하는 건 왜 이렇게 힘든지. 페인트며 시멘트며 타일 같은 재료를 구하러 남편뿐만 아니라 나와 시어머니도 철물점이란 철물점은 다 찾아다녔던 게 바로 일 년 전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시멘트 포대랑 온갖 무거운 쓰레기 포대를 직접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공사하는 내내 파스투혼을 했더랬다.


역시 시간이 약인 건지. 대체 언제 끝날까 했던 공사가 어느새 마무리가 되어가면서 이제는 조금씩 집 같은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괜히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던 시간이 미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제대로 일을 해 보겠노라 다짐하고는 집에서 이것저것 챙기고 부족한 건 다른 동네 세제 상점에 가서 구입을 해서 공사 현장으로 갔다. 볼일을 보러 갔던 남편은 이미 와 있었다.


“자기, 나 뭐 할까?”

“자기, 이 문을 깨끗이 닦아줘.” 

“옛 썰!” 하고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준비해 간 고무장갑도 양 손에 장착을 했다. 그리고 남편의 요청대로 문을 닦기 시작했다. 대체 이 문은 언제 청소하고 안 했는지(아마도 일 년 반?) 먼지가 마치 새하얀 눈처럼 아주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런 문을 마른걸레로 꼼꼼히 청소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문에 쌓여있던 먼지가 고스란히 순간이동을 한 듯 내 머리카락부터 손눈썹, 팔이랑 노출이 된 곳에 차곡히 쌓여 있었다. 게다가 얼굴과 온몸은 땀범벅이 되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먼지 투성이었던 이 문은 아마도 이쁜 색상으로 변신할 듯 하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보자!’ 싶어서 토요일에 청소용품이 없어서 청소를 깨끗이 못했던 화장실을 다시 반짝반짝 빛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청소 세제도 뿌리고 멕시코에서 사 온 얇고 긴 솔로 벽과 바닥 타일을 꼼꼼히 아주 정성스레 닦아 내었다. 땀이 비 오듯 줄줄 흘렀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은 상쾌해져 갔다. 그리고 뭔가 뿌듯함도 느껴졌다. 그 사이 남편은 문에 페인트 덧칠을 하고는 내가 멕시코에서 사 온 실리콘으로 여기저기 뚫린 구멍을 메꾸는데 신이 나 있었다.


어느 듯 시간이 8시가 다 되어갔고 화장실 청소를 끝낸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냉동실에 있는 고기만두 열개를 꺼내어 봉지에 담고는 먼저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하고 있던 실리콘 작업을 마무리하고 오겠다고 했다. 공사하는 집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는 걸어서 십 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가는 길에 말레꼰을 지나간다.


오랜만에 땀을 아주 흠뻑 쏟으며 노동을 하고 난 후 말레꼰을 걸어가는데 멀리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석양은 왜 이렇게 이쁜지! 그 석양 아래 말레꼰에서 한 연인이 입맞춤을 하느라 몸에 살짝 포개어지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였다. 우와!


오른쪽 끝이 입맞춤을 하느라 포개진 남녀


매일 봐도 멋지고 낭만 가득한 말레꼰 옆으로 석양을 마주하며 걷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도면   있겠다!


쿠바에 온 이래로 처음 든 생각이었다.


아직 코로나 해제 1단계여서 예전보다 도시가 평온해서인지, 달러 상점으로 인해서 먹을 게 예전보다 풍족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흠뻑 땀에 젖은 노동이 주는 기쁨에서인지.


아무튼 내가 한 생각에 나도 놀라웠다. 내가 발을 내딛으며 걷고 있는 길거리가 지저분하고 옆에서 쿠바노들이 치나 린다(이쁜 아시아 여자)라고 불러도 평소 때처럼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나도 이제 이 곳에 동화되어가는 걸까?


내가 지금 바라는 건 이 생각이 오래오래 이어갔으면 하는 것과 먼지를 한껏 뒤집어쓰고 난 후 차가운 물에서 샤워했을 때의 그 시원함과 상쾌함을 자주 느껴봐야겠다는 거다.


그리고 오늘 이 생각 그리고 이 순간을 글로써 기념하고 싶었다. 생각은 사라져도 글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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