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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Sep 04. 2020

일주년을 기념하다

이 집을 찾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자기, 다비드 내일 몇 시에 온대?”

“아 맞다, 내일 오전 열 시에 온다고 연락 왔었어.”

“응, 알겠어.”


다비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다. 그는 두상이 아주 예쁜 민머리에 잘 생긴 오십 대 게이 아저씨이다. 말을 어찌나 빨리 하는지 다비드가 우리 집을 떠나고 나면 어김없이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자기, 다비드한테 숨 좀 쉬면서 얘기하라고 해! 심장 수술도 했다면서? 저렇게 빨리 말하다가 잘못될까 봐 내가 다 겁이나. 하하하 근데 자기, 오늘은 무슨 얘기 한 거야?”


남편을 좋아하는 다비드는 우리 집에 오면 주로 남편과 얘기를 하기 때문에 나는 주로 내 할 일을 하며 두 사람이 편히 얘기를 하게 상관을 하지 않는다. 간혹 중요한 얘기를 할 때에만 그 자리에 참석해서 함께 얘기를 한다. 남편은 다비드가 술을 좋아하는 걸 알고는 다비드에게 안 좋은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술을 한잔씩 주며 다비드의 개인적인 얘기(특히 연애사)를 다 들어주고 위로까지 해 준다.


생각해보면 남편이 아들뻘인데 이 곳은 나이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서 두 사람은 친구처럼 잘 지낸다. 남편의 이런 진심이 가득 담긴 처세술 덕분에 몇 달 전부터는 월세도 좀 낮춰주었다.






이 집은 작년에 내가 에어비앤비에서 보고 찾은 집이었다. 현재 공사 중인 집을 사고 나서 한 달만 다른 집에 있다가 새로 산 집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새 집 화장실에서 아래층에 있는 정부 상점으로 물이 샌다는 사실을 집을 산 지 이 주만에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그 전 집주인에게 완전 속았다. 그리고 그는 돈을 받고는 마이애미로 떠나 버렸다)


깜짝 놀란 우리는 빨리 일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여 일이 점점 커져 버렸다. 결국 화장실 바닥을 다 덜어내면서 대공사가 시작이 되었고 한 달 혹은 보름 간격으로 다니던 이사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때부터 장기렌트가 가능한 집을 알아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남편은 공사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집을 구하는 것에 집중을 했다. 이 집을 에어비앤비에서 보고는 다비드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방문 약속을 하고 혼자서 방문을 했더랬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깔끔하고 매끈한 타일 바닥이  주는 느낌이 신선했다. 집의 크기는 작았지만 필요한 건 대략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탁실 창문으로 보이는 말레꼰 풍경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 집으로 결정을 해 버렸다. 그동안 아바나에서 집을 엄청 본 터라 결정은 생각보다 쉬웠던 것이었다. 이제 가격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둘이 소파에 앉아서 가격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내 뜻이 관철되려는 즈음에 다비드가 말했다.


“린다, 너에게 장기 렌트를 하고 싶은데 네 남편을 만나 보고 나서 결정을 해야겠어.”


내가 쿠바 남자랑 결혼했고 남편과 함께 살 거라고 하자 다비드가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한 후 우리에게 랜트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날 저녁 즈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으로 오겠다고 했다. 다비드의 제안에 나는 알겠다고 했다. 한국인이든 쿠바인이든 지금까지 내 남편을 만나보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던지라 다비드의 제안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다비드가 왜 그러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 곳에도 외국인 여자를 꼬셔서 기생충처럼 붙어서 사는 제비 같은 쿠바 남자들이 꽤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남자를 이 곳에서는 ‘히네떼로’라고 부른다. 주로 살사 춤을 추는 곳에 포진을 해 있으며 춤으로 외국인 여성들에게 접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남자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집도 깨끗이 쓰지 않을뿐더러 물건들이 분실되거나 파손되는 경우가 발생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렌트 까사의 경우, 손님 정보를 입주 후 24시간 내에 이민국에 신고를 하여야 하며 다비드의 집에서 문제라도 발생하게 되면 집주인인 다비드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심각한 경우 렌트 라이선스를 국가에 빼앗길 수도 있다.(예-손님이 마약이나 매춘을 한 게 발각될 경우)


게다가 원칙적으로 외국인 렌트의 집에는 쿠바인이 출입을 할 수가 없는데 나의 경우 결혼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비드가 볼 때 내 남편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면 나에게 렌트를 할 이유가 전혀 없을 테다. 매달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도 꽤나 높은데 사고까지 나면 남는 게 아니라 완전 마이너스이기 때문이었다.


그 날 저녁, 약속을 한 시간이 되자 다비드가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주었다. 문자를 받자마자 남편과 재빨리 내려가서 두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둘은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였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는 헤어졌다. 남편도 다비드가 괜찮은 사람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다비드도 남편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렌트를 하겠다고 연락을 한 것 보면.


며칠 후 남편과 함께 다비드의 집을 방문하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남편 눈이 휘둥그레졌고(깨끗한 느낌에) 말레꼰이 보이는 세탁실에서는 반응이 절정에 다다랐다. 물론 소리를 낸다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았고 남편은 차분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가 있었다. 그 날 우리는 가격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집으로 와서 얘기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보다 남편이 이 집을 훠얼씬 마음에 들어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 년 전 오늘 이 집에 이사를 왔고 오늘로 이 집에서 생활을 한 지가 일 년이 되었다. 일 년이나 이 집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코로나가 우리를 이 곳에 붙잡아 둔 공로가 꽤 큰 걸로 봐서 공로상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주어야 할 판이다.


온 세계를 놀라게 한 바이러스로 인해서 3월 24일부터 집콕을 시작해서 103일 동안 이 작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도 건강하고 즐겁게 잘 살 수 있었던 건, 이 집 세탁실 창문에서 보이는 푸른 바다와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 않고 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하늘때문임이 분명하다. 만약 이 집이 아니라 다른 집에 살며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더라면 이렇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남편이 고생을 좀 했을 테지.:-)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엊그제 월세를 낸 것 같은데 또 월세를 내는 날이다. 항상 다비드가 월세를 받으러 우리집에 왔는데 오늘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열 시가 다 되어갈 때 전화를 했더니 말레꼰에 있는 상점에서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줄을 서 있다고 했다. 닭고기 줄은 보통 3~4시간은 서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다른 동네 야채 시장을 가려고 나가서는 다비드가 줄을 서 있는 상점으로 가서 그를 만났다. 남편은 다비드의 손에 월세를 쥐어주었고 다비드는 역시 입에 총알을 장착한 채 숨도 안 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다비드와 헤어지고 우리는 다른 동네에 가서 야채를 사고는(살 게 호박이랑 오이밖에 없었다) 나온 김에 다른 동네 한 바퀴를 쭈욱 돌아보았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와서 기분이 좋았던 남편은 꽃을 꺾어 내 머리에 꽂아주었다. 바람에 날려가 버리기 전에 꽂자마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가던 특급 호텔에 가 보았다.


남편이 꽂아준 보라색 꽃 / 호텔 나시오날-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송혜교가 계약을 했던 그 호텔 1930년에 오픈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호텔들은 다 문을 닫았지만 몇몇 특급호텔의 한 곳에서 음식을 판매하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게도 그 호텔에서 약간의 음식을 팔고 있었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달러 상점이 생기면서 소고기는 실컷 먹을 수가 있었는데 닭고기는 구하기가 힘들어서 안 먹은 지가 좀 되었더랬다. 그런데 그곳에 훈제치킨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다리만 7개가 든 훈제치킨을 세 봉지 사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시댁에도 드릴 거라 늘 많이 산다)


집을 나온 지 두 시간가량 지난듯한데 다비드는 아직 그 가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다비드와 인사를 하고 집에 와서는 바로 찬 물에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훈제치킨을 프라이팬에 데운 뒤 살짝 뜯어서 맛을 보았다.


뜨악~~~이렇게 맛있다니! 남이 한거라  맛있는걸까? 아니야 특급호텔에서  거니 이정도는 되어줘야겠지? 암튼 맛이 끝내주는군! 아~행복해!’


남편도 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속이 좀 안 좋아서 알코올 대신 물로 건배를 하고는 남편과 아주 맛난 호텔식 훈제치킨을 뜯으며 이 집에서의 일 년을 축하했다.


앞으로 얼마나 이 집에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을 떠나게 되면 이 곳에서의 생활이 몹시 그리워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집에 사는 동안 매일매일 아름다운 이 광경들을 나의 두 눈과 마음에 가득히 담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도 많이 찍어 두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을 찾은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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