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바댁 린다 Jun 07. 2020

직접 말린 고추로 김치 담아봤어?

오늘도 열 일하는 쿠바 김치녀


나는 지금 불타오르는 손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말 얼얼하다. 좀 전에 찬물에 샤워도 했는데 그때뿐이었다. 오늘 중으로는 괜찮아 질까?






어제 남편이 다른 동네 시장에 가서 배추 두 포기를 사 가지고 왔다. 지금은 6월이고 이 곳은 여름이다. 비가 많이 오고 아주 습한 우기의 여름. 그리고 여름에는 배추가 없다. 배추는 보통 겨울인 12월에서 3~4월까지만 시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배추라니!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쿠바 김치녀답게 배추가 2 포기면 당연히 김치를 담아야 하는데, 재료만 생기면 김치를 한 탓에 꽤나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고춧가루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이상 김치를 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파김치를 하고 남은 양념이 좀 있긴 했으나 배추 2포기를 담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었다.



드디어 말려둔 빨간 고추를 쓸 때가 왔다!



보름 전에 남편이 어느 국영 시장에서 빨간 고추를 보고는 내가 좋아할 거 같다며 한 봉지를 사 가지고 왔었다. 쿠바에 이런 매운 고추를 팔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이 시장에서 팔았던 것이다.(쿠바 사람들은 매운 걸 먹지 않는다.) 남편에게 칭찬 한 바가지 해 주고는 이 고추를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을 해 보았다.


그렇지, 고춧가루를 만들어 봐야겠어!


코로나 때문에 이제 한동안 다른 나라로 쇼핑하러 나가지도 못할 거고 또 한동안 쿠바에 오실 분도 없으니 바닥을 보이는 고춧가루를 공수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던 터였다. 그런데 마침 나에게 이 고추가 뿅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래 일단 말려보자.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집 앞이나 길거리에 새빨간 고추들을 쭉 깔아놓고 말리는 걸 많이 봤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 보기로 했다. 접시 두 개에 고추를 겹치지 않게 나눠 담고 햇빛이 비치는 곳에 두었다. 해가 다른 쪽으로 들어오면 그쪽으로 접시를 옮겼다. 매일 접시를 여기 뒀다 저기 놓았다 하며 고추를 말린 지 보름이 지났다.


여기 저기서 고추 말리기 시작


어제 남편이 사 온 배추를 깨끗이 씻고는 반을 갈라보았다. 배추 속이 여기저기 많이 상해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겉모습만 보고 생각보다 덜 상해서 깜짝 놀랐는데 역시나 속이 상했구먼! 상한 부분을 잘라내고 보니 두 포기였던 배추가 어느새 한 포기로 줄어들었다. 하하하 이래야 쿠바지! 한 포기 같은 두 포기 배추에 골고루 소금을 뿌리고 절여놓았다.


겉모습은 이렇게 멀쩡한데(?) 속이 많이 상한데다 비어있었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양념을 준비해야 다. 먼저 남편이 어제 배추와 함께 사 온 부추를 손질했다. 부추를 한 줄 한 줄 손질하며 씻고 보니 배추와 마찬가지로 반이 사라져 버렸다.(상한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양파도 씻어서 잘라 놓았다. 이제 대망의 말린 고추를 손질할 시간이다. 중간에 남편이 고추를 한번 더 사 와서 양이 제법 되었다.






말린 고추 접시와 빈 그릇 두 개를 가져와서 식탁 위에 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일단 꼭지를 다 땄다. 그리고 가위로 말린 고추 하나를 세로로 반으로 자른 다음 그 안에 있는 씨를 손가락으로 쭉 빼내었다. 이 고추가 맵다는 건 요리할 때 한번 넣어봐서 알았지만 그냥 고추니까 매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고추를 말려본 적도 씨를 빼 본 적도 없어서 그게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는 당연히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씨를 손가락으로 쑥 밀어서 뺀 것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니까.


금세 씨를 뺀 손이 화끈거렸다. ‘고추씨가 원래 이렇게 매운 건가?’ 하며 깜짝 놀라 위생 장갑을 꺼내어 왼손에 꼈다. 장갑을 끼고 나머지 고추씨들도 하나씩 다 빼내었다. 손은 계속 화끈거렸지만 나는 일단 김치를 담아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말린 고추로 정말 김치를 담을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하여 약간 흥분이 되기도 했었다.


손질 전 / 손질 후


씨를 말끔히 다 뺀 고운 마른 고추를 잘라서 믹서기에 넣었다. 양파와 마늘, 멸치액젓, 매실청 그리고 설탕도 함께 넣었다. 버튼을 눌렀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재료가 재빨리 섞이며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갈았다. 고추가 갈리자 색이 참 고왔다. 살짝 맛을 봤는데 혀에 불이 나는 줄 알았다. 이 고추 장난 아니게 맵다.


나도 한국인이라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내 맵기는 딱 진라면 순한 맛이다. 매운맛이나 신라면은 너무 매워서 수프를 반만 넣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고추는 청양 고추급 아니 그 상위급인듯하여 갑자기 겁이 났다. 손은 계속 화끈거리고 혀는 불에 타고 있으니 겁날 수밖에. 물을 계속 마시며 놀랜 혀를 달랬다. 더 이상 맛보는 건 포기하고 파김치를 하고 남은 양념을 꺼내어 두 양념을 섞었다. 섞으니 좀 나아졌다. 양념에 부추와 양파를 넣고 다시 잘 섞었다. 이제 배추 속에 넣을 양념 준비는 끝.


마른 고추를 갈아서 이것 저것 섞어만든 배추속 양념


두 시간 남짓 지났는데 배추가 제법 숨이 죽었다. 그래서 숨 죽은 배추를 찬 물에 헹구고 물기를 뺀 다음 대야에 가지런히 놓았다. 김치는 쪼그리고 해야 제 맛이라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준비된 양념을 배춧잎 사이사이에 넣고 잘 무쳤다. 양념이 완벽하게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한 포기 같은 두 포기김치가 내가 가진 젤 큰 통(나에게는 김치통이 없)에 딱 맞게 들어갔다.







그런데 다 담고 보니 떼어진 겉잎 2장이 남아있었다. 그건 통에 담지 않고 따로 그릇에 담았다. 그 자태를 보니 얼른 맛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둥근 쌀을 꺼내어 쌀을 씻고 밥솥에 넣은 후 취사를 눌렀다. 그리고는 재빨리 씻고 와 보니 어느새 새하얀 찰진 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을 떠서 넓은 접시에 담고는 떼어진 겉잎 2장의 김치를 담은 그릇 옆에 나란히 두었다.


‘너무 맵지 않아야 할 텐데...’


이게 뭐라고 괜히 설다.

그리고는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옆에 계셨으면 방금 담은 김치를 손으로 쭈욱 찢어서 내 입에 쏙 넣어줬을 텐데. 그러면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을 호호 불며 갓 담은 엄마 김치랑 맛있다며 계속 먹고는 나중에 매워서 엄마 물 하면서 물을 마셨을 테지. 난 갓 담은 김치를 가장 좋아하니까.


그 생각을 하며 젓가락으로 김치를 찢었다. 엄마처럼 손으로 찢고 싶었는데 화끈거리는 게 더 심해질까 봐 겁이 나서 그냥 젓가락으로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잘게 찢은 김치 하나를 흰 밥 위에 올려서 입 안으로 쏙 넣었다. 오, 약간 맵긴 했지만 맛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휴!


이건 그냥 밥도둑이지!


아무리 쿠바에 살고 있고 아무리 코로나로 음식을 못 구한다고 해도 내가 고추를 말려서 김치를 담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는데 쿠바 덕분에 그리고 코로나 덕분에 참 별걸 다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별것도 아닌 게 나는 너무 신다.(내게는 별거 일수도) 게다가 이게 뭐라고 또 뿌듯하기까지 다.


나 직접 말린 고추로 김치 담그는 여자야!


라고 온데방네 떠들고 싶어서 지금 이 글도 재빨리 쓰게 된 거다.


그나저나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화끈거리던 손이 많이 나아졌다. 브런치 덕분인가? 암튼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쿠바니까, 제로 웨이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