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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31.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1화

쿠바의 슈퍼마켓에서 신용카드를 긁다


치이이이이, 카드 영수증이 뽑혀 나왔다.

캐셔 담당자 외에 세 명의 관련자들이 영수증이 나오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고,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나지막한 감격에 속으로 환호성을 질러대었다.




슈퍼마켓에서 카드결제라니!



2020년 7월 20일 월요일 오전 10시경의 모습이었다.








월요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새로운 변화의 기대감에 남편과 나는 며칠 전부터 설레었다. 그 날이 되었고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났다. 남편이 만들어 준 커피와 간단한 빵을 먹고는 천천히 외출 준비를 했다. 이 곳에서는 한국처럼 서두르는 게 없다. [달러 상점] 이라고만 알고 있지 정확히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는지는 몰라서 나는 지불수단을 종류별로 준비했다. 미국 달러, 쿠바 화폐 두 종류(쿡 & 쿱) 그리고 신용카드 한 장. 세 개의 지갑에 세 종류의 지폐와 카드를 나누어 넣고는 가슴 앞으로 매는 작은 가방에 지갑들을 가지런히 넣었다.


쿠바 전역에는 총 72개의 상점이 그리고 아바나에는 11개의 달러 상점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4군데의 해당 상점이 있었고 그중에서 두 군데를 타깃으로 남편과 나는 발걸음을 슬금슬금 이동했다. 오전 9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아바나의 아침은 활기가 넘쳐났다. 얼마 전에 새로 마련한 (숨쉬기가 불편한) 이쁜 면 마스크와 미러 선글라스로 중무장을 한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걸으며 세심하게 거리를 살펴보았다. 아침부터 여기저기에 사람들의 줄은 길었다. 그리고 경찰들도 평소 때보다 많이 보이는 듯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그곳은 (전파상 같은) 철물점으로 남편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곳이었다.(물론 나도) 작년 이맘때 집을 사고 집수리를 하면서 철물점 문턱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갈 때마다 어찌나 물건들이 한정적이고 내가 원하는 건 없던지…’새로이 시작하는 이 곳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페인트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줄을 찾았는데 줄이 보이지 않았다. 가게 앞에는 서너 명의 경찰들만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의 경찰에게 달러 숍이 맞는지 물어보자 맞다고 했다. 줄은 어디에 있냐고 하니 건물 코너를 돌면 있다고 했다.


알려준 대로 건물 코너를 돌아보니 20여 명 남짓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 후 우리도 그들처럼 줄을 섰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줄이 빨리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 한 블록 위에 다른 달러 상점이 있다고 리스트에 적혀 있는데 자기가 가서 어딘지 정확히 확인해보고 올래? 나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남편은 알겠다고 하며 다른 달러 상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떠났다. 잠시 후 돌아온 남편이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었고 줄이 길지 않다고 덧붙였다. 생각을 해 보니 우리 둘 다 이 곳에 줄을 서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기는 여기 줄을 서고 나는 다른 상점에 가서 줄을 선 후 물건을 사는 게 좋을 거 같아.”라고 말하며 역할 분담을 했다. 그리고는 남편이 말해 준 상점을 찾아갔다.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금방 도착을 하였다. 그 상점 앞에는 여자 군인 한 명이 파일 같은 걸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또 다른 남자 군인과 경찰 여러 명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상점 앞에도 줄은 보이지가 않았다. 확인해 보니 줄은 길 건너편에 있었다. 나는 길 건너편으로 가서 마지막이 누구인지 확인 후 줄을 섰다. 곧이어 한 젊은 남자 경찰이 오더니 “여긴 외화 카드만 결제가 되는 데야. 알지?”하며 확인을 하길래 “응, 알아. 나 카드 있어”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속으로 ‘아, 카드 결제구나. 잘됐다.”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그 젊은 경찰은 이 가게는 외화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는 얘기를 계속하였고 많은 쿠바인들이 그 말에 실망을 하면서 돌아가는 게 계속되었다.


40여분을 기다린 후 들어간 세제 전용 달러상점 길 건너편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과 상점 앞에서 지키고 있는 여자 군인



새로운 시스템이 시행되는 첫날이어서 그런지 근처에 군인과 일반 경찰뿐만 아니라 사복 경찰들까지 감시자들이 아주 많았다. 보는 눈들이 많아서 이것저것 사진을 찍고 싶어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다. 가게 안에는 손님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는데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꽤나 느려서 지켜보니 한 번에 한 명 혹은 두 명씩만 들여보내었다. 한국의 CCTV 같은 감시 카메라가 없고 도둑이 많은 이 곳에서는 점원들의 컨트롤이 가능한 인원만 가게 안으로 들여보내기 때문에 언제나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꽤나 느린 편이었다.


내가 줄을 서고 얼마 되지 않아 내 뒤에 아주 말이 많고 엉덩이가 큼직한 쿠바 언니와 그녀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할머니가 오셔서 줄을 섰더랬다. 이 수다쟁이 쿠바 언니는 사람들에게 “바로 위에 있는 상점에서는 소고기를 팔아.” 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뿌려대었고 그 말에 나도 귀를 쫑긋하며 이 언니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람들과 얘기를 하던 이 언니가 ‘나 잠깐 앞에 좀 갔다 올게’ 하면서 잠시 사라지더니 어느새 보니 저 앞쪽에 줄을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설마설마하며 그녀의 머리 뒤가 따가울 정도로 쏘아보고 있었다. 결국 내 뒤에 줄을 섰던 그녀는 나보다 훨씬 먼저 상점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고 그걸 보자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그래서 내 앞에 줄을 서 계시는 영감님께 “저 언니 봤어요? 저 언니 분명히 내 뒤에 서 있었는데 방금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진짜 재주가 엄청나네요!” 하면서 비꼬듯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착해 보이시는 영감님이 웃으시면서, “허허, 정말 그러네. 대단하이!”라고 하시며 본인이 괜히 민망하신 듯 멋쩍어하셨다. 가만히 보니 그녀는 저만치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를 구워삶은 것이었다.


‘그래, 뭐 이쯤이야.’ 새치기 때문에 죽일 듯 싸우기도 하는 이 곳이지만 아무래도 경찰도 있고 군인도 있고 해서인지 다 들 조용했다. 그래서 나도 내 앞에 계시는 영감님한테만 살짝 하소연을 하고는 다시 입 다물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한 40분 정도 기다렸나?(이 정도는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가게 점원의 나를 향한 손짓을 보고는 부푼 가슴을 안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이는 손 세정제를 뿌려주는 언니였다. ‘고맙습니다.’하면서 손을 꼼꼼히 닦고는 작은 가게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 곳은 세제 전문 상점이라 배수구에 필요한 뚫어펑, 여러 종류의 액상 청소 용품, 액상과 가루 빨래 세제, 액상 주방 세제, 섬유유연제, 액상 손 비누, 샴푸, 키친타월, 벌레 퇴치제 스프레이, 방향제 스프레이, 헤어 젤 등 다양한 상품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액상 빨래 세제와 주방 세제, 화장실 청소 세제와 가루로 된 뚫어펑, 액상 손 비누, 방향제와 벌레 퇴치제 스프레이 그리고 키친타월 2개를 양손 가득 담았다.


첫 번째 카드 결제의 영광을 안은 물건들



내가 물건을 한가득 안고 있자 한 점원 언니가 다가와서 아주 친절하게 “무거울 텐데 내가 도와줄게. 이리 줘.”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헉, 이 친절함은 무엇이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돈 더 쓰라고 부추기는 건가?’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는 기본적으로 친절과는 동 떨어진 나라여서 이런 대접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변화가 아주 반갑기도 해서 “네, 고맙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며 결제를 할 물건들을 점원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빠진 물건이 있는지 작은 가게를 한 번 더 둘러보았다. 두 번을 더 살펴보아도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없었을뿐더러 다 들 무거운 것들이라 더 많으면 들고 가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이만 결제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나를 도와주었던 친절한 점원 언니가 내가 구입한 물건들을 계산대에 쭈욱 올려두었고 캐셔 아주머니가 그 물건들 하나하나를 바코드로 찍기 시작했다. 바코드 작업이 완료되자 캐셔 아주머니가 신분증과 카드를 달라고 했다. 나는 지갑에서 꺼낸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드렸고 옆에 있던 관련자들이 다 들 ‘인떼르나시오날(해외 카드를 뜻함)’이라고 하자 캐셔 아주머니가 카드를 살펴보았다. 해당 카드가 맞는 걸 확인한 그녀는 나의 신분증과 카드에 찍혀 있는 이름이 같은 지 꼼꼼히 확인을 하였다.


나의 영주권을 보면 내 이름 아래에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도 적혀 있는데 이것은 쿠바인들을 충분히 헷갈리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한참을 보고 있길래 내가 “이건 아버지 이름이고 이건 어머니 이름이야. 그리고 이 건 내 이름과 성, 카드에 있는 이 이름과 동일해.”라고 하며 친절히 알려 드렸다. 그러자 그녀는 알겠다며 카드 기계에 총금액을 눌렀다. 그리고는 초록색 확인 버튼을 누르자 치이이이이 하면서 카드 영수증이 쑤욱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3G를 켜 놓았던 나의 핸드폰에서는 카드 회사 알림이 울리면서 결제 금액이 뿅 하고 나타나서 제대로 카드 결제가 되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음, 잘 되고 있군!” 하며 혼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게용과 고객용 영수증 두 장이 다 뽑히자 이번에는 캐셔가 기계에 내 카드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구입한 목록이 적힌 영수증이 또 치이이이이 하면서 올라왔다. 캐셔 아주머니가 나에게 영수증과 펜을 주며 사인을 하라고 하였고 내가 사인을 하자 이 모든 과정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던 한 무리의 관련자들은 또 한건의 카드 결제를 무사히 끝냈다는 듯한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만 같았다. 결제 과정이 완전히 끝나자 계산대 끝 쪽에 서 있던 다른 점원이 내가 구입한 물건들을 비닐봉지에 잘 담아주었다. 고맙다고 하고는 카드와 신분증을 지갑 안에 잘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물건들이 담긴 봉투를 들고 한쪽 옆으로 가서 영수증에 적힌 목록을 쭈욱 확인해보았다. 모두 맞았다. 그제야 영수증을 접어서 지갑에 넣고는 양 손에 봉투 하나씩 들고 많은 이들의 눈빛을 뒤로한 채 첫 번째 가게를 벗어났다.


달러 상점에서 받는 6종류의 외화 카드



상상도 못 했던 쿠바 슈퍼마켓에서의 카드 결제 완벽하게 수행 완료!


이제 남편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철물점으로 발길을 돌릴 차례였다. 비록 양 손은 여러 액상 물건들로 꽤나 무거웠지만 변화하는 쿠바의 한가운데에서 역사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나의 상상력으로 인해 마음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남편은 아직 줄을 서 있을까? 아님 벌써 물건을 샀을까? 그 상점에서도 외화카드만 결제가 가능하면 남편은 어떻게 물건을 살 수가 있지?’라고 별별 생각을 하며 도착을 해 보니 남편은 줄에도, 가게 안에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어도 답장이 없었다. 또 전화를 해도 통화 중이거나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이라는 안내방송만이 흘러나왔다. 다시 한번 유리문을 통해서 가게 안을 보았다. 덩치가 커서 한눈에 들어 올 법한 내 남편은 그곳에 없었다.



이 양반,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어디 간 거야?



내 양손은 무거운데 계속해서 연락이 안 되고 행방을 알 수 없자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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