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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Aug 01. 2020

변화하는 쿠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었다-2화

소고기 안심을 슈퍼에서 판다니!


‘딱히 갈 데도 없을 텐데, 그리고 어디 가게 되면 분명히 연락을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행방불명이 된 남편을 철물점 앞에서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달러 상점 앞에는 다수의 경찰과 군인들이 철통방어를 하고 있었고 그 분위기에 나는 나름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 옆에 자리를 잡고는 양 손에 들고 있던 비닐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들은 ‘저 치나(‘중국 여성’을 뜻함-동양인은 무조건 중국인임)는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야?’라는 약간의 호기심으로 돌아가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런 그들에게 ‘저기 경찰 양반, 혹시 키가 이렇게 큰 물라또(‘초콜렛 색의 남성’을 뜻함) 한 명이 상점 안으로 들어가는 거 봤소?’ 하고 물어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남편의 전화가 수신이 잘 안 되는 지역에 있는 걸로 봐서 공사 중인 우리 집에 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래, 이 상점에 없으면 갈 데라고는 그 집 밖에 없지.’ 마음 같아서는 근처에 있는 다른 달러 상점에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양 손이 무거운 나는 일단 구매한 물건들을 어딘가에 두어야 했다. 다행히도 공사 중인 우리 집은 그 근처에 있었다. 내려 두었던 봉투를 다시 양손에 하나씩 들고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 낑낑대며 걸어가는 ‘치나’를 길거리에 줄 서 있던 모든 쿠바인들이 한 번씩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양 손 가득 물건이 든 걸 보니 저 치나 달러 상점에 다녀온 모양이군. 부럽네 부러워. 나도 카드가 있으면…’ 그런 그들의 눈길을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총총 걸어갔고 몇 분 후 아직도 공사 중인 나의 아파트에 도착을 하였다.


가슴팍에 있는 작은 가방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바깥 철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안에 있는 나무 문을 열 차례였는데 열쇠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일전에 내가 열쇠 꾸러미를 잃어버려서 새로 설치 해 놓은 자물쇠 통이었는데 열쇠가 들어가더니 돌아가지를 않았다. ‘아, 왜 이번에는 열쇠가 속을 썩이는 거야?’하면서 살살 돌려보려고 했으나 택도 없었다. 힘을 가하면 열쇠가 ‘툭’하고 부러질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다시 짜증이 올려오려는 순간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남편이었다. 철물점 안에 있었는데 그곳의 전화 신호가 좋지 않아서 이제야 내 문자를 받아 보았다고 했다. ‘그래, 남편이 뭔 죄가 있겠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공사 중인 집도 전화 수신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놀랍지는 않았다. 마침 열쇠도 말을 안 들어서 공사 중인 집에 들어갈 수가 없던 터라 남편에게 지금 그곳으로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고는 양 손에 물건들을 들고 다시 철물점으로 낑낑대며 걸어갔다. 사실 그 집 문 앞에서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만에 하나 남편 카드가 작동이 안 될 경우 내가 계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간 것이었다.


왔던 길을 거슬러 금세 철물점 앞에 도착을 하였고 조금 전에 본 경찰들은 내가 왜 또 왔는지 궁금한 듯 쳐다보았다.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는 철물점 앞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남편이 나왔다. 그런데 빈손이었다. 게다가 얼굴이 그닥 밝지가 않았다. “자기, 아무것도 안 샀어? 여기도 카드만 받지?” “응, 그런데 내 카드가 안 된대.” 얼굴이 굳은 채로 남편이 대답을 했다. “그럼 나 부르지. 자기 카드 안 되면 내가 계산하려고 밖에서 기다린 건데.” “아니야, 괜찮아. 안 살 거야. 그냥 집으로 가자.” 신중하게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 간 남편은 될 줄 알았던 카드가 사용이 안 된다고 하자 다시 물건을 제 자리에 두고 나오는 게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것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자란 남편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아직 잘 이해를 못 한지라 카드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기, 자기 카드는 현금카드여서 쿠바 화폐만 인출할 수 기능만 있을 거야. 그런데 외화 상점에서는 외화를 벌어 들일 수 있는 외화카드를 받기 때문에 자기 카드로는 물건을 살 수가 없는 가봐. 그러니 조만간 은행에 가서 외화카드를 하나 만들면 돼.(물론 줄이 무지 길어서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알겠지?” 그제야 남편은 이해를 하며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공사 중인 아파트에 가서 물건을 놓아두고 다른 달러 상점으로 갔다.(남편의 열쇠는 잘 열렸다.) 첫 번째 상점과 같은 거리에 위치한 두 번째 상점은 식품과 세제를 파는 곳이었다. 그 가게 앞에는 경찰도 안 보였고(건너편에 있었다) 줄도 보이지가 않았다. 확인해 보니 줄은 저만치 건너편에 있었다. 먹을 것을 판매해서인지 이 곳은 첫 번째 상점보다 줄이 더 길었다. 우리는 마지막이 누구인지 확인을 하고는 그 뒤에 나란히 줄을 섰다. 줄은 참으로 조금씩 줄어들었다. 한참을 지켜보니 이 상점은 한 번에 네 명씩 들여보내는 데 이 지역 주민만 이용을 할 수가 있게 신분증 검사를 미리 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게 심심했던 나는 남편에게 동네 구경 좀 하고 오겠노라며 혼자 설렁설렁 다니기 시작했다.






아바나의 중심인 중앙공원의 한 나무에 노란색 꽃이 아주 예쁘게 피어 있었다. 늘 외국인 관광객들과 형형색색의 올드카 그리고 올드카 삐끼들로 가득했던 그곳은 무척이나 한적하였고 나는 이 한적함이 좀 더 오래 유지가 되었으면 그래서 내가 좀 더 이 곳을 평화롭게 누렸으면 하는 국가경제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바람을 살짝 해 보았다. 중앙 공원과 그 일대의 아름다운 광경을 실컷 눈에 담고는 다시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로 돌아와서 이 가게 저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는 곳마다 줄이 아주 길었다. 달러 상점 줄이 가장 짧은 듯했다.


노란 꽃이 참 예쁜 중앙공원의 모습


외화 카드를 소유한 외국인인 나는 이 마법의 카드 한 장으로 원하는 걸 맘껏 살 수가 있지만(다음 달 결제일이 약간 두려운 건 제쳐두고) 외국에 가족이 없고 외화 카드를 소지하지 않은 많은 수의 쿠바인들에게는 새로운 달러 상점은 그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쿠바 인구가 1,100만 명인데 약 200만 명이 해외에 거주를 하고 있으니 거의 다섯 집 걸러 한 집 꼴로 가족이 해외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달러가 아닌 쿠바 화폐의 가게들마다 사람들의 줄이 더 길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긴 줄이 보여서 무엇을 판매하는 곳이냐고 물어봤더니 우산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우기이고 스콜성의 비자 자주 내리는 데 우산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할 정도로 줄이 길었다. 우산 사이즈가 거의 골프우산 수준에다가 그림도 예뻐서 은근 탐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줄에 낄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가진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다른 가게를 둘러보다가 남편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좌) 우산 판매 가게 줄 - 우) 내가 서 있는 줄


아직 우리 차례가 오려면 꽤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오래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삼십 분 정도밖에 지나지가 않았다. 남편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사람들이 엿듣는 걸 싫어한다) 둘 다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말을 해도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나는 그저 이리저리 사람들을 살피고 동네 사진을 찍으며 가랑비에 옷 젖듯 줄어드는 줄에 기뻐해야만 했다. 우리 차례가 조금씩 다가오자 젊은 여자 경찰이 와서 신분증을 거두었다. 내 앞에 8명이 있었으니 나는 세 번째 차례였다. 한 시간을 조금 더 기다린 셈이었다.


드디어 상점에 입장을 하였다. 이 곳에서도 역시 손 세정제를 뿌려주었고 점원이 남편에게 가방을 선반 위에 두라고 하였다. 나는 손을 닦자마자 자석에 끌린 듯이 둥근 쌀이 보이는 곳으로 끌려갔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당장 쌀이 없어지는 게 아닌 지라 일단 먼저 상점 전체를 둘러보기로 했다. 마침 빈 카트가 하나 보였고 냉큼 가서 끌고 왔다. 이 상점에는 둥근 쌀뿐만 아니라 밀가루, 참치와 정어리 캔, 식초, 커피, 각종 과자며 파스타, 여러 종류의 주스 등 그동안 사기 힘들었던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소고기와 치즈였다. 소고기를, 그것도 여러 종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파라과이 산이었다. 남편도 나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고기를 한참 살펴보았다. 좀 더 저렴한 것도 있었지만 일단 먹을 거면 제대로 된 걸 먹어야겠단 생각에 ‘뼈 없는 안심’이라고 적힌 것을 골랐다. 소고기 냉동고 옆에는 전자저울이 준비가 되어 있었고 담당자 아저씨가 아주 친절하게 고기를 저울에 달아서 무게를 재고는 고기 봉투에 무게를 적어 주셨다. 1.38킬로였다. 소고기 냉동고 옆을 보니 햄버거 만들기에 딱 좋은 스페인산 다진 소고기도 있었다. 이것도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두 개를 담았다.


치즈는 2.99킬로짜리 큰 덩어리만 판매를 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자기 치즈 한 덩이 살까?’라고 물어보니 남편은 나를 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했다. 남편은 치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 그래서 그동안 새치기하는 사람들과 싸우기까지 하면서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겨우 한 번씩 사 오곤 했었는데 이제 한동안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그럴 일이 영영 없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랬으면 좋겠다.)


‘그래, 살 수 있는 건 한번 다 사보자!’ 하면서 치즈 덩어리도 카트에 담았다. 커피도 두 봉지를 넣었다. 아, 커피는 이때 더 샀었어야 했다. 아바나에 커피가 사라진 지가 꽤나 되었다는 생각을 나는 왜 못했던 것일까? 달러 상점 오픈 첫날 커피는 동이 나 버렸고 지금도 사람들은 매일 커피를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기웃하고 있는데 말이다. 참치와 정어리캔도 세 개씩 넣고 초코칩 쿠키랑 코코 샌드도 여러 개를 담았다. 식초 작은 병도 하나 담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시야에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컵라면이었다. ‘뭐야, 쿠바에 컵라면까지 들어온 거야?’ 깜짝 놀라서 살펴보니 마치 중국산 같은 이 작은 컵라면은 하나에 1,700원 정도 하는 데다가 치킨 맛이라 매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패스를 했지만 무척이나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좌) 커피를 살피고 있는 나의 귀인 - 우) 내 눈길을 사로잡은 컵라면



파스타도 하나 담고는 남편을 보며 더 필요한 게 있냐고 물어봤더니 없다고 했다. 그래서 카트를 가지고 둥근 쌀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서 1킬로짜리 쌀 다섯 봉지를 넣었다. 밀가루도 한 봉지 넣자 카트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남편과 함께 계산대로 갔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는지라 캐셔 언니가 묻기도 전에 나는 카드와 신분증을 꺼내어 그녀가 요구하면 바로 대령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캐셔 언니는 소고기와 치즈 덩이를 보더니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두반째 상점에서 구입한 물건들



나는 왜 그녀에게 괜히 미안할까? 쿠바에도 부자들은 이미 먹고 있었을 텐데 괜히 이 언니는 못 받은 혜택을 나만 받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바코드를 다 찍고 보니 100불이 넘었다. 역대 슈퍼마켓에서 사용한 최고의 금액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치이이이이 카드 영수증이 뽑히는 소리는 나에게 어떤 묘한 쾌감을 안겨 주었다. 이제 힘들게 물건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외침이랄까!(정말 그랬음 좋겠네) 카드 긁는 소리가 이렇게 기쁘게 들리는 걸 보니 한동안 많이 긁을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여러 모로 손해보다는 득이 많은 게임이라 기꺼이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쌀과 밀가루, 소고기와 치즈 무게만 10킬로가 넘었다. 안전제일 주의자인 남편은 준비 해 간 남색 에코 백에 값비싼 물건들을 담은 후 그 위에 비닐을 덮어 아무도 우리가 어떤 물건을 샀는지 모르게 했다.  그리고는 무거운 건 모두 본인이 들고 나에게는 과자가 든 봉지 하나를 주었다. 새털만큼이나(?) 가벼운 과자 봉지 하나만 덜렁덜렁 들고 따라가기가 미안해서 가방 하나를 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고집 센 조서방은 괜찮다며 앞만 보고 묵묵히 걸어갔다. 내가 달랜다고 냉큼 주면 상남자인 내 남편 아우라에 금이 쫘악 생기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사실 그냥 한 번 던져본 말이기도 했다. 역시 내 남편은 상남잘세!






우리는 이 물건들도 모두 공사 중인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장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서 집으로 가지고 갔다. 나머지는 남편이 천천히 가져오게 잘 챙겨 놓았다. 두 번째 상점에서 구입한 물건들은 확인해 보니 모두 스페인에서 물 건너온 것들이었다. 아, 첫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이 물건들을 쿠바에 보내준(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스페인에게 괜히 고맙기까지 했다.


합법적으로 소고기를 구입한 변화의 첫날 나는 소고기 미역국과 불고기를 저녁 상에 올렸다. 파라과이산 안심은 아주 부드러웠다. 비싼 만큼 값어치를 충분히 했다. 우리는 감탄을 하며 맛있게 먹었고(특히 남편이) 이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와인을 꺼내었다. 연설가인 남편의 축사와 함께 변화하는 쿠바의 앞날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짠’을 했다.


“자기가 예전에 쿠바가 이러이러하게 변화할 거라고 말했을 때 사실 나는 전혀 믿지 않았어. 늘 변한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쿠바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제 자기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래서 나도 이 변화가 설레고 기대가 돼. 진즉 변했어야 했는데.”


“자기 나도 기뻐. 근데 아직은 시작단계니까 우리 천천히 이 변화를 잘 지켜보자고.”


그 날 남편과 나는 저녁을 깨끗이 비우고 나서도 한참을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였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혼자서 달러 상점을 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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