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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19. 2020

코로나 덕분에 쿠바가 변한다구요?

쿠바 특파원 쿠블리가 전해 드립니다


며칠 전에 남편이 흥분해서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쿠바에 달러 가게들이 생길 거래.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정부에서도 경제 상황이 아주 심각해지니 결국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하나 봐. 진작 좀 이렇게 하지. 이제야 정신을 차리네.”

“정말?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좋은 데 달러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


그런 얘기를 하면서 남편이 90년대에는 1달러가 120페소까지 했다고 했다. 현재 환율이 대략 1 USD=24 CUP인데 그 당시에는 1 USD=120 CUP 였다는 말이다.


(쿠바의 화폐 시스템은 참으로 복잡해서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이해를 돕고자 잠시 설명을 해 보고자 한다.) 현재 쿠바에는 쿡(CUC=변환 화폐)과 쿱(CUP, Moneda Nacional) 두 가지 화폐가 통용이 되고 있는데 1 쿡(CUC)=24 쿱(CUP)이다. (1쿡은 약 1,250원) 그리고 흔히들 쿡(CUC)은 외국인들이, 쿱(CUP)은 현지인들이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현실은 누구나 이 두 화폐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 나의 경우, 쿡(CUC)으로 판매하는 물건은 쿡으로 구입을 하고 쿱(CUP)으로 판매하는 물건은 쿱으로 구입을 한다. 그렇게 해야 환차 손해를 조금이라도 덜 보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쿠바인들은 보통 둘 다 ‘뻬소’로 부르며 쎄우쎄(CUC)와 모네다 나시오날(CUP)로 분류를 한다. 그러니 1 쿡도 운 뻬소(1 peso), 1 쿱도 운 뻬소(1 peso)라 듣는 사람이 알아서 잘 구분을 해야 한다. 참으로 헷갈리는 시스템이 아닐 수 없고 이 때문에 발생하는 에피소드도 물론 많다. 내가 아는 한국인 관광객들 대부분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면서 가장 많이 겪은 일인데, 가격표에 $2 이렇게 적혀있으니 당연히 2 쿡(CUC)인 줄 알고 돈을 냈는데 알고 보니 2 쿱(CUP)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게 점원들은 외국인 손님들이 그런 실수를 할 때마다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절대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엄청난 차액은 점원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 결국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2,500원을 주고 먹은 셈인 것인데 그럴 경우, 너무 억울해하는 것보다는 불우이웃 돕기를 했다고 생각하는 게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을 것이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쿠바에서 경험한 재미난 추억으로 남아 있을 테니.






1959년 1월 1일 피델 카스트로에 의해서 쿠바가 혁명이 되면서 피델은 마르크스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고 구 소련과 손을 잡았다. 그리하여 소련으로부터 끊임없는 원조를 받아 예전에는 쿠바도 살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아빠와 아들의 관계처럼(물론 정치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많았지만) 소련은 쿠바를 알뜰살뜰 돌봐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에 영원할 것 같았던 소련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원조를 받았던 것들이 순식간에 모두 중단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아무 대비 없이 원조만 받던 쿠바는 그때부터 사경을 헤매기 시작했다.


전기가 없어서 하루에 4~8시간씩 시간대를 정해 놓고 사용을 했고, 휴지가 없어서 글씨가 다 찍혀 나오는 신문지로 뒷 처리를 하고(시골에서는 나뭇잎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은 영양실조가 될 수밖에 없었고 몸무게며 키가 미달이었다.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다 보니 눈에 보이는 건 당연히 다 먹을 수밖에 없던 그런 때였다.(상세한 내용까지는 끔찍해서 쓰지 못하겠다) 그 암울했던 시기를 쿠바에서는 ‘특별 시기’라고 부른다. (남편이 아주 어릴 때였는데 당시 아버님이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을 때라 유럽으로 자주 경기를 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먹을 것들과 생필품들을 공수해 오신 아버님 덕분에 남편은 발육상태가 좋을 수가 있었다.)


특별 시기가 되자 쿠바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자구책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로 1993년부터 쿠바 내에서 미달러 사용이 합법화가 되었다.(그 전에는 달러를 가진 쿠바인들은 감옥에 갔고 달러는 외국인만 사용이 가능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쿠바에서는 CUP와 USD 두 가지 화폐를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강한 경제재제로 인해서 2004년에 미달러 사용을 금하고 되었고, 은행에서는 미달러 환전을 할 때마다 10%의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달러를 대체하는 명목으로 CUC(변환 화폐)를 만들었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CUP(쿠바 페소)와 함께 사용을 해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다시 미달러 사용을 합법화하겠다고 7월 16일 저녁 메사 레돈다(피델이 만든 쿠바에서 가장 유명한 담화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이 직접 발표를 하였다. 시작은 7월 20일 월요일부터이며 쿠바 전역 72개의 가게에서 생필품과 음식 등을 팔 거라고 하였다. 또한 2004년부터 미달러에 부과되었던 10% 관세도 월요일부터 사라질 예정이다.






작년 2019년 6월에 트럼프가 아바나 항에 정박하는 크루즈를 막아버리고 10월에는 미국에 사는 쿠바인들의 쿠바로의 송금 금액도 3개월에 US1,000로 제한을 해 버리자 쿠바 경제에 크나큰 타격이 왔었다. 크루즈가 한번 아바나항에 서게 되면 하루에 벌어들이는 외화만 해도 엄청났고 또 해외에 거주하는 약 200만 명의 쿠바인들이 쿠바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던 돈이 쿠바 경제를 지탱하고 있었는데 그걸 잘 알던 트럼프가 쿠바를 죽이기 위해서 싹둑 잘라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올 상반기에는 코로나로 직격탄을 제대로 맞아버리자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쿠바 정부도 이제는 변화를 하지 않으면 죽겠다는 걸 감지한 모양이었다.


사실 쿠바 정부에서 변화를 시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늘 힘들었지만 작년부터 경제가 더욱더 힘들어지자 작년 10월 말에 내수경제를 살리면서 외화벌이를 하기 위해서 외화거래가 가능한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를 오픈하였다. 주요 품목들은 가전제품이었다. 냉장고, 세탁기, 냉동고, 에어컨, 티브이 등 부피가 큰 가전제품을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그래도 한국이나 멕시코보다는 비싸지만) 지정된 가게에서 판매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옛날 보따리 장사꾼들처럼 쿠바에도 그동안 멕시코나 파나마 등지에서 물건을 사 와서 2~3배 비싼 가격으로 쿠바에서 판매를 하는 보따리 장사꾼들이 꽤나 많았더랬다.(코로나 이전까지) 오죽하면 파나마 경제가 쿠바인들 때문에 올라갔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그리고 쿠바인들은 카드 사용을 하지 않고 현금으로만 거래를 하다 보니 쿠바인들을 대상으로 해외에서 발생하는 범죄도 꽤나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외화는 모두 외국으로 나가버리고 쿠바의 내수 경제는 계속해서 바닥을 치게 되었다. 정부에서도 이런 사실들을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시스템이 붕괴될 위험과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극단적인 상황에 닥치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내 신용카드로 가전제품을 구입해보지는 않았지만 이 새로운 변화에 적극 환영을 하였다. 일단 정부에서도 외화벌이가 되어 좋지만 나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가 있고 물건을 사기 위해서 외국을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보따리 장사꾼한테서 물건을 사게 되면 비싼 것 뿐만 아니라 속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보증서가 있어서 보증 기간 동안에 물건에 하자가 생기면 물건을 교환 할 수가 있다. 실제로 남편은 보증 기간이 삼년인 티브이를 국영 상점에서 구입을 했는데 삼 년이 채 안 된 시점에 고장이 났다. 그래서 보증서를 가지고 그 상점에 갔더니 새 걸로 바꾸어 주었다. 그런데 이것도 사려면 줄을 많이 서야 하고 나는 삼성 냉장고를 이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 비싸게 하나 사놓은 게 있어서 당장 살 게 없었다. 조만간 새 집에 설치할 에어컨을 사러 가야 하는데 요새는 일주일 동안 줄을 서야 물건을 하나 살 수 있다고 해서 조금 더 기다려보다가 살까 고민 중이다.






작년의 외화 신용카드 사용도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달러 가게까지 생겨나고 달러에 부과되던 관세도 없어진다고 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은 시작이 어쩌면 쿠바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암달러상들에게 거래하던 달러 환전을 은행에서 바로 거래를 하게 되면 쿠바 은행에서도 달러 확보가 되고 또 달러를 가진 이들이 달러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게 되면 쿠바 경제를 살려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통령은 또한 외화 신용카드를 사용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체크카드를 분실한 지금 나에게는 이 또한 아주 좋은 소식이다. 물론 대통령이 발표를 했다고 해서 상황이 금세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월요일부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가게는 쿠바 전체에 72개이고 아바나를 확인해보니 11군데이다. 일단 월요일에 그중에 한 군데에 가서 상황을 확인해 볼 예정이다. (물론 달러가 없는 대다수의 인민들은 늘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도 모두 돈 있는, 부자들을 위한 시스템인 것이다.)


어제 남편과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작년부터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는 쿠바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쿠바에 와서 암울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계획들이 어쩌면 가능성을 조금씩 비춰주는 것 같아 우리에게는 약간이지만 희망이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을 했다. 물론, 쿠바 정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매사에 조심을 해야 하고 돌다리를 열 번은 두드린 다음에 무언가를 해야 손해를 최소화할 수가 있다.


쿠바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있는 나에게 많은 분들이 왜 쿠바에서 비즈니스를 안 하냐고 물어보셨다. 일단 쿠바에서 하는 비즈니스는 백 프로 쿠바 정부를 거쳐야 하는데 쿠바 정부에 최소 일 년 동안은 돈을 못 받을 각오를 하고 시작을 해야 한다. 쿠바 정부는 돈 안 갚기로 아주 악명이 높아서 중국조차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물건을 제때 구입을 할 수가 없어서(돈을 안 주니 배를 묶어두고 보내질 않는다.) 인민들은 늘 배를 굶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쿠바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그냥 망하려고 작정한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재량껏 잘하시는 분들도 간혹 계시겠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재량은 없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려다 보니 그냥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쿠바에서 이런 기다림의 시간은 필수라는 걸 살면 살수록 느끼는 바이다.






쿠바의 이런 변화에 대한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을 듣고는 얼른 브런치 독자님들과 공유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급히 글을 쓰게 되었고 이 글이야말로 진정한 <쿠바는 지금>이 아닌가 한다. 변화가 일어나는 현장에 내가 있으면서 그 사실을 글로 알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마치 쿠바 특파원이 된 마냥 흥분되기도 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쿠바의 변화하는 추세를 지켜보며 조금씩 여러분들께 생생하고 따끈한 쿠바 정보를 알려줄 예정이다. ‘변화’라는 단어는 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상, 아바나에서 쿠바 특파원 쿠블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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