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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Aug 26. 2020

그녀를 생각하니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내용은 실화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직책 등은 모두 가명으로 기재를 하였습니다.



그 날 따라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당시 먹고 자는 시간 이외에는 일만 할 때였고 야근은 기본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앉아있기조차 힘이 들어 회사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가서 영양제 링거를 맞았다. 영양제를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오니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병원에서 나와서 핸드폰을 켰는데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알림이 끊임없이 진동을 울리며 잠시 릴랙스 했던 내 몸을 다시 긴장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가장 많은 발신자는 김 차장이었다.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김 차장, 나 병원에 있었는데 무슨 일 생겼어? 전화를 엄청 많이 했네.”


“팀장님, 어떡해요? 폴(가명) 대표님 여자 친구 김민아(가명)가 천정에서 물 새는 것 때문에 전화해서 소리소리를 질러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뭐? 김민아가 전화해서 김 차장한테 소리를 질렀다고? 왜 자기한테 전화를 해서 난리를 쳐? 그리고 물 새는 게 우리 잘못이야? 김 차장 몸도 안 좋은데 이상한 애 하나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았겠어. 아 이걸 그냥... 일단 지금은 늦었으니 내일 회사에서 다시 얘기해. 알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좀 쉬어!”


“네 팀장님, 내일 봬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누가 되었든 내 팀원을 건드리는 자가 있으면 나는 가만있지 않았다.


‘얘 안 되겠네.’


폴 대표의 여자 친구 김민아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했던 지라 나인지도 모르고 그녀는 명랑하게 전화를 받았다.


“(발랄하게) 여보세요?”


“나 린단데 김민아, 너 내 팀원한테 소리 질렀냐?”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금세 목소리가 바뀌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놀란 김민아가 남자 친구인 폴 대표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폴 - (영어로 소리를 지르며) 야 지금 천정에서 물이 몇 번째 새는데 어쩌니저쩌니…


나 - (나도 영어로 차분하게) 알겠어. 그런데 나도 말 좀….


폴 - (큰 소리로 소리 지르며) Shut up!


내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나의 고객인 미국인 폴대표는 나에게 영어로 셔럽이라고 했다. 셔럽? 입을 닥치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너무 놀라서 순간 멍했는데 곧이어 나의 뇌가 빼베벵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두 명의 내가 질의응답을 하기 시작했다.


린다 1 - 버릴까 말까?

.....

린다 2 - 버려!




You shut up!(유 셔럽) 김민아 바꿔!



그가 나에게 셔럽이라고 소리를 치고 난 후 일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길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이 듣든지 말든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폴대표는 자신이 고객이고 그것도 아주 큰 외국계 기업의 대표였으니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내가 고분고분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예상을 뒤집고 내가 자신이 한 것과 똑같이 소리를 질러버리자 깜짝 놀라버렸다. 물론 폴대표 옆에서 듣고 있던 김민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둘 다 내가 미쳐버린 줄 알았을 테다. 그래서인지 폴대표도 김민아도 서로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미루고 있는듯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나의 요청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기다려도 대꾸가 없길래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회사 담당자인 유 부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부장님, 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부장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 일이 생겨서 전화드렸어요.”


“팀장님,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왔는데 나와서 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 십통이 와 있더라고요. 확인해보니 폴 대표님 담당인 김 차장이 전화를 한 거였어요. 그래서 김 차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폴 대표님 여자 친구 김민아 씨가 저희 김 차장에게 전화를 해서 천정에 물 새는 것 때문에 소리치며 난리를 쳤다고 하네요. 부장님도 아시다시피 김 차장이 그동안 열심히 천정에 물 새는 거 수리하며 도와줬는데 그 난리를 쳤다네요. 그래서 제가 폴 대표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폴 대표님이 받으시고는 제가 말을 하려는데 저한테 Shut up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대표님께 Shut up이라고 했어요. 저희는 대표님 도와드린 잘못 밖에 없는데 왜 제가 대표님께 그런 말을 들어야 하고 또 대표님 여자 친구가 제 팀원에게 전화를 해서 소리를 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이런 식으로 욕을 먹으면서 계속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마 내일 사장님께 이 내용에 대해서 전해 들으실 텐데 모르고 들으시면 부장님이 놀라실까 봐 제가 먼저 상황을 설명드리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죄송해요 이런 일로 걱정을 끼쳐 드려서.”


“아니에요 팀장님, 저희도 폴대표님 여자 친구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요.”


벌써 몇 년째 나의 고객이셨던 유 부장님과는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통화가 가능했다. 알고 보니 폴대표님은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기자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직원들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폴대표님의 새로운 여자 친구 김민아는 한때 나와 아주 친했던 동생이었다. 그녀는 나의 초창기 고객이었던 프랑스 인턴의 여자 친구였다. 그 둘은 어느 가수의 콘서트 장에서 만났는데 만난 그 날 눈이 맞아서 그다음 날부터 함께 살았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짐을 싸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거의 십 년도 훨씬 넘은 일이니 그때 한국에서 이렇게 연애를 하는 건 어찌 보면 특이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더 특이한 건 그녀는 영어도 불어도 잘하지 못했다. 물론 한국어는 아주 유창하게 잘했다. 그런데 그 둘은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었고 그런 그 커플이 참 예뻐 보였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그녀는 마땅히 살 곳이 없었다고 했다.)


우연히 몇 번을 만난 후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했고 그때부터 “언니, 언니”하며 나를 아주 잘 따랐다. 당시 나는 서울에 올라간 지 오래되지 않아 아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던 때라 나를 잘 따르는 아주 예쁘고 날씬한데 재미있기까지 한 그녀가 나는 좋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릴 때 이혼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등학교 때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디제이를 했다며 나에게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그녀가 살아왔던 이야기는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했고 그녀의 과거를 듣자 마음이 너무 짠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보려는 그녀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잘해 주었다.


나는 옥탑방에 살면서 그녀가(정확히 말하면 프랑스 남자 친구가) 이사를 간다 길래 없는 돈을 끌어서 소파를 사 주었고 그녀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다 사주었다. 누구보다 날씬한 그녀는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대식가였는데 혼자서 5인분은 거뜬히 먹는 그런 아이였다. 아마 먹방 프로그램을 했다면 그녀는 아주 성공을 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언니, 나 저거 먹고 싶어.” 그러면 “응, 가자”고 하면서 그녀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을 걸 사 줬던 것이었다. 독하게 일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아가던 나는 그 일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자 좀 부담스러워지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하는 그녀의 말만 믿고 간이고 쓸개도 다 빼 주었고 그녀에 대해서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 내 뒤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비수를 꽂았고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사건으로 하얏트 호텔 옆 공터에 혼자 앉아서 엉엉 울던 게 떠오른다. 그 일은 지금까지 내가 사람으로 인해 겪은 일 중에서는 단연 손꼽힐 만큼 큰 사건이었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것에 대해서 아주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그렇게 뒤통수를 맞아도 변하지 않던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아야 변하는 존재였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갖게 해 주고 내면을 강하게 단련시켜준 그녀에게 몹시 고맙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모두가 스승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그녀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하고 농담도 잘하며 처음부터 언니 언니하고 잘 따르는 사람을 경계하게 되었다. 물론 자기 돈은 귀하고 남의 돈은 막 써도 되는 그런 사람도 포함이었다. 종잇장처럼 가벼운 그런 사람들은 결국 나와는 맞지 않았다.








한동안 그녀는 내 마음속에서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제대로 갚아주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복수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더 잘 되어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 내 미국인 고객 폴의 여자 친구가 되어 있었다. 몇 년동안 열렬히 사랑했던 프랑스 남자 친구가 그녀를 두고 싱가포르로 떠나버리자  곧바로 돈 많고 좋은 집에 사는 자신의 아빠뻘인 미국인 폴에게 접근을 했던 것이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였다.


그렇게 나와 그녀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급격한 스트레스로 터져버린 김 차장의 입술을 보자 김민아에 대한 증오가 다시금 불타 올랐다.


‘착한 사람은 왜 늘 당하기만 해야 해?’


내가 소리를 지른 후 폴대 표는 회사에서 다른 얘기는 하지 않은 듯했다. 다시 김 차장에게 전화를 한 김민아는 소리는 지르지 않고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김 차장이 폴대표의 집에 방문하기로 한 날 나도 함께 방문을 하겠다고 했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고객의 집에 문제가 발생을 했으니 문제 해결은 빨리 제대로 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가서 천정에서 물이 새는 것을 확인하고 어떻게 해결을 할 수 있는지를 봐야겠다고 말했다. 김 차장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다.


“팀장님, 그 집에 가면 김민아가 있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응, 괜찮아. 일이 먼저잖아.”


그날 나는 누가 봐도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 김 차장과 나는 택시를 타고 폴대표의 집으로 향했고 집에 도착을 하니 수리 담당 과장님도 다른 분과 함께 오셔서 천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거실 구석의 한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콘 플레이크를 먹고 있는 김민아와 눈이 맞았다. 그녀는 내가 오는 줄 몰랐기 때문에 몹시 당황을 한 듯했다. 나를 보더니 그녀는 김 차장 옆에 딱 붙어서 엄청 친한 척을 했다.


그 집에서 지휘권은 나에게 있었고 나는 수리하시는 분들께 이것저것 지시를 하며 물새는 걸 확인하기 시작했다. 수리 기사님들도 모두 나를 알고 계셔서 일은 문제없이 잘 진행이 되었다. 결국 천정을 뜯자 물이 쏟아져 내렸다. 윗집과 관련된 문제였다. 아무래도 4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이다 보니 이런 문제들이 발생을 했던 것이었다. 천정 내부를 확인 후 물을 말끔히 제거하고 말린 후 다시 도배를 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김민아에게 도배지를 고르라고 했다.


그녀는 거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벽지 카탈로그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동안 쌓여 있던 그녀에 대한 증오심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나에게 비수를 꽂고 사라진 그녀가 그렇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 날 나는 그녀에 대한 모든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를 하였다.


천정에 물 새는 것까지 마무리를 하고 나서 나는 회사 담당자에게 말씀을 드렸다. 더 이상 이 회사와 일을 하는 것은 힘들겠다고. 담당자를 몇 명을 바꾸었지만 모두 다 너무 힘들어하고 이 고객 한 명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게 너무나도 컸던 것이었다. 담당자인 유 부장님이 몹시 놀래며 말씀을 하셨다.


“팀장님, 팀장님이 안 도와주시면 저희는 이제 누구랑 일을 해요?”


“부장님, 저희 말고도 회사들 많아요. 제가 폴 사장님께서 거주하시는 빌라 전문인 부동산을 소개를 해 드릴게요. 그 부동산 사장님이 위층도 담당하고 계셔서 저희보다 더 잘 도와주실 거예요. 저도 부장님 봐서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싶은데 팀원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걸 보니 저희는 능력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죄송해요 부장님.”


그렇게 나는 다른 부동산을 소개해 드리며 몇 년을 함께 한 고객과 거래를 마무리했다.(한마디로 잘랐음) 내가 아주 정성을 쏟았던 고객사여서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모두를 위해서 그게 최선인 듯했다.








그 후 나는 흘러 다니는 바람을 통해서 폴대표와 김민아의 소식을 들었다. 폴대표는 김민아를 한국에 두고 홀로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소문이라 정확한 내용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 둘의 소식은 더 이상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하는데 만약 바람 소리가 사실이라면 그녀는 이번에는 또 누구 옆에서 기생을 하며 살고 있을까? 기생충이야 말로 진정 그녀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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