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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다에레스 Dec 08. 2022

늘 보호자인 나

15년째 환자의 보호자로 산다는 것

엄마가 입원한 지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그중 못 걷게 되신지는 5년.


병원에서 누워서만 생활하시다 보니, 모든 몸의 근육이 빠져버려서 무엇인가를 씹어먹는 행동도 못하신다

콧물을 끼고 생명만 연명하고 있는지 3-4년.


이미 몸 상태도 좋지 않은 엄마가, 병원에서만 지내다 보면 종종 상태가 악화될 때가 찾아온다

지난번에 응급실에 다녀왔을 때에는 코로나가 시작하는 시기여서, 응급실에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보호자는 1명만 들어갈 수 있는데 기본적인 거동도 불가능하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은 엄마를 혼자서 커버한다는 것은 사실상 너무 버거운 일이다.


지난 글은 엄마를 2년 만에 만나러 간다였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응급실 보호자로 함께 동행한 이후로, 2년 동안 면회도 모두 금지여서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만났던 9월

면회 직후 다시 코로나가 심해져서 면회 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11월 말 다시 면회가 시작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직장인이라 주말에만 면회를 갈 수 있는 상황이라 간신히 3주 뒤의 면회를 잡았는데- 그 사이 내 컨디션도 너무 안 좋아지면서 면회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정되어있던 지난주 면회. 엄마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져서 면회를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오늘 엄마 상태가 안 좋은 이유로, 응급실에 보호자로 함께 동행해있다. 15분 면회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그간 엄마는 많이 늙으신 건 기본으로 무릎이 굳어져버려 다리를 펼 수도 없고, 손도 굽어서 손을 쫙 펼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항상 건강하던 엄마였는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이렇게 망가져버린 엄마의 몸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아픈 엄마 앞에서 차마 울 수는 없다.


항상 병원에서 지내다가 오늘 응급실에 동행해서, 기저질환은 없는지 어떤 증상은 없는지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기존 병원에서 진료의뢰서를 써주었을 테지만, 모든 의사 선생님이 상태가 어떤지 물어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이 상황에 딸인데 왜 잘 모르냐는 막연하고도 책임감 없다는 상황에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나더라.


오랜만에 엄마에게 (응급실 베드일 뿐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친척동생이 얼마 전 결혼 한 이야기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야기, 삼촌이나 이모가 많이 늙으셨다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는 엄마의 눈빛이 심연이 깊은 느낌이었다. 십여 년째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누워서 스스로 망가져가고 늙어만 가는 자신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친지들의 이야기가 너무 상반되었기 때문일까? 아니- 아니면 엄마는 사실 아무 생각도 없을 수도 있다. 그저 그들과 내 처지를 비교했을 때에 부러움과 내 인생에 대해 서글픔이 느껴져서 엄마의 마음 또한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나는 내 바쁜 일상에 아픈 엄마는 감정 속에 묻어버리고 지냈었다. 엄마가 내 감정선 위로 올라오는 시점이면 내 인생이 너무 처량하고 슬퍼지기 때문이었는데, 엄마가 내 인생에서 지워지는 날이 올까 싶기도 하고. 엄마가 그 어느 날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내게서 엄마의 흔적이 0가 되도록 지워질 것 같진 않다.


20대부터 언제나 나는 가족으로 인해 그늘이 있는 삶을 살았고, 주기적으로 엄마 병원에서 오는 연락들 때문에 어느 하나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었다. 회사에 엄마가 아프셔서 휴가를 내겠습니다도 한두 번이지-

내 또래나 혹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아직까지 부모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왜 스무 살 때부터 이런 삶일까. 안정감 있지 않고 항상 변수가 있는 내 인생이 슬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 밝은 사람들을 종종 만나고는 하는데, 어떠한 불행 없이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따스하게 자라난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의 모습과 상황이 비교되어 속상할 때가 생기는 것 같다. 나도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밝고 그늘 없는 사람이 되었을 수 있을까 하면서, 얼굴에 수심과 그늘이 많은 나는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래도 내 엄마니까 나는 엄마를 포기하고 버릴 수가 없다. (결국 엄마 앞에서 안 울려고 했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 결국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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