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땅의 기운을 타고난 나란 사람

그래서 어떤 집을 구해야 한다고요?

by LindAra

스무 살이 되던 해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오빠와 나의 대학교 중간 즈음에 위치한 종로구 창신동으로 독립 겸 이사를 나간 이후로

거의 2년에 한 번씩 매번 이사를 다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집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겼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 집을 보는 눈은?

다행이다, 주택에 사는 엄마 아빠 덕에 주택을 보는 눈도 조금 있다고 본다.


주재원이 결정되고 나서

남편이 12월 초에 미리 현지 출장을 올 일이 있었다.

그때 휴직 중이던 나는 다행히 2박 4일 남편의 출장 일정에 동행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혼자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 부분이 가장 설렜다는 사실)

그 일정의 목적은 단 하나, 한 달 뒤 우리 가족이 살 집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공했냐고?

그럴 리가.

그 어떤 것도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미국은 정말 현 세입자가 나가고 이틀 뒤 새 세입자를 구하고 이런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도 실제로 이사 들고 날고는 당일에 이루어지는 일이 많지만,

이사 날짜 또한 일~이주일 내인 상태로 집을 구한다.

그러니 한 달 전에 간 우리는 탈락.

다만 미국 집이 어떻게 생겼고(남편은 미국 집 안에 처음 들어가 봤다)


미국에서 집을 구할 때 내가 겪은 경험에 바탕하여 몇 가지 정리해 보도록 하자.


1. 카펫인가, 하드우드인가.

- 카펫은 겨울에 덜 춥지만, 무언가를 흘렸을 때 청소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먼지가 계속 난다는 것.

반대로 하드우드는 내 성질대로 청소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겨울에 너무 춥고(난방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여기는, 특히 싱글 하우스는 층간소음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발망치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린다.


2. 앞마당과 뒷마당에 수도가 있는지

- 의외로 앞, 뒷마당에서 물을 써야 할 일이 많다.

신발을 빤다거나 세차를 한다거나, 또 마당에 물도 줘야 하기 때문에


3. 스프링클러가 잘 작동하는지

- 잔디.. 잔디 죽이면 또 이사 나가기 전에 다시 원상 복귀해놔야 하기 때문에 잔디에 물 꾸준히 줘야 한다.

우리 집 잔디 여러 번 죽이고 다시 심폐소생술해서 살리는 중이다…


4. 마당에 잔디가 얼마나 있는지

- 잔디.. 잔디… 잔디… 처음에는 인조잔디가 뭐야, 진짜 잔디로 앞바당에 꽃도 심고 해야지

했으나! 지금 생각은 그냥 인조잔디였다면, 물도 안 줘도 됐을 텐데 싶다.


5. 세탁기와 건족가 가라지가 아닌 실내에 있는지

- 가라지에 있으면 그 공간은 아무래도 쥐랑 바퀴벌레랑 나방이랑 개미랑 같이 쓰는 공간이 될 것이며,

나는 분명 세탁물을 꺼내고 넣다가 바닥에 흘릴 사람이기 때문에


6. 집에 석회수 거르는 시스템이 있는지

- 여기 산호세는 석회수 지역이기 때문에 석회수를 정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시스템도 소금을 채워 넣는 것과 전기로 하는 시스템과 같이 여러 종류가 있는 걸로 안다.


7. 가라지 앞 주차 공간(드라이브 웨이)이 얼마나 넓은 지

- 차 두 대가 동시에 주차가 되는지가 중요하다.

차가 두 대 이상인 이 나라에서 가라지 앞에 주차할 수 없다면, 차 한 대는 가라지에, 한 대는 드라이브웨이 하거나, 집 앞 길가에 주차해야 한다.

특히 가라지가 개인 체육관이나 스토리지 공간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 나라에서 드라이브웨이가 은근 중요하다.


8. 태양광 있다면 땡큐, 없어도 문제는 없지만 있다면 더 좋지

- 이곳이 어디던가, 캘리포니아 선샤인 아니던가.

우리 집은 없지만 있었으면 전기세를 하나도 안 냈겠구나 싶다.


9. 에어컨 있는지 확인

- 건조한 여름이지만 그래도 일 년에 1~2주일 정도는 에어컨이 그리워지는 날들이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 집은 에어컨은 없다…)


10. 에어컨이 없다면? 그럼 실링팬이라도.

- 실링팬 이거 이거 은근 요물이더라고요.


11. 집 난방 시스템(퍼니스) 확인

- 우리 집은 꽤나 낡은 거라서 어플로 조정도 안되고 다 매뉴얼인데,

가끔 최신식 퍼니스라면 어플로 조절할 수 있어서 겨울에 유용해 보였다.

우리는 겨울에 도시락 싸러 내려온 내가 난방을 트는 형태다.

아무래도 온돌의 개념이 없어서 집 안에 온기가 없다.


12. 집 앞 차선 확인

- 집 앞에 차선이 노란 실선이면, 그 도로의 제한속도가 제법 높으므로

웬만하면 차선이 없는 곳을 선택하자.

아이들은 뒷마당에서만 놀지 않고 자전거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기에 집 주변 제한 속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13. 전깃줄이 지하로 가는지 확인

-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이 지구상 가장 최혁신, 최첨단 기술을 만들어내는 실리콘 밸리 이곳에는 아직도 정전이 있다.

정전이 왜 일어나는가… 우리 동네만 해도 전봇대가 다 나무로 되어있다. 나무로 된 전봇대를 난생처음 봤다.

그래서 비바람이 불거나, 누가 차로 박거나하면 전봇대가 쓰러지고, 그러면 그 일대가 정전이 되고

그러면 복구까지 제법 오래 걸린다.

복구는 어떻게 하냐면, 다른 나무를 가져다가 나무 : 나무로 교체한다.

왜 쇠로 만들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정전과 상관없는 동네들이 있다. 바로 전깃줄을 지하로 설계한 곳.

그리고 병원과 같은 골목인 집들.

(병원은 비상 전원이 항상 필요하기에 정전에서 안전한 제대로 설계한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에 온 이후로 세 번의 정전을 겪었다.


14. 주방 구조, 즉 동선이 편한 지

- 아일랜드 장이 있는지

은근 전자레인지, 에어후라이어, 믹서기, 커피포트 등 아일랜드장에 두고 사용할 수 있다면 부엌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후루룩 먹고 나가는 아침을 아일랜드 테이블에 하이 체어 두어 개 놓고 해결하는 그런 그림을 꿈꿨다.

비록 우리 집에는 없지만.

우리 집은 슬프게도 부엌 공간이 좁다.. 조리 공간이 좁아서 더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슬픈 현실.


15. 정수 필터가 설치되어 있는지

- 석회수 지역이기에 정수 필터가 설치되어 있다면 그 필터만 교체하며 탭 워터를 마시면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브리타 정수기나, 일반 정수기 혹은 물을 구입해서 먹어야 한다.

번거롭기도 하고 물을 구입해서 먹을 경우 쓰레기 처리까지도 매번 생각해야 한다.


16. ct. dr. ln.

길 이름 뒤에 ct.가 들어간 곳.

특히 아이가 있다면 코트는 아무래도 막다른 길이라

그 주변에 사는 거주민이 아니라면 굳이 막다른 길로 잘 들어오지 않는 법

앞마당과 드라이브웨이 등에서 아이가 마음 놓고 뛰어놀기에 비교적 안전하다.


집이라는 게 결국 가장 오랜 시간 지내고

또 이역만리 타국에서 내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곳이기에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뭐 내가 맘에 든다고 그 집에 바로 내가 들어가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집주인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미국이지만.


그래도 이런 기본적인 사항들을 집 계약 전에 알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나의 경험 상

주재원, 특히 미국 산호세로 주재원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찾아보고 갔으면 좋겠다.


대학 합격 발표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내 사주팔자에서 나는 땅의 기운을 타고난 사람이랬으니

전원주택에서 땅을 딛고 행복하게 잡초나 뽑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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