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까만 봉지 속 가득했던 비디오테이프.
1~2주에 한 번 정도 아이들과 무비나잇을 한다.
내가 추천하는 영화를 다 같이 앉아 보는 시간이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1. 아이들의 지금 관심사를 알아야 하고
2.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 이어야 하고
3. 아이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겠고
그렇게 한 편씩 한 편씩 소소하게 시작한 게
이제는 “엄마가 추천해 주는 영화는 다 재밌어”가 되었다.
사실 ‘재미있는 영화‘보다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많고
배워가는 게 많은 걸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아직 아홉 살이 둘째한테 그건 좀 무리인 듯싶긴 하다.
생각해 보니 주 5.5일 일하시던 우리 아빠는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실 때마다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다.
그 안에는 비디오테이프가 5~6개씩 들어있었다.
로빈윌리엄스의 빨간 삐에로 코가 인상적이었던 패치아담스,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던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였던 필라델피아,
또 다른 의미로 어떻게 동생의 여자랑 결혼하지? 싶던 가을의 전설,
배꼽 잡고 웃던 짐 캐리의 마스크,
결국은 사운드 트랙을 사서 모든 노래를 다 외우게 된 사운드 오브 뮤직,
너무 길고 지루했지만 비비안 리가 너무 예뻤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종교가 그렇게 대단해? 싶었던 벤허,
사랑이 그렇게 대단해? 시티 오브 엔젤 등
생각해 보니 대학 시절 연극부에서 만난 우리 엄마 아빠는
특히 아빠는,
연극을 보고 영화를 보고 이게 당신의 예술 혼 충족의 방법이었던 거다.
서울이야 대학로만 가도 수십 개의 연극이 있지만
대전은 그렇지 않기에 아마 매주 수많은 영화로 그 혼을 채우셨지 않았나 싶다.
근데 내가 애들이랑 함께 볼 영화들을 고를 때 생각해 보니
이게 손이 좀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지금은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에 애플티비까지
고를 수 있는 영화와
이런 컨텐츠에 대한 설명이 유튜브에 이렇게나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미세스 다웃파이어 같은 영화를 찾기가 이렇게 힘든데
그 옛날 ‘영화가 좋다’ 라거나 신문, 잡지 외에 이런 정보를 얻기 힘들었을 아빠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무비 나잇을 개최하셨던 걸까.
결국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무비 나잇을 당했던(?) 딸은 커서 무비 나잇을 개최하게 된다.
배꼽 빠지게 웃고,
코끝 찡하게 울고,
이해가 안 가던 그 모든 감정들이
언젠가 이해가 가는 순간에 퍼즐처럼 그 자리에 딱 들어맞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