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일요일, 매출 늘리기
우리의 초기 계획은 4주 동안 어느 정도 팔리는지 보고 자리를 잡은 후에 천천히 물량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첫 주도 둘째 주도 가져간 물량이 4시간 만에 다 팔리는 것을 보니 욕심이 났다. 그리고 먹었던 사람들도 다 맛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세 번째 주 일요일, 첫 주의 130개의 두 배인 250개의 크로와상 도우를 들고 마켓으로 향했다.
대망의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날씨를 체크했다. 마켓은 야외 공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날씨가 정말 중요했다.
"후. 비는 안 오네."
전날 밤 비 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다. 마켓에 가보니 바닥이 비로 인해 진흙 져있었다. 이왕이면 뽀송뽀송한 잔디였으면 좋았겠지만 일단 비는 그쳤으니 이것도 감지덕지지 하는 생각으로 가게를 열었다. 이제 몇 번 해봤다고 진흙탕 위에서도 수월하게 천막을 치고 오픈준비를 끝마쳤다. 순조롭게 가게를 오픈하고 와플팬에 빵을 굽기 시작하니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30분 일찍 오픈 준비를 끝냈다. 이른 시간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하이. 굳 모닝.”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특히 커피를 든 사람과는 기필코 아이컨택을 한 후 “웰컴 투 크로플”을 외쳤다. 열에 일곱 정도는 우리가 무엇을 팔고 있는지 관심을 보였다. 그중 둘셋 정도는 크로플이 흥미로운 조합이라며 시도해 보고 싶다고 지갑을 열었다.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나 둘 꾸준히 빵이 팔렸다. 한참을 손님들과 얘기하다가 옆을 돌아보니 벌써 재료 한 통이 비어있었다.
“와, 벌써 한 통 다 끝나겨?”
“그래. 아자 아자, 가라! 고우 슛!”
쑥쑥 팔리는 빵을 보고 있자니 평소였으면 하지 말라고 짜증 냈을 마치 나를 포켓몬처럼 부리는 J의 이상한 구호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신이 났다. 많은 물량을 가져와서 다 팔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는데 이 속도라면 또 금세 매진을 외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11시가 조금 넘어가자 마켓 먹거리 코너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신이 나서 크로플을 계속 구워냈다. 눈앞에 인파가 가득했다. 이 속도라면 두 번째 통도 금방 끝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뭐야, 왜 갑자기 사람이 안 와?”
그런데 거짓말같이 우리 가게에만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군중 속의 고독이 이런 것일까? 앞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햄버거며 타코야키며 온갖 음식들을 손에 들고 먹고 있었다. 다만 아무도 우리가 팔고 있는 크로플을 원하지 않았다.
“불러~불러~ 가서 불러와~”
“아놔 진짜..”
10시가량까지는 잘 팔리던 빵이 왜 갑자기 안 팔리는 거지? 사람들이 갑자기 빵에 흥미를 잃었는데 J는 나보고 가서 사람들을 불러오라는 소리나 했다. 호객행위도 좀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한테나 하는 거지 이렇게 처절하게 아무도 눈길을 안 줄 때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쑥쑥 팔리던 빵이 갑자기 멈춰버리자 남자친구도 빵을 굽던 손을 멈추고 같이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두 명의 처량한 미어캣들처럼 음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그날 마켓 운영시간 중 제일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모여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나의 고객은 아니었다.
“왜 갑자기 안 오지?”
간간히 한 두 명이 사 먹고 갔지만 11시부터 12시가 되는 시점까지 한 시간 동안 우리는 크로플을 열 개도 채 팔지 못했다. 하필 오늘은 물량도 많이 가져온 날이라서 다 못 팔면 버려야 했다. 이렇게 힘들게 준비한 재료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꼭 다 팔자는 생각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크로플을 홍보했다.
“크로와상과 와플을 합친 크로플!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지금 뭐라고 한 거냐?”
그때 가게 앞을 지나가던 한 백인 할아버지가 멈춰 서서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분이 내 영어를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다시 또박또박 설명을 했다.
“이건 크로플인데 크로와상과 와플을 합쳐서 크로플!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장사를 하면서 이미 수백 번도 더 설명해 본 내용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반응이 싸늘했다.
“아니 그건 알겠는데, 크로플이 뭐냐고.”
“크로와상이랑 와플을 한 단어로 줄여서…. “
“아니, 아니, 크로플? 이건 어느 나라 말인데?”
“빵 이름…”
그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할아버지는 내 영어를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그냥 시비를 걸러 온 것이었다. 아직 진상을 만나 본 적 없었기에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점점 진상 할아버지의 말발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진상을 알아보지 못한 나의 최후였다. 가뜩이나 빵도 많이 남아서 조급한데 이제 이 할아버지는 우리 매장 앞에서 본격적으로 나한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내가 MBA 공부도 했는데 이 이름은 너무 구려! 아무도 몰라. 이렇게 장사하지 마.”
“근데 이거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길거리 음식이에요.”
“그건 한국이고. 여긴 어딘데? 호주잖아. 구려. 구리다고.”
계속 sucks를 반복해서 말하는 저급한 주둥아리를 보고 있자니 나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싸워봐야 장사하는 사람 손해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대충 알겠다고 하고 보내려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 등 뒤로 한 여성분이 나타났다.
“헤이 익스큐스 미, 주문할 거예요?”
갑자기 다른 손님이 나타나자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더니 자기 갈 길을 찾아 떠났다. 이번엔 옆에 천막에 가서 뭐라고 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우리 천막에서 일어난 일을 다들 보았기에 사람들이 전부 그 사람한테 그냥 대꾸도 안 해줬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진상을 한 번에 쫓아낸 여성분은 앞머리만 자주색으로 염색한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짧은 영어구사능력이 답답했다.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했어요. 이상한 사람이네요. 어쨌든 저는 클래식 크로플 하나 먹을게요”
“오케이. 클래식 크로플 하나요.”
그 여성분은 쿨한 헤어스타일에 걸맞게 주문도 쿨하게 하고 사라졌다.
불행 중 다행인지 진상 할아버지가 손님처럼 꾸준히 가게 앞에 서있어 준 덕분에 판매의 판도가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다시 오전에 팔리던 것처럼 크로플이 하나둘씩 꾸준히 팔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워낙에 남은 양이 많아서 다 팔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빵이 남으면 남자친구를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1시가 되자 갑자기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는 1시 전에 다 팔고 정리해 버려서 몰랐는데 1시 이후에 꽤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우리는 마켓이 문 닫는 시간인 2시까지 최선을 다해 빵을 팔았다.
"이제 그만 가게."
"이건 어쩌지?"
"버려."
테이블 위를 보니 다 식어버린 크로플 12개가 보였다. 생각만큼 빵이 쭉쭉 팔리지 않은 탓일까 J의 표정이 많이 좋지 않았다. 사실 12개는 홍보용으로 미리 구워둔 제품이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완판이라고 생각해도 되는데 아무래도 남은 빵을 버리려니 속상한 듯했다.
판매가 끝났다고 장사가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 물건을 정리해야 했다. 우리는 차 대신 수레를 이용했기에 두 번에 걸쳐서 물건을 옮겨야 했다. J가 먼저 첫 번째 수레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홀로 텅 빈 공원에 남아서 남은 짐을 지켰다.
다른 천막 사람들이 계속 괜찮냐고 물어봐서 조금 민망했다. 비록 빵 몇 개는 버려야 했지만 그래도 제일 높은 매출을 달성한 날이었다. 텅 빈 재료통을 보고 있으니 뿌듯함이 올라왔다.
"가자."
두 번째 수레를 끌고 함께 집으로 향했다. 추운 날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다 보니 지쳐버린 육신이 삐걱거렸다. 그래도 올 때보다 가벼워진 짐들 덕분에 수레를 끄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집으로 가야 했다.
여차저차 모든 짐을 들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 물건들을 정리하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줄기를 맡으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국밥 고?"
J의 밥부터 먹자는 말에 오늘의 승리를 자축하고자 집 근처 마라탕 집에 갔다. 한국에 있을 때 우리는 국밥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국밥을 먹기가 힘들어서 집 근처에 있는 마라탕 집을 우리 둘 만의 국밥집으로 삼기로 했다. 마라탕에 밥도 추가해서 한 그릇 뚝딱! 하려는데 J가 계속 쉬지 않고 장사 얘기를 했다.
“오늘 장사 잘했는데 다음번에는 이런 점을 좀 개선해 보자 블라블라…”
“어, 알겠어”
“그리고 뭐냐 우리 다음 주에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걸 이럴까? 저걸 저럴까? 왈라라라랄.”
밥 한 끼를 그냥 편안하게 먹을 수 없는 걸까?
“아니, 밥 먹으러 와서 계속 일 얘기야. 이게 회식이지 휴식이냐?”
“아니 앞으로 더 잘하면 좋잖아.”
“아니 지금은 좀 쉬고 싶다고. 휴! 식! 밥 먹자 밥!”
“오께이”
J의 열정적인 자세, 피드백, 아이디어 등등 전부 배울 점이긴 했지만 일하고 난 날 저녁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싶었다.
비록 일찍 완판을 하지는 못했지만 결론적으로 최고 매출을 이룬 날이었다. 세 번째 장사를 끝내고 나니 200개가 넘는 물량을 가져가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부자가 되는 날이 멀지 않은 듯했다. 아 인생이 이렇게 매일 핑크빛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막 장사에 재미를 붙인 우리 앞에 그 녀석… 미스 (코) 로나가 다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