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1 가게 (11)

주방을 구하다 (1)

by Linda





두 명이서 한 곳에서 함께 일하다가 각자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니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는 내가 한쪽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으면 J가 반대편에서 즉석 해서 빵을 구웠는데 이제는 혼자서 두 가지를 다 해야 했다.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속도도 잘 나지 않았고 서비스의 질도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빵집들처럼 아침에 빵을 구워서 들고 가기로 했다. 판매용 음식은 집에서 함부로 만들 수 없었기에 상업용으로 인증받은 주방이 필요했다.


"없네."


"그러게. 없어."


우리가 처음 찾아본 건 공유주방이었다. 시드니 같은 대도시에는 공유주방이 꽤 많았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캔버라에서는 그런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시윅이라는 지역에 있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기간이다 보니 문을 닫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주변 지인에게 수소문을 시작했다. 음식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주말에 문을 닫는 가게를 찾아야 했다. 내가 일했던 가게들은 다 주말 장사를 하는 곳이라 주말에 주방을 빌릴 수가 없었다.



"내가 물어볼게."



결국 J가 에이미와 샘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들의 카페는 토요일 오전까지만 장사를 하고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 곳이었고 그 당시 우리가 살던 집에서도 가까웠으며 아버지날 행사도 함께 진행해 봤기 때문에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된대. 100불만 내래."



주방 사용료 100불은 예상한 것보다 더 저렴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고작 일요일 하루를 위해 내기에는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일요일에 마켓 하나를 더 가기 위해 매주 차 렌트비, 주방 렌트비 그리고 추가로 들어간 물품 구입비 등을 합치니 이제 겨우 조금 모은 돈을 다시 다 투자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해야 할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그만두지 않아야 한대."


"뭐?"


주방 사용료 100불이 끝이 아니었다. 카페 주방을 렌트하려면 J가 카페 일을 그만두면 안 된다는 조건이 추가로 붙었다. J는 이제 장사에 집중하려고 일을 그만두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꼭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에이미네 가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제의를 받았기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J는 그동안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했지만, 한국에서 바리스타로 오랜 기간 일했고 상도 몇 개나 받은 인재였다. 그동안 이 카페에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영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호주에 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J는 업무에 필요한 영어를 이미 다 숙지한 후였고 심지어 다른 카페에서 매니저급에 상당하는 연봉을 주고 비자도 줄 테니 오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받은 상태였다.



"뭐야. 그럼 시급이라도 올려줘?"


J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에이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들의 경영방식은 사실 악덕업주에 가까웠다. 우리보다 젊은 20대에 사장이 되어서 직원들과 친구처럼 잘 지내는 건 큰 장점이었으나 가장 기본적인 최저시급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호주에서 *오지잡을 하면 다들 시급을 지킨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좁은 경험에 의하면 적어도 서비스 업에서는 사장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최저시급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쉽게 말하곤 한다. (*오지잡: 한국인이 아닌 호주인/외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



"아니꼬우면 영어공부를 더 해서 오지잡을 구해야지."



처음에는 우리도 우리가 영어를 못해서 외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가게, 즉 오지잡을 구하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오지잡과 한인잡을 가리지 않고 일을 구했는데 어느 곳을 가든 똑같았다. 면접을 볼 때 현금으로 받을 건지 세금을 뗄 건지를 먼저 물어보고 시급은 당연하다는 듯이 최저 이하의 시급을 불렀다. 그나마 제일 시급을 정상에 가깝게 챙겨준 건 외국인 사장이 아닌 젊은 한인 사장이 운영하는 가게들이었다.



이들이 시급을 적게 주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영어를 못하니 시급을 적게 줄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왜 외국인 노동력을 뽑아서 일을 시키는 걸까? 일 인분 몫을 못해낸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안 뽑는 게 맞는데 막상 일터로 나가보면 모두가 영어가 제2 외국어인 외국인들이다.



사실 카페나 식당에서 일하는데 엄청난 수준의 영어실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만약 정말 일을 해내지 못하는 영어실력이라면 안 뽑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은가. 직원으로 뽑았다는 건 이미 제 몫의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데 호주 사람을 제 값을 주고 2명을 쓰느니 영어가 원어민이 아닌 애들을 뽑아서 가스라이팅 한 후에 적은 돈으로 3명을 쓰는 것이었다. 다 알면서도 돈도 인맥도 없이 일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뭐든 뽑아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가서 일을 해야 했다.



"Fair trade chocolate? 여긴 공정거래 초콜릿을 파네요?"


"그래. 아프리카에서 애들 노동착취 한대잖아. 나는 착취하고 이런 거 못 봐."



언젠가 일하던 카페에서 외국인 사장님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공정거래 초콜릿을 판다고 홍보하며 도덕적 우월함을 내뿜던 분이었는데 정작 그 가게에 일하는 직원들 중 그 누구도 최저시급을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착취라고 생각조차 들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도 같았다.



그렇다고 그동안 일했던 가게 사장님들을 생각하면 인격적으로 나를 나쁘게 대하거나 못된 인간이었다는 건 아니다. 개인대 개인의 관계로 봤을 때 상대방을 존중해 주고 오히려 잘 도와주고 챙겨주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시급만큼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낮은 금액으로 후려침을 당했다. 그리고 이런 점을 주변에 토로하면 영어를 못하는 네가 문제라고 비난받는 게 이상했다. 불법이 행해지는 현장에서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당당하고 피해자가 능력이 부족하다며 자책해야 하는 이상한 구조였다.


이때 나는 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동안 아시아인 여성으로 해외에 살면서 차별 때문이 든 오해 때문이 든 불합리한 경험을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무지했기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가 당한 일이 억울한 일이라는 걸 아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쩌면 다음 생에서나 이룰지 모를 허황된 꿈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종종 인권 변호사가 되어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고졸과 지방대생 커플인 우리에게 지금 당장은 주말에 장사를 하는 일 하나도 너무 큰 인생의 과업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다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사장이 된다면 꼭 최저시급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사람까지 고용하면서 장사를 하는 일도 먼 훗날의 일이 될 것만 같았다. 본인 스스로도 제대로 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처지에 누군가에게 정당한 시급을 주네 마네 결정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에이미의 문자를 받고 우리는 선택해야 했다. 연봉을 보장해 주고 비자도 준다고 제안했지만 아직 일해본 적 없는 가게에 미래를 걸고 몇 년간 일해서 비자를 딸 때까지 사업은 뒤로 미루어둘지, 아니면 지금 이곳에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하지만 우리의 꿈이었던 가게를 열지. 두 가지 선택지가 눈앞에 있었지만 답은 분명했다. 어렵게 시작한 장사를 몇 달 해보지도 못한 채 문 닫을 순 없었다.



결국 그들은 헐값으로 J의 노동력을 샀다. 믿을만하고 그만두지도 않을 일꾼을 구한 에이미와 샘은 카페를 반쯤 J에게 맡겨둔 채 자신들을 가게에 나오지도 않기 시작했다.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최저시급을 받지 못해서 나는 손해까지 고려해보면 100불이 훨씬 넘는 금액이 주방에 투자되고 있었다. 고작 하루 주방을 이용하는 것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이제 언제든 빵을 만들수 있었고 이제는 혼자서라도 당장 나가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일요일 마켓이 아닌 다른 장소가 또 있을까? 차도 주방도 구했으니 이제 팔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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