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끝났다. 여전히 낮에는 덥고, 잠깐은 에어컨을 켜두기도 하지만 확실히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가을냄새가 느껴진다. 엄마의 시골집 밤나무에도 밤송이가 갈라져 땅으로 툭툭 떨어지고 있고, 무성하던 가로수에는 하나둘 색이 바랜 잎들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나는 지금 가을의 초입에 서있지만, 아마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나무들은 앙상해질 것이고 눈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나면 허망하게도 또 한 해가 지나갈 테지. 꽤나 이르다고 느끼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한 해의 마무리라는 감각은 이처럼 가을의 초입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내게는 연말이 총 3~4개월인 셈이다.
신기하게도 연말과 연초는 며칠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기분이 확연히 다르다. 연말에는 내내 올해 내가 하지 못한 것과 아쉬운 것만 떠오르는데,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임에도 연초가 되면 꽤나 희망차진다. 또 새해에 하고 싶은 것들과 계획들을 적어 내려 가면서 괜스레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새해계획을 세우지 않게 된 내게는 ‘희망찬 연초’가 빠지고 ‘우울한 연말’만이 남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릴 땐 내가 30대가 되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언니들처럼 화려하고 멋들어지게 연말 파티를 즐기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30대가 되니 안 그래도 좁았던 인간관계는 더 좁아졌고, 화려한 연말파티는커녕 집에서 대충 배달음식을 먹으며 잠들기 일쑤고, 그러다가 깨어났을 뿐인데 갑자기 새해라며 세상이 나만 빼고 들떠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물론 모든 30대가 나와 같진 않을 것이다. 내가 꿈꿨던 모습처럼 화려한 연말파티를 즐기거나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성공한 30대들도 있겠지. 종종 SNS를 통해서 그런 또래들을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여태껏 무엇을 이루면서 살아왔나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나 마나 크게 이룬 것 없이 어영부영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렇게 세상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허망하게 40대를 앞둔 내게도 초라하지만 붙들고 있는 동아줄은 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초라하고 썩은 동아줄로 보일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 누구에게나 그런 것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 사회적이고 경제학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그다지 값어치 없다고 여겨질 것들이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꼭 붙들며 살아가는 몇 가지 말이다. 한마디로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마다 열어보는 비밀상자 같은 것.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바리스타로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마음이 편한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바리스타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도 되지 않은 금액을 보고도 괜찮았다. 더 이상 사내정치나 암투, 직장상사의 갑질 같은 것들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조그만 카페에서도 정치질이 생기고 질투와 암투가 생겨난다는 것은 내 예상에 없던 일이었고, 더불어 바리스타로 살아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10년 전 회사를 다닐 때 받던 월급의 근처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도 점점 괜찮지 않아 졌다. 괜찮았던 마음들이 모두 무너지고 앞으로의 미래가 캄캄하다 느꼈을 때 내가 한 일은 은행의 힘을 빌려 집을 사는 일이었다.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증명을 받으면 대출에 좀 더 혜택이 있었기에 가게 사장님께 해당 서류를 요청했는데, ‘직원들이 죄다 내 가게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집을 마련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직업을 바꿔 바리스타가 된 것을 대략 152번째 후회했고, 내 능력 안에서 끊임없이 재산증식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직장이 변변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할 뿐인데, 그 변변찮은 직장에서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한다니..
내가 집을 사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계기들이 많았지만 그중 하나가 이만한 벌이로 혼자 살려면 부동산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하지만 역시나 벌이가 넉넉지 않아서 비싸고 좋은 집은 무리였고, 내 한 몸 정도만 충분히 품을 수 있는 작고 낡은 소형아파트라면 대출을 더해 사볼 만할 것 같았다. 귀여운 월급으로 생활도 하고 대출금도 갚는 일은 정말 쉽지 않지만 매달 줄어드는 대출금과 살 때보다 아주 조금 더 오른 집값은 나 스스로에게 잘 살고 있다는 위로와 응원을 주기에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밑으로 떨어지는 은행계좌의 숫자들을 세어보며 절망할 때, 친구가 외제차를 뽑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연히 발견한 얼굴도 가물가물한 동창의 sns에서 온갖 명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사진을 봤을 때 나는 가만히 포털사이트로 들어가 우리 집의 부동산 가격을 조회해 본다. 미미하게나마 발생한 시세차익과 남은 대출금을 가늠해 보며 ‘그래도 이 정도면 나 진짜 훌륭하게 잘 살아왔다’고 칭찬해 주는 것이다.
매달 열심히 대출금을 갚아나가며 성실하게 살고 있지만, 내가 바리스타가 된 것을 200번째 후회할 때쯤엔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이직을 고민해 봤지만 마흔을 목전에 둔 바리스타를 선뜻 고용해 줄 카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창업을 하기엔 이미 영혼을 끌어모아 내 집마련을 한 터라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언제까지 이 매장에서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쳤을 때 내 인생에 이제는 정말 대안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자잘한 재주는 많지만, 탁월한 재능은 없는 사람이라 뾰족한 대안은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다면 자잘한 재주 여러 가지를 굴려서 그에 걸맞은 자잘한 수입을 발생시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자잘한 재주는 주로 손재주였다. 조그만 그림을 그리거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심심치 않게 소소한 칭찬을 들어왔다. 핸드폰의 사진첩을 뒤적이면서 일명 ‘감성사진’이라 불릴만한 느낌의 사진들을 골랐고, 포토샵으로 색감조절을 해서 사진엽서를 만들었다. 또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서 조그만 스티커를 만들거나 인물 사진을 기반으로 간단하게 드로잉을 해서 보내주는 상품도 기획해서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했다. 예상했던 데로 대단한 반응이나 수익은 없지만,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주문 알림을 볼 때면 신이 나서 포장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더불어 친구가 역시 부업으로 운영하는 아이폰스냅을 함께 하면서도 한 푼 두 푼 수익이 생겼는데, 그렇게 부업으로 얻은 부수익은 계좌를 따로 개설해 관리하고 있다. 생활비로 사용하면 조금이나마 더 윤택하게 살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 것이다. 차곡차곡 모아 목돈이 되었을 때 좀 더 의미 있게 소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조회해도 여전히 내 삶에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부업계좌를 한번 더 들여다본다. 부동산으로 얻은 미미한 시세차익보다도 더 미미한 금액이지만, 몇 년간 주말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기억들이 고스란히 그 숫자들에 담겨있기 때문에 그 의미들을 생각하면 적어도 내게는 어마어마한 값어치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겐 맘먹으면 하루 만에도 써버릴 수 있는 쌈짓돈일 테지만, 계좌에 모인 숫자들에 0이 하나 더 붙고, 앞자리가 바뀔 때면 부족한 글솜씨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생긴다. 뿌듯함보다는 좀 더 벅차고, 성취감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여하튼 그런 뭉클한 감정이다. 부업으로 얻는 수익들은 귀여운 월급보다도 훨씬 훨씬 더 귀엽고 잘 보이지 않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이 티끌들이 태산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판타지 같은 상상도 해본다. 나의 초라한 동아줄이 먼 훗날 튼튼한 계단이 되어서 지금보다 조금은 높고 공기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상상.
부동산으로 얻은 시세차익도, 부업을 통해 얻은 수익도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 이렇다 할 대안은 되지 못했다. ‘인생의 대안’이라는 대단한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나는 이 초라한 동아줄로 분명히 얻은 것이 있다. 그것은 ‘나는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30대를 막 맞이할 때만 해도 내가 내 소유의 집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월세집에서 전셋집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사업자를 내고 직접 만든 무엇인가를 팔아볼 수 있으리라는 상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나 나는 누군가의 밑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고, 그것들은 한 푼 두 푼 모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지 않으려나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런 깨달음 역시 누군가의 눈에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걸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할 일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사에 쉽게 용기를 내며 살아오지 않았던 내게는 마흔을 눈앞에 두고서야 찾아낸 소중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 초라한 나의 동아줄들이 언젠가 튼튼한 구원의 줄이 되는 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