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엔 정말로 다양한 소리들이 존재한다. 원두를 갈아내는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와 챙그랑챙그랑 하는 찻잔과 식기 부딪히는 소리, 매장을 채우는 음악소리까지. 하지만 카페 안을 채우는 소리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말소리와 웃음소리다. 일을 하다가도 가끔은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귀를 기울이게 될 때도 있고, 일에 집중하고 있다가 손님의 큰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어깨가 크게 들썩일 때도 있다. 물론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도 있지만, 점심때가 가까워지면 음악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공간이 가득 찬다. 가끔은 매장을 채운 모든 손님들이 동시에 크게 웃기 시작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내 귀에서는 피가 날 것만 같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파지기도 하지만 유쾌하고 호탕한 웃음소리들은 대부분 나도 따라서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전 직장동료이자 지금은 친한 언니동생으로 지내고 있는 m은 웃음소리가 정말 재미있다. 평소 목소리에도 약간의 비음이 섞여 있는 데다가 말투도 귀엽고, 발음도 뭔가를 입안에서 굴리는 듯하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해도 m이 하면 좀 더 재미있어진달까. 거기에 특유의 제스처와 표정이 더해지면 재미없는 이야기도 재미있어지는 마법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m의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웃음소리다. 저항 없이 터져 나오는 까르르 소리는 맑고 동그란 무언가가 또르르르 하며 끝도 없이 굴러가는 소리 같다. 듣고 있다 보면 내 뱃속에도 같은 것이 데구르르 굴러가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은 약간 간지럽기까지 해서 일단 웃기 시작하면 그 간지러움에 여간해서는 웃음이 끊어지지가 않는다. 심지어 m은 웃음장벽이 정말로 낮다. 그녀 앞에 있으면 누구라도 ‘내가 남을 웃기는데 소질이 있나?’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정도다. 분명히 m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또르르르 까르르르 하며 배꼽을 잡고 웃었던 얘기였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같은 이야기를 야심 차게 준비해 꺼내놓으면 굉장히 분위기가 싸해지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기도... m의 웃음소리로 한껏 끌어올린 자신감이 와장창 부서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웃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올려줄 수 있다니.. 그래서일까, 그녀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웃음장벽이 낮아 재미있는 순간도, 행복한 순간도 많은 데다가 그런 마음들을 잘 숨기지 못하는 m에게 나는 때때로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인간이라고 놀리곤 하지만 사실은 그런 그녀가 부러울 때가 많다. 자신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면서 함께 있는 사람들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라니. 반면 나의 웃음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속에서만 끅끅 거리다가 끝나는 수준이라 m처럼 까르르르 웃거나 호탕하게 껄껄껄 웃는 사람들을 보면 내 속이 다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미소도 거울을 보면서 자주 연습 하면 자연스럽게 바뀌듯이 웃음소리도 연습하면 호탕해질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크게 떠들지 말고 얌전하게 있어야 한다는 유교적인 교육을 받았던 터라 집 밖에서 큰소리를 내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웃음소리도 작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종종 집에서 혼자 있을 땐 소리를 크게 내보기도 한다. 혼잣말도 크게 하고, 예능프로그램을 보다가 웃긴 장면이 나오면 일부러 배에 힘을 빡 주고 핫하하하하 하면서 복식으로 웃음소리를 내보곤 한다. 언젠가는 내 웃음소리도 듣는 사람의 뱃속을 간질이면서 같이 웃게 만드는 힘을 가질 수 있기를.
나의 이런 조용한 웃음은 어쩌면 엄마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코도 작고 입고 작아서 숨 쉬고 먹고 말하는 모든 일들이 엄마의 작은 코와 입에 가능한가 싶을 때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엄마는 말소리도 조용조용하고 웃음소리도 작다. 평소 웃을 때 입을 가리면서 호호호 소녀처럼 웃는 엄마가 가끔 빵 터질 때가 있는데, 그때면 눈이 새빨개지고, 눈물이 줄줄 흐르곤 한다. 흑흑흑하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나도 큭큭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를 계속 웃겨서 영원히 울게 만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걸까? 상대가 계속 웃었으면 하는 마음, 상대방을 웃기고 싶은 마음.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얼른 달려가서 얘기해 주고는 같이 깔깔 웃고 싶고, 맛있는 걸 찾으면 같이 나눠먹으며 미소 짓고 싶은 것. 그래서 결국엔 상대방의 입에서 행복한 탄성이 나오는 순간을 보고 싶은 것 말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언제나 웃음만 가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아주 소란스럽기도 할 테고, 눈물바다가 되는 일도 종종 벌어지겠지.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두 손 벌려 환영할만한 것은 아닐 텐데, 나는 항상 그런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 두려워 사람을 믿고 또 사랑을 믿는 일을 주저해 왔다. 내게 이미 끝나버린 관계들을 하나둘 톺아보면 행복해서 웃었던 시간보다 소란스럽고 눈물짓던 기억들이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이유일테다. 어째서 끝나버린 관계들은 그런 식으로 남아버리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모든 순간을 웃음으로 채울 수는 없고, 행복에는 그만큼의 고통도 수반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내게도 선택의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행복을 줄 테니 지금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하고 귀한 것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아주 어려운 제안이 오는 순간 말이다. 심지어 행복한 순간마다 그에 걸맞은 포기와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제안이. 지금의 나라면 내가 가진 작고 소소한 행복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거절할 테지만, 그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행복 안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면 나는 다만 고통이 두려워 그것을 포기할 수 있으려나. 아마도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는 내 웃음소리를 위해 기꺼이 어떤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고작 끅끅 거리는 내 웃음소리 하나만을 듣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위해 나도 커다랗고 중요한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토록 보잘것없는 웃음소리라도 많이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하나 둘 떠올리면 하루 중 찾아오는 고되고 힘든 순간들을 잠시나마 잊게 된다. 그렇게 다시금 힘을 얻고 일어나 남은 하루를 또 살아낸다. 내 사람들이 계속 예쁘게 웃어주길 바라며, 또 그 웃음들을 오래오래 보기 위해서 어쩌면 지금의 고통이 있는 것이리라 생각하면 ‘그래, 이까짓 것쯤이야.’하는 무적의 마인드가 생기기도 한다. 백번을 주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는 지금 충분히 많은 사랑을 하고 있고 그 사랑을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