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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다 Oct 16. 2024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좋지

나는 매일 엄마아빠에게 안부전화를 걸고, 두둑한 현금봉투를 자주 드리는 효녀나 살가운 딸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먼저 내게 전화를 하면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꼭 받는 편이다. 대부분 마당에 심은 포도나무와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각종 채소들의 근황, 내가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을 물꽂이해서 좀 가져오라는 이야기, 혹은 나의 범칙금 고지서가 왔다거나 하는 일상 속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셔서 재미있게 듣곤 하지만, 요즘은 종종 울리는 핸드폰에 엄마나 아빠가 뜨면 받기 싫은 마음이 슬그머니 들 때가 있다. 핸드폰 너머에서 엄마아빠가 잔뜩 장전해 둔 말이 무엇일지 대충 짐작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꼭 가야지.”


요즘은 40대에도 많이 결혼을 한다지만, 이미 어른들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어선 나는 현재 부모님의 최대 골칫거리다. 완벽한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도 아니어서 결혼에 있어서는 느긋한 편인데, 역시 그건 내 생각일 뿐. 부모님은 매년 늘어나는 딸내미의 나이와 당신들의 나이를 가늠하며 하루라도 빨리 내게 애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 처음에는 ‘언젠간 짝이 나타나겠죠’라고 상황을 무마하다가 ‘아직 결혼 생각은 없어요’ 였다가, 지금은 ‘전 비혼을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럴 때 날아오는 것은 풀스윙을 거친 매콤한 등짝스매싱. 차라리 부모님에겐 비혼주의자로 비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한 말이었지만, 단호했던 선언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부모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동네방네 짝이 없는 나를 홍보(?)하고 다니는 중이시다. 또 내가 혼자인 지금의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말할 때마다 부모님은 ‘능력이 있으면 혼자 살아도 좋지. 그렇지만 너는 능력이 없잖니?’라는 말로 내 뼈를 바사삭 부숴놓으시기도..


혼자 살아도 괜찮을 정도의 능력은 얼마만큼일까? 

보통의 사람들은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30대 중후반의 여자는 혼자 살만큼의 능력은 갖출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할까?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은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 약간 상대적 박탈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매체에 나오는 비혼여성들은 많은 경우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결혼을 포기하고 일을 선택한 경우 거나, 둘이 함께 벌지 않아도 혼자만으로도 높은 연봉을 받기 때문에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되는지를 나열하며 ‘이런 내가 왜 남자를 만나 손해만 보는 결혼을 해야 하죠?’라는 느낌으로 마무리를 한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위로와 응원도 받고 싶었는데, 그런 책과 영상을 보고 나면 ‘아. 이 정도는 돼야 혼자의 삶을 인정해 주는 건가?’ 싶어서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럼 높은 연봉을 받지도 않고, 내가 하는 일을 너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선택권조차 없을까? 분명 대한민국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다들.. 어디 계시나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 보통 이름 다음에 나이를 물어오곤 한다. 나이를 듣고 나면 또 자연스럽게 결혼은 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혼도 안 했고, 애인도 없다고 대답하면 당연히 내가 돈을 아주 잘 버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 능력 있으면 요즘엔 결혼 안 하는 것도 좋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카페 사장님이구나!’라고 답이 돌아오는데, 이쯤 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카페 사장은 아니고요. 누구보다 귀여운 월급을 받는 바리스타인데요. 그렇다고 커피에 대해 어마어마한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그럭저럭 먹고 살만큼만 벌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이젠 나이가 들어서 이직도 어렵네요. 그런 저는 능력이 없으니 혼자 사는 건 꿈도 꾸면 안 되는 걸까요? 핫하하..


사실 예전의 나도 삼십 대 중반이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마음 하나는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하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결혼을 하니까 조급해서 하는 것도 싫고, 나는 별로 안 좋아해도 상대방이 나를 너무 좋아해 주니까 하는 것도, 그 반대의 경우도 싫다. 시간이 흘러서 내가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함께 남은 평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걸로 된다.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저 나 하나만을 사랑하며 살면 되고. 물론 이제는 그런 운명적인 사람이 내 인생에 나타날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긴 하지만, 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것이 인생 아닐까. 


누군가의 눈에는 내 삶이 보잘것없고 혼자살만 한 능력도 안 되는 삶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내 삶을 꽤나 소중히 생각하는 편이다. 때때로 지겹고, 고여있어 곧 썩을 것도 같고, 하는 것마다 잘 안 되는 것 같아 우울에 빠질 때도 종종 있지만, 언제나 나는 그런 순간들을 잘 견뎌왔고 작은 돌파구들을 찾으면서 살아왔다. 그런 내 삶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혼자 살아도 좋을만한 능력은 지금의 내게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는 혼자 살아도 좋을만한 능력은 그 기준이 조금 다르니 괜찮다.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고 외로운 시간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빈 부분을 채우며 잘 보내는 능력이 그것이다. 꼭 자기계발을 한다거나,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정성스러운 요리를 해서 먹이는 일이나 내 마음을 잘 돌보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의 시간을 잘 꾸려나가는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도 잘 보낼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혼자서도, 둘이서도, 혹은 그 이상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나를 잘 먹이고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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