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달고 맵고 짠맛

by 린다


‘카피캣 식당’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의 소울푸드로 그 사람의 인생을 훔친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갖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소설이었다. 인생을 훔치고 싶은 사람의 소울푸드, 그러니까 죽기 전에 먹고 싶은 딱 한 가지의 음식을 알아내서 악마에게 알려주면 악마가 그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뭐 누가 내 인생을 훔치고 싶어 하지야 않겠지만은 그래도 내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면 잘 차려진 백반이라고 큰 고민 없이 말할 것 같다. 자그마한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어 나오는 된장찌개에 따뜻하고 찰진 밥 한 공기, 그리고 달걀말이와 멸치볶음, 김치, 김 같은 각종 밑반찬들! 뼛속까지 한식파인 내가 꼽은 나의 소울푸드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 한구석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좋다며! 힘들 땐 내가 생각난다며? 근데 결국 죽기 전에 찾는 건 다른 애니?’


라고 설웁게 눈물 어린 호소를 하는 것은 바로 떡볶이다. 맞아, 떡볶이도 사실 소울푸드가 아니라고 할 순 없지. 지치고 힘든 날이면 어김없이 달달하고 매콤한 소스를 잔뜩 머금은 떡볶이가 생각나니 말이다. 보통 직장에서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면, 퇴근 후 소주나 맥주를 들이켜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예전이었다면 나 역시 그랬겠지만, 최근 술을 많이 줄이고 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엔 그렇게 떡볶이가 당긴다. 그래서 원래도 애정해 마지않는 음식이었던 떡볶이를 최근 들어 더 자주 먹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떡볶이가 더 당기는 날은 토요일이다. 토요일엔 본업은 쉬지만 사이드프로젝트로 아이폰 웨딩스냅 일을 하고 있는데, 스냅촬영을 다녀온 날에는 일주일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포함해 주말 서브잡의 압박까지 더해져 평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떡볶이가 당긴다. 하루종일 자그마한 핸드폰 화면으로 신랑신부를 담고, 수백 장의 사진들을 핸드폰으로만 편집하다 보니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에 눈길을 돌리면 어지럼증이 느껴질 지경이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울렁이는 속과 팽글거리는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는 역시 떡볶이만 한 것이 없다.


맵지 않고 달달한 떡볶이도 정말 좋지만, 나는 매콤한 음식을 좋아해서 적당히 매운맛이 있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위장이 튼튼하던 20대에는 매운맛을 전투적으로 먹던 시절도 있었다. 점점 더 매운맛을 찾아가면서 스트레스를 풀다가 타들어가는 느낌으로 내 위의 위치를 가늠해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온갖 영양제와 운동으로 연명하는 30대의 삶이라 극도로 매운 음식은 많이 줄였지만, 그럼에도 먹으면 몸에 살짝 훈기를 돌게 하는 매콤함은 포기할 수가 없다. 살짝 혀가 얼얼하다고 느껴지면 쿨피스를 한 컵 마시거나 우유를 마시고, 조금 더 스트레스가 심하다 싶으면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는 것도 정말 꿀맛이다.


떡볶이가 지금 막 만들어져 나와서 아직 뜨거울 때는 호호 불어가며 쫄깃한 떡에 잘 베어든 소스와의 조화에 황홀함을 느끼지만 떡볶이가 차츰 식어갈 때쯤엔 확실히 짠맛이 많이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짠 음식을 허겁지겁 먹었나 싶어서 정신 차리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하지만 사실 그게 무슨 소용이려나. 이미 내 몸의 나트륨농도는 한껏 올랐고, 거기에 물을 넣으면 혈압만 오를 뿐. 그래서 종종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 날엔 너무 짜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 역시 부질없긴 하다.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면 당최 사 먹는 떡볶이 맛의 발톱만큼도 나오지 않아서 양념을 조금씩 조금씩 더 넣다가 결국 짜디짠 떡볶이가 되니 말이다. 그렇게 식은 떡볶이에서 나트륨의 강한 기운을 느낄 때면 이제 당분간 떡볶이는 좀 자제하고 담백하고 싱거운 음식으로 식단을 해야겠다 생각하지만, 어김없이 토요일이 되면 떡볶이의 달고 맵고 짠 붉은 기운을 거부하기가 힘들다.


떡볶이 러버들의 영원한 숙제는 아마 쌀떡과 밀떡 중 어떤 떡볶이가 더 맛있느냐일 것이다. 그것은 어린이에게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좋냐고 묻는 것과 비슷한 스트레스를 준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쫄깃한 쌀떡과 말랑하고 소스가 잘 베어드는 밀떡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를 선택하는 일은 너무나 큰 괴로움을 주는 일이지만 그래도 눈물을 머금고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쌀떡을 선택할 것이다. (밀떡파들의 야유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쌀떡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특유의 쫀쫀한 식감 때문이지만, 그만큼이나 쉽게 불지 않는다는 점도 큰 이유다. 요즘은 떡볶이를 주로 배달앱으로 주문해 먹는데 최소주문비용을 채우려다 보니 혼자 먹을 것임에도 언제나 산더미만큼 주문을 해야 한다. 잘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내일 또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밀떡볶이를 다음날 데워먹으면 치아가 떡에 들어가기도 전에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그에 비해 쌀떡볶이는 다음날 데워먹어도 어느 정도 쫄깃함이 유지되고 오히려 하루동안 소스가 잘 베어 들어 여전히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그래도 밀떡볶이의 탱글함을 외면할 수 없어서 최근엔 밀떡과 쌀떡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떡볶이집을 찾아 골고루 반반씩 주문해 먹는 즐거운 떡볶이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동네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떡볶이집이 있었다. 또 마침 일터도 근처라 퇴근길에 들러 1인분의 떡볶이를 포장해 집으로 돌아와 맛있게 먹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쓰레기로 늘어나는 포장용기에 죄책감이 늘어갔다. 결국엔 집에서 알맞은 용기를 찾아서 가방에 잘 들고 출근하고는 퇴근길에 준비한 용기에 떡볶이를 포장하기로 했다. 처음엔 반찬통을 들고 나타난 나를 놀라운 눈으로 보시던 떡볶이집 사장님들도 어느덧 내가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용기를 받을 준비를 하셨고, 내가 깜빡하고 용기를 놓고 온 날에는 왜 오늘은 반찬통을 안 가져왔느냐며 내심 서운한 표정도 지으시곤 했다. 항상 환하게 웃는 얼굴로 ‘오늘도 같은 메뉴죠?’ 하시며 반겨주시던 사장님들의 떡볶이를 이사한 후에는 자주 갈 수가 없어서 배달앱으로 종종 주문해 먹었다. 그러다 얼마 전 그 근처에 볼일이 생겨 갔다가 오랜만에 떡볶이집에 들러 떡볶이를 포장하기로 했다. 예전과는 달리 키오스크를 이용해 주문을 하는 방식이 되어서 주문할 때 사장님들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주문한 떡볶이가 나오고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어머! 그 커트머리 손님이네!’ 하시며 한눈에 나를 알아봐 주셨다. 머리가 짧았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머리도 무척 많이 길었고, 2년 정도의 세월이 흘러 나이도 많이 먹어 늙었는데 한눈에 알아봐 주셔서 참 감사했다. 사장님들은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떡꼬치도 서비스로 넣어주셨고, 나는 이사를 했지만 여전히 배달앱으로 주문해서 잘 먹고 있노라고 소식을 전해드렸다.


따뜻한 떡볶이를 품에 안고 가게를 나서며 오늘 먹을 떡볶이엔 달고 맵고 짠맛뿐만 아니라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까지 느껴볼 수 있겠구나 싶어 설렜다. 여전히 내 소울푸드로는 잘 차려진 백반을 포기하기 힘들지만, 밥상 위 반찬 접시들 중 가장 큰 접시 하나엔 달고 맵고 짠 떡볶이가 한가득 담겨있는 걸로 어떻게 마음을 좀 풀어보지 않겠느냐고 서운해하는 떡볶이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힘들고 지칠 때 힘이 되어줘서 정말로 고맙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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