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칼한 목과 차가운 코끝으로 아침에 눈을 뜨는 지금은 겨울이다. 해가 짧아 유난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든 겨울엔 눈꺼풀도 무겁고, 따뜻한 침대 안에서 야들야들하게 녹은 몸을 이불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힘들다. 가까스로 일어나 씻고, 출근을 위해 두툼한 스웨터를 꺼내 챙겨 입을 때면 복슬복슬한 털스웨터의 냄새가 느껴진다. 이 스웨터의 냄새는 오로지 이 시기에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겨울의 냄새다. 코를 박고 스웨터 냄새를 맡다가 정신을 차리고 부랴부랴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면 또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와 국 끓이는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과 출근하는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따뜻한 밥 한 숟갈이라도 먹여서 보내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냄새다. 이런 냄새는 ‘냄새’라는 단어 말고 좀 더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진다. ‘향기’ 같은 단어로.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우리 집에서는 아침에 엄마가 제일 먼저 일어났다. 엄마가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온 가족의 밥상을 준비한 것은 계절에 상관없이 아침이면 매일 하던 일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유독 따뜻한 국냄새가 진하게 느껴지는 건 겨울이었다. 그래서 겨울 아침을 떠올리면 차가운 코끝으로 맡아지는 구수한 된장국 향기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계절은 재밌게도 특유의 냄새로 기억된다. 봄에는 꽃향기, 여름엔 수박과 참외의 달달한 향, 가을엔 축축하면서도 메마른 낙엽냄새, 겨울에는 스웨터 냄새나 된장국 냄새 같은 것처럼 계절을 대표하는 과일이나 물질에서 느껴지는 냄새는 정말 확실하게 계절을 알게 해 준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불어오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냄새마저도 달리 느껴진다는 점이다.
내 승모근을 바짝 끌어올리는 겨울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공기에서 겨울의 냄새를 느꼈다. 무슨 냄새라고 하면 좋을까? 한 번도 맡아본 적은 없지만 빙하의 냄새 같았다고 하면 좋으려나. 차갑고 날카롭지만 시원한 냄새. 그 냄새를 맡는 순간 ‘드디어 춥고 힘든 계절이 오는구나’ 싶었다. 동짓날이 지나고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요즘엔 공기에서 언제쯤 봄냄새가 불어올지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한두 달은 더 기다려야겠지만, 마치 환영처럼 먼지 같은 냄새, 혹은 겨울이 되고 처음으로 전원을 켜본 온풍기바람에서 맡아본 듯한 푹푹한 냄새가 슬쩍 코끝을 스쳐가는 기분이 든다. 2월 말쯤 공기에서 그런 봄의 기운이 담긴 냄새를 맡으며 집을 나서면 그날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김없이 이런 얘기를 한다.
‘날씨가 푹해졌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봄의 설렘이 가득 담겨있고 눈빛도 조금 더 초롱초롱 해진 것만 같다.
세상에 태어나서 각 계절을 서른 번이 넘게 겪어왔는데도 매 계절이 하나도 익숙하지가 않다. 겨울이 찾아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봄은 항상 손꼽아 기다리지만 찬란한 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간다. 여름은 정말 지독하지만 지나고 떠올리면 이상하게 아련하고, 가을은 화려한 만큼이나 또 쓸쓸하고 스산하다. 자연이 이렇게 부지런하게 움직이는데, 자연에 비하면 먼지정도밖에 안 되는 내가 감히 매일 반복되는 삶이 지루하고 지겹다고 말할 자격이 있나 싶다. 그래서 몸이나 마음이 힘들 때면 자꾸 자연을 찾아가고 싶어지는 것 같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고 오감으로 느끼는 일은 새로운 마음가짐을 선물해 주니까. 봄이 되었으니 다시 시작해 보자고, 여름이 되었으니 몸보신을 하자고, 가을이 되었으니 햇과일과 햇곡식을 먹어보자고, 겨울이 다가오니 겨울나기를 위해 준비하자고. 어쩌면 사람들이 봄에 꽃구경을 가고, 가을에 단풍구경을 하는 일은 단순이 계절을 핑계로 놀자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모습을 오감으로 느끼며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2월의 마지막 날이다.
경험해 온 12월의 마지막 날들을 떠올려보면, 이맘때쯤엔 매우 추워서 바지 속에 내복을 겹쳐 입어도 집에 와보면 허벅지가 빨갛게 얼어있곤 했다. 그런데 유난히도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직 바지 속에 내복도 챙겨 입지 않았고, 겨울이 오기 전 호기롭게 준비해 둔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한 장갑도 챙겨나갈 일이 많지 않은 걸 보니 말이다. 어제는 퇴근할 때 공기에서 2월 말에 맡아볼 수 있는 그 냄새, 봄기운의 냄새가 슬쩍 느껴지기도 했다. 순간 ‘이제 곧 봄이 오려나. 너무 좋군!’이라고 생각했다가 아직 올해가 채 끝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좋은 것이 아닌데.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서 그런지 어린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저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봄이 오는 냄새를 이른 겨울에 맡고, 어쩌면 가을의 냄새는 영영 맡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세상이 올 수도 있을까. 상상하니 두렵고, 많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