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게 굴지 말자고

by 린다


많은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의 어린 시절도 그리 풍족하진 못했다. 막내 남동생이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아빠의 벌이로만 다섯 식구가 살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빠듯하지 않았을까 싶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벌어보려고 엄마는 집에서 구슬꿰기 같은 부업을 틈틈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우리 엄마는 정말 짠순이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아기시절에도 엄마는 아마 짠순이었을 것이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은 엄마가 시장에서 조심스레 에누리를 시도하는 모습, 양손 가득 장을 보고도 집에 갈 땐 절대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갔던 모습들도 다 커서 생각해 보니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는 생각이었겠지. 아빠는 내가 태어나면서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담배값은 분유값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로 지금껏 한 번도 아빠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내가 세상에 나온 그때부터 나의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느 아저씨들에게서 쉽게 맡아지는 퀴퀴한 담배냄새가 우리 아빠에게선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좋다.


풍족하지만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그리고 짠순이 엄마를 보고 자란 덕에 사실 나 역시 조금 짠순이다. 어릴 때 나는 내가 커서 돈을 아주 많이 벌 줄 알았는데, 현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월급을 받으면 대출금을 갚고, 공과금을 내고, 그 밖의 각종 정기지출과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면 저축을 할만한 돈도 사실 빠듯하기에 그 사이에 내가 사치를 부릴 여유는 끼워 넣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다행인 건 내가 비싼 음식이나 비싼 옷, 명품 가방 이런 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어릴 때부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봤어야 좋은 게 좋은 줄 알지, 사실은 관심이 없다기 보단 가져보지 않아서 갖고 싶지 않아 졌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내가 30대 초쯤에 지인들이 대거 결혼을 하는 사태(?)가 있었다. 매달 조금씩 아껴서 여윳돈을 만들어두면 그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청첩장이 날아들었다. 청첩장을 받아 들면 머릿속에 계산기가 떴다.

‘내가 이 사람과 얼마나 친하지?’

30대 초의 그즈음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쉬다가 바리스타 일을 막 시작한 시기였다. 급여는 회사를 다닐 때의 절반도 되지 않았는데 그래도 ‘회사’로는 이직하기가 싫었다. 첫 직장의 조직문화가 너무 저질이어서 회사라는 집단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었다. 진상손님과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한이 있어도 진상손님 같은 사람을 매일매일 봐야 하는 회사는 못 가겠다 싶었다. 문제는 너무나 귀엽고 앙증맞은 급여였다. 청첩장을 받으면 내 귀여운 급여에서 이거 빼고 저거 빼고 남는 돈과 청첩장을 준 사람과의 관계를 저울질하면서 이 정도의 돈을 낼 만큼 우리 사이의 각별함이 존재하는지 따져봤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봐도 참 치사한 사고였다. 친절함과 다정함은 마음의 여유가 아니라 경제적 여유에서 오는 것이었던가?


지인들의 결혼식릴레이가 끝나니 돌잔치릴레이가 펼쳐졌고, 그즈음 나보다 더 치사하고 계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사사건건 뭘 저렇게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재보고 따지는지, 심지어는 상대방의 학력과 자신의 학력까지 비교해 가며 본인이 지금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넘어 우월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만 듣고 있어도 피곤이 몰려왔다. 단순히 피곤함만 몰려온 것은 아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입 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 (어쩌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냈는지도) 그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은 나도 머릿속으로 언젠가 굴려보던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자 피곤함보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 왜 이렇게 인색하고 치사하게 살지? 누가 결혼한다고 축의금 몇백만 원 내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진심을 담아 축하해 줄 수는 없었나?


사실 나는 마음도 짜다. 이전에 만나던 연인들에게서 연애초기에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들어본 말은 ‘나를 좋아하기는 해?’였다. 열렬한 사랑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도 당연히 좋아하니까 사귀기로 했겠지, 뭘 저런 걸 물어보나 싶었다. 그런 일이 거듭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애정이나 관심에 대한 표현이 능숙하지 못하다는 걸, 심지어 굉장히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에 소금기를 가득 채우고 살던 20대 내내 나는 주로 ‘냉혈인간’이나 ‘시니컬하다’ 라거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애’ 같은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그래도 20대의 어린 시절엔 그런 내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이성들이 꽤 있었지만, 그거야 어릴 때 얘기지, 좀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 그러고 살다 간 몰매 맞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30대에 접어들며 마음속 소금기를 많이 걷어냈다. 짜게 굴고 싶지 않아 졌다. 나만큼이나 짜디짠 염전 같은 사람들을 거듭 만나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슬퍼할 일이 있으면 기꺼이 함께 슬픔을 나눠지는 것. 치사하게 그 마음을 나중에 돌려받을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고,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진심을 가득 채워 전하는 것. 이제는 그런 마음만 가지며 살고 싶어졌다.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진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짜게 구는 모습들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저만큼 가졌으면 마음이 더 넓어질 것 같은데..’ 하고 말이다.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보다,라는 생각도. ‘돈이 있는 놈’, ‘명예가 있는 놈’이 되기 이전에 ‘마음의 깊이가 있는 놈’, ‘따뜻한 진심이 있는 놈’이 되고 싶다. 그래서 ‘있는 놈이 더하다’는 저 말을 다른 의미로 갖고 싶다. 마음이 깊은 사람들이야말로 주변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거라고, 진심을 가진 다정함이 정말로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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