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은 사람

by 린다

연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새해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 또는 올해는 금전적으로나 애정적인 부분에서 좋은 기운이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점사를 보러 가거나 하는 일들이다. 나도 언젠가 우연한 기회로 연달아 운세와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지하상가에서 재미로 보는 타로점을 보기도 했고,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 하는 신점타로도 봤고, 명리학을 오래 공부하신 분께 사주를 보기도 했다. 결과는 조금씩 다 달랐지만, 전체적인 몇 가지는 비슷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운이 없고 힘든 시기는 십대였다는 것이었다.

십대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니. 이미 지나가버려서 가장 힘든 시기가 앞으로는 없다는 것에 안도해야 하는 건지, 가장 즐겁고 행복해야 할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니 슬퍼해야 하는 건지 영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30대까지 살면서 나는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지지리도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내 인생은 딱 내가 하는 만큼만 나오는 인생이구나’라고 여겼다. 그리 탄탄대로를 밟으며 살아오진 못했지만, 남들만큼 적당히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그런데 십대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니, 어쩌면 인생의 초반부터 겪어버린 고됨이 나를 지금 여기로 데려온 걸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지금의 내 삶이 보잘것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꿰어온 것이 아닌가, 여태껏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이 정도만 노력해서 이 정도로만 사는 거라고 생각해 온 것인가, 하는 망상들이 쉬지 않고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금방 그런 못난 생각에서 벗어났지만, 가끔 운이 지나치게 좋은 사람들을 보면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타인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고, 심지어 폭력까지 쓰는데도 여전히 많은 돈을 벌며, 그 돈을 무기로 또 누군가를 열심히도 괴롭히는 사람을 볼 때, 능력이 충분하지 않음에도 하는 일마다 손해 보는 일 없이 잘 풀리는 사람을 볼 때, 남에게 일을 다 떠맡기고도 결국 성과는 자신이 가져가는 사람을 볼 때. 그런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만사에 억울해한다는 점이다. 내가 볼 땐 지나치게 운이 잘 따라주는 것 같은데,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게 그들만큼만 운이 따라준다면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은 왜 항상 억울해하고 불평불만인 걸까.


지난해 추석연휴 때 본가에 갔다가 아빠와 함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서울에서 오는 동생을 픽업하러 터미널에 가는 김에 추석 때 필요한 장도 함께 볼 요량으로 아빠와 집을 나섰는데, 시간계산에 실패해서 한 시간가량 시간이 남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거 오랜만에 아빠와 단둘이 오붓하게 커피타임을 즐겨보자 하며 들어간 터미널 앞 스타벅스였다.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 기준에 어떤 사람은 인생이 잘 풀릴만한 능력도, 인성도 아닌데 꾸준히 잘 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억울하다고, 그래서 종종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듣고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도 60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고, 나와 똑같이 억울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어떤 스님의 책에서 그나마 납득할만한 글을 보았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전생과 다음생이 있는데, 이번생에 덕을 잘 쌓으면 다음생에 그만한 복과 운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일이 잘 될만한 능력도 인성도 충분치 않아 보이는데 이상하리만큼 일이 잘 되는 사람들은 현생이 아닌 전생의 덕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하니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능력 있고 인성이 좋아서 잘 되는 게 아니었어!’ 하는 깨우침이나 납득보다는 이번생에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전생의 내가 덕을 쌓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인가? 기억도 하지 못할 다음생을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덕을 쌓으며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몇몇의 얼굴이 스쳐 지났다. 직원들을 못살게 괴롭히고, 폭언하고, 폭력을 써도 돈을 쥐어주며 입막음을 하던 사람이나 죄를 짓고도 처벌하나 받지 않고 죽는 날까지 호의호식하며 살았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전생에 나라를 구할 정도로 덕을 쌓았으니 ‘그렇구나’ 하고 넘기고 싶은 마음은 한 줌도 들지가 않았다. 아빠는 내 혼란스러운 눈빛을 읽었는지 껄껄 웃었다. 그리 진지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고, 그저 억울한 마음이 들 때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면 된다고, 그리고 덕이 아닌 죄를 지었다면 언젠가는 꼭 되돌려 받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그게 현생과 내생 사이만큼의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말이다.


지금의 나의 삶은 어쩌면 전생의 죄에 대한 벌일까? 아니면 전생에 쌓은 덕으로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짐작하건대 그리 큰 죄를 짓지도, 그리 큰 덕을 쌓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내 인생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열심히 남은 빚을 갚아야 하지만 하루가 끝나면 돌아가 쉴 집이 있고, 아파트 광고에 나올 만큼 화목한 가족은 아니지만 그래서 종종 분위기가 얼어붙긴 해도 다정히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가족이 있으니까. 많지는 않아도 언제나 내 인생에 응원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다행스럽고 또 안도가 되는 운 좋은 포인트들을 찾아서 모아보면 언젠가는 내가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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