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어어어어얼얼화아아아수우우모오옥금퇼.
예전에 어딘가에서 이 글자를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다.
분명히 시간은 어느 요일이나 똑같이 흘러갈 텐데 왜 월요일은 끝도 없이 길고, 일요일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만 같을까. 지금의 나는 주말에도 출근을 하거나, 출근을 하지 않아도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저 글자처럼 월요일만 한없이 길거나 주말이 섬광처럼 지나간다는 느낌은 예전에 비해 덜하지만, 여전히 휴무가 내게 오는 길은 길기만 하고, 손꼽아 기다린 휴무는 찰나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주 5일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토요일에도 짧게 학교를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건 싫었지만, 오전 중으로 수업이 끝나고 아직은 해가 높게 떠있을 때 집으로 가는 기분은 꽤 좋았다. 신나게 놀 수 있는 오늘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토요일 한낮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평소와는 다른 시공간이 주는 설렘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면, 평일 내내 제일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가라고 나를 깨우던 엄마아빠는 창으로 들어오는 해를 거부하듯 아주 긴 늦잠을 자곤 했다. 나 역시 잠이 많은 편이라 일요일 아침의 늦잠을 포기하긴 쉽지 않았지만, 이 왕성한 수면욕을 종종 이기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일요일 아침에 방영되는 만화영화였다. 잠을 이기지 못해 매주 꼬박꼬박 챙겨보진 못했는데, 일찍 눈이 떠졌을 때나 동생들이 먼저 일어나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잠이 깨서 슬그머니 거실로 나가 티브이 앞에 앉곤 했다. 디즈니 캐릭터들이 나오거나 둘리가 나올 때도 있었고, 마법소녀들이 나오기도 했던 다채로운 만화영화를 보면서 ‘어른들은 왜 만화를 재미없어할까?’하는 의문을 가져보기도 했다. 엄마는 원래 어른이 되면 만화가 재미없어진다고 했지만, 만화영화가 주는 색감과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어른이 되어도 나는 절대 만화가 싫어지진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곤 했었다. 물론 중학생이 되고부터 만화는 잘 보지 않게 되었고, 어른이 되자 꿈과 희망보다는 로맨스나 스릴러를 보여주는 드라마에 더 빠지게 되었지만.
동생들과 함께 앉아 만화영화를 한창 보고 있으면 엄마 아빠가 일어나서 늦은 아침을 함께 먹었다. 엄마가 설거지하는 동안 아빠는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을 보거나 기타를 치기 시작했고, 설거지가 끝나면 엄마는 가차 없이 온 집안의 창문을 다 열었다. 주말 대청소가 시작된 것이다. 아마 평일에도 아빠가 회사에 가고 우리들이 학교에 가면 엄마는 매일같이 창문을 열고 청소를 했겠지만, 일요일에 하는 청소는 내겐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대’ 청소였다. 일요일의 청소는 한겨울에도 어김없이 진행됐고, 창문을 열자마자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칼바람에 나는 서둘러 이불속에 숨기 바빴다. 엄마아빠는 내가 꼭 쥐고 있던 이불을 빼앗아 겨울 공기 속에 탁탁 털었고, 순식간에 이불을 빼앗긴 나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옷을 챙겨 입고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도 걸레질을 하면서 움직이다 보면 몸에서 열이나 추위는 금세 잊곤 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추위를 헤치며 청소를 시작하는 것 자체는 정말 힘겨웠다.
청소를 마치면 또 금방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일요일 점심 메뉴는 주로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떡라면이거나 여름에 더욱 맛있는 비빔국수 같은 것들이었다. 다섯 식구가 둘러앉아 후루룩 면치는 소리를 주고받고, 참기름으로 반질반질해진 비빔국수를 슥슥 섞어 비비는 소리는 아직도 떠올리기만 하면 군침이 돈다. 마치 고된 노동 후에 먹는 새참 같기도 했던 일요일 청소 후의 점심은 그렇게나 달고 맛있었다. 일요일 저녁메뉴 역시 기대할만한 일이었다. 일주일 내내 식구들을 위한 밥을 해냈던 엄마가 푸념처럼 ‘오늘은 밖에서 먹자’라고 하면 아빠는 별말 없이 외출 준비를 했고, 저녁을 먹기 전에 마트에 들러 일주일치 식재료를 사는 일도 어린 나에겐 색다른 이벤트 같았다. 마트엔 갖고 싶은 것들과 신기한 것들이 많았고, 시식코너에서 떡갈비와 만두를 맛보는 것도 좋았다. 문구완구 코너에서 서성거리다가 갖고 싶은 학용품이나 팬시제품을 들고 엄마에게 슬쩍 눈짓을 보내면 가끔씩 카트 안에 넣기를 허락해주기도 했으니, 일요일저녁에 마트에 가는 것은 내게 흔치 않은 득템의 기회였던 것이다. 마트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의 차에서 우리를 따라오는 달님을 보고 있으면 그제야 일주일과 일요일이 끝이 났다는 생각과 내일이면 또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가는구나, 하는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고, 친구들과 만나 조잘조잘 떠들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유년시절의 주말이 포근하고, 달고, 때로는 설레는 시간들이었다면 기숙사에 살던 대학생 때의 주말은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지는 경험을 했다.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느라 기숙사를 배정받아 생활하던 내게 주말이란 기숙사가 텅 비어버리는 시간이었다. 매일 하던 점호도 없고, 시끌벅적하던 복도도 조용하고, 티브이 앞에 앉아 조잘대던 여자애들도 없어진 고요하고 낯선 적막함에 휩싸여 토요일 아침을 시작했다. 그때는 갑자기 불어난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서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거나 열두 시간씩 자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주말에도 기숙사 식당에선 밥이 나왔지만 건물 밖으로 나가 식당으로 가는 일은 너무나 귀찮았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머리라도 빗고 눈곱이라도 떼고 나가야 하는데, 그 귀찮음을 이기지 못해 차라리 굶기를 선택한 적이 많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침대에서 주구장창 노트북만 끼고 시간을 보내다가 월요일엔 멀쩡히 옷을 입고 수업을 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어나 터덜터덜 빨래를 하러 방을 나섰다. 기숙사 안에는 탈수기는 있었지만 세탁기는 없어서 항상 그때그때 손빨래를 해야 했는데, 그 시절의 내게 빨래하는 시간은 유일한 사색의 시간과도 같았다. 내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제공되는 이미지와 소리와 감상에 지배당했던 뇌가 드디어 자발적인 사고를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그마저도 빨래가 끝나면 다시 호다닥 이불 속에 들어가 다시 제공되는 감각의 노예가 되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에 뭐라도 자기계발을 하거나 생산적인 일을 했다면, 적어도 지금만큼만 열심히 살았다면 뭐가 됐어도 됐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 그 시간으로 달려가서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내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고 싶다. 그리고 귀에다가 섬뜩한 언어를 사용해서 속삭여주고 싶다. 계속 이렇게 살다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금의 내가 된다면서 말이다. 때때로 그 길고 지루한 시간들을 견디지 못하고 본가에 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본가에 가는 길은 기차를 한번 갈아타야 하고, 그마저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환승역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그 긴 여정과 여비를 들여 매주 본가에 다녀오는 일은 가난한 대학생에겐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절의 주말은 기숙사 안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다가 해가 질 때쯤이 되어서야 슬그머니 일어나 기숙사 밖으로 나가서는 본가에 가지 않고 남은이들과 만나 가장 저렴한 맥주집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며 술을 마셨고, 새벽 5시에 기숙사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긴긴밤을 보냈다. 그때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주말들이 참으로 쓸모없고 피폐하기만 하다고. 그저 이렇게 시간을 죽이며 눈앞에 닥친 당장의 욕구만을 채우며 살아도 훗날 내가 제대로 된 사회인이 되긴 할까, 하고. 그렇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걱정만 했을 뿐 그 이상은 없었다.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것 하나를 붙잡고 마음껏 음울해하고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 채로 살았다. 미래는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 믿고. 큰맘 먹고 주말에 본가에 가는 날 기차역이나 터미널에 가보면 모두들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차 시간이 마땅치 않아서 이른 첫차를 타던 날에도 차가 텅텅 비어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또 어딘가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주하고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묘했다. 나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는 내가 참 별로라고 욕하며 정해진 기차 좌석에 몸을 구겨 넣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렇게 대충 살았던 벌이었을까? 혹은 반성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 바로 취업해서 더 이상 돈이 드는 사람이기보단 돈을 버는 사람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처럼 게으르게만 주말을 보낼 수가 없게 되었다. 매일 야근에 회식을 하고, 야근과 회식이 없는 날엔 회사 친구들과 따로 또 술을 마시는 바람에 내게 ‘주말아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쥐 뜯고, 울렁이는 속을 쓰다듬으며 보내는 고통의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쉬는 주말에도 연락하고 일을 시키는 것이 아주 당연시되던 사풍 덕에 알코올에 절여진 몸뚱이를 간신히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은 적도 많았다. 주말에도 출근을 종종 했고, 심지어 고속도로를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운전 중이라고 해도 사장님이나 전무님이 톡을 보내면 무조건 5분 안에 답을 보내야 했던 날카로운 첫 직장의 기억은 성인 여자의 몸무게를 38킬로까지 떨어지게 만들었다. 공식적으로는 주 5일 근무를 하는 꽤 번듯하고 비전이 있는 화장품 회사의 대리였지만, 실상은 지독한 갑질과 언어폭력,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속 빈 강정 같은 삶이었다. 나는 그런 내 인생이 지난날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벌’이라고 느꼈고,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여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나의 괴로움과 들인 시간과 고통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겠지만, 남들이 볼 땐 그렇게 적지 않은 월급이 그래도 매달 통장에 찍히니까. 어디 가서 부끄럽지 않게 내밀 수 있는 명함을 주고, 나만 참으면 내 부모님이 모임에 나가 자식자랑 배틀을 할 때 일등은 아니어도 꼴찌는 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작 주말에 본가에 가서 엄마아빠의 얼굴을 보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바리스타를 하는 지금 역시 어린 시절과 같았던 평화로운 주말이 온전히 주어지는 날은 흔치 않다. 대학생시절 마음껏 게으르게 살았고, 그 벌로 혹독한 회사생활을 했으니 이제는 내 인생을 내 의지로 잘 꾸려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게 소중한 것들을 더 잘 지키고자 하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벌여두었기 때문이다. 요즘의 주말엔 본업인 바리스타를 하면서 카페데이트를 하는 커플들이나 가족들의 커피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결혼식장에서 아름다운 신랑신부를 사진으로 담아주기도, 또 어느 날은 누군가의 좋은 추억이 담긴 사진을 그림으로 옮겨주는 일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 의지를 가지고 살고 있다지만 계속해서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그건 유독 주말이 되면 더욱 크게 느껴진다. 특히나 요즘처럼 아름답고도 짧은 계절을 맞이하는 중이라면 더더욱.
지금 당장 시간을 쪼개가며 일하고, 주말까지 할애해서 고작 몇 푼 더 버는 것보다 길가를 가득 메운 벚꽃길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오늘이 지나면 잊을지도 모를 것들과 이번 주 안에 사라질지도 모를 특별한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것이 더 값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마 이번주말에도 다름없이 몇 푼 더 벌기 위해 용을 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십 년쯤 뒤에는 또 내가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벚나무를 빽빽하게 채운 분홍빛 꽃들 사이로 여린 초록빛 잎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벚꽃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고다. 올해도 이렇게 벚꽃을 보내고, 삭막했던 들판을 조금씩 물들이는 연둣빛을 보내고, 그렇게 봄마저 완전히 보내고 나면 나는 또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지금 내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그걸 지키려면 나는 무얼 해야 하는지를 어서 찾아내고 싶다. 그래서 꼭 평화롭고 행복한 주말을 보내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