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기억

by 린다


2025년 3월 18일.


엊그제까진 ‘이제 정말 봄이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날씨가 따뜻했는데, 믿을 수 없는 새하얀 세상이 아침을 채웠다. 아직 겨울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봄이 오는 길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씨였다. 눈예보가 있긴 했지만 3월 중순임을 감안하면 진눈깨비나 먼지처럼 작은 눈송이가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출근길에 마주한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차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내고 올라탄 후 조심스레 운전하는 출근길에도 눈은 쉼 없이 내려 지난 얼마간의 봄날씨가 마치 꿈인 듯했다. 겨울이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치는 듯 출근하고 나서는 눈발이 더욱 거세졌다. 성실히 쌓여가는 눈, 폭신해 보이지만 손으로 만지면 쉽게 녹아 없어지는 눈을 보며 내 인생에서 봐왔던 수많은 눈 오는 날들을 떠올렸다.


내 인생 처음 눈의 기억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이다. 어쩌면 아빠의 기억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난 설 연휴엔 정말 눈이 많이 내렸다. 발이 눈 속에 푹푹 파묻히고,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발이 가로로 휘날렸다. 겨울왕국처럼 새하얀 세상이 되어버린 본가의 기차역에 도착해 마중 나온 아빠의 차에 올라탔고, 다음날 시골 할아버지댁은 어떻게 가지? 하는 걱정을 나눴다. 어차피 할아버지댁에 가면 온갖 친척들에게 시집 언제 가냐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고, 심지어 상 차리고 치우는 고된 노동만 남아있을 나로서는 내심 눈이 더더욱 많이 내려서 차라리 못 가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구석에서 우리 가족끼리만 뒹굴거리고 귤을 까서 나눠먹으며 두런두런 주고받는 이야기로 연휴를 보내게 되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눈은 고립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많이 내려서 다음날 새벽 어김없이 일어나 시골 할아버지댁으로 출발했다. 아빠가 조심조심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눈 내린 새벽의 시골풍경을 보고 있을 때 아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운전 중 바깥에 눈이 내리고 있거나 도로에 눈이 쌓여있다면 틀림없이 거르지 않고 꺼내놓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아빠의 첫 아이인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본 인생 첫눈의 기억이다.


신혼부부이자 초보부모였던 엄마 아빠가 첫 아이인 나를 낳았을 때는 가을이었다. 아빠는 돈을 벌어야 해서 바빴기에 엄마혼자 산후조리를 해야만 했는데, 아이를 낳아 몸도 힘든데 갓 태어난 갓난아기까지 케어해야 하는 초보엄마는 많이 서툴렀다. 엄마는 비교적 가까운 할아버지댁에서 할머니의 케어를 받으며 산후조리를 했고, 얼마뒤 어린 나와 엄마를 지인에게 빌린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은 눈이 많이 내려 쌓였다고 했다. 그 시절엔 요즘처럼 도로에 제설작업이 잘 되지 않던 때라 도로는 너무 위험한데 비해 아빠는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였고, 눈길 위에서 몇 번이나 핸들이 제멋대로 돌아서 위험천만했다는 이야기였다.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아빠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고,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꼭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사실 그 차에 타고 있던 갓난아기의 내가 바깥의 눈을 진짜로 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모르게 쿨쿨 잠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이야기 속에 애초에 나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지금 눈길을 운전하는 아빠 옆에 내가 있고, 그럴 때면 언제나 아빠가 무용담처럼 꺼내놓는 이야기라 그 속에 당연히 내가 있었다고 내 멋대로 생각하는지도.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그날의 장면이 영상처럼, 기억처럼 새겨져 있다. 한겨울임에도 축축하게 젖은 아빠의 등과 나를 소중하게 꼭 안은 엄마의 모습이 두 눈에 선하게 그려져 있으니, 내 인생의 첫눈의 기억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아빠가 한겨울에 진땀을 흘려가며 운전을 해냈고,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고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눈의 기억이 아니라 사랑받았던 기억이라 여겼기에 소중히 내 안에 품고 있는 것인지도.


간간히 내다본 창밖엔 노인의 정수리부터, 혹은 구레나룻부터 시작되는 흰머리처럼 창밖의 소나무도 노인의 머리처럼 희끗희끗해지고 있었다. 곧 겨울을 밀어낸 햇살이 일을 시작하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질 텐데 눈은 아주 좁고 작은 자리 위에도 꼼꼼하게 쌓여 도톰해졌다. 그걸 보니 눈처럼 두텁게 내려앉았다가 쉽게도 사라진 순간의 기억들이 몇몇 떠오른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눈이 더 이상 예쁘게만 느껴지지 않지만, 갓 성인이 된 스무 살 겨울의 내 눈엔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해 겨울 유난히 많이 내리던 눈도 마치 나를 위한 축포처럼 느껴졌으니까. 그건 아마도 스무 살의 내게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큼의 호감이 있어야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지 몰랐던 내가 이번엔 틀림없이 사랑이 맞다며 확신한 때였다. 그가 눈 위에 발자국 내며 걸으면 나는 그 발자국 위를 밟고 뒤를 쫓았고, 함박눈이 내리던 새벽에는 차가 한대도 다니지 않아서 흰 솜이불을 깔아놓은 듯한 도로 위를 같이 뛰어다녔다. 오리털 패딩 같은 건 입지 않아도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그해 겨울의 거의 모든 눈 오는 날엔 그와 함께 있었다. 서서히 봄이 찾아오고 눈이 녹으면서 그와 함께한 시간들도 한겨울밤의 꿈처럼, 해가 뜨면 속절없이 녹는 눈처럼 사라졌지만, 그 이후로도 몇 년간 눈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하얗던 그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해의 모든 겨울이 온통 그 사람이었는데, 언제가 우리의 마지막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내리고 있는 눈은 아마 이번 겨울의 마지막 눈이 될 것이다. 사실 지금을 겨울이라 부르기도 조금 뭣하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내가 사는 곳에서 만난 이번 겨울의 첫눈은 11월 27일에 내렸다. 그리고 나에겐 일기장을 뒤져보지 않아도 2009년 11월 19일에 첫눈을 본 기억이 있다. 그날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둑어둑 해질 때까지 학교에 있었고, 어두운 캠퍼스를 한 학년 후배와 걷고 있었다. 유난히 날씨가 추웠고, 옷소매와 목 틈새로 찬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목을 접어 고개를 푹 숙인 채 팔짱을 끼고 걷는 내게 함께 걷던 후배가 말했다.


“누나 고개 들어봐. 눈이 내리고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색 하늘에서 희고 동그란 솜뭉치가 하나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언뜻 봐도 잠깐 오다 그칠 기세였고, 조금도 쌓이지 않을 눈이었지만 후배는 첫눈이라며 마냥 신나서 풀쩍풀쩍 뛰어다녔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내리는 눈을 찍었다. 그 당시 핸드폰으로는 그다지 선명하게 찍히지 않았지만, 그날의 날짜와 ‘첫눈’이라는 글자를 적어 미니홈피에 올렸다. 그리고 왜인지 그 날짜와 사진은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 매년 11월 19일 즈음이 되면 공기를 감도는 찬기운을 느껴본다. ‘이제 곧 첫눈이 내리겠다’ 생각하며 그때 가로등 밑을 풀쩍풀쩍 뛰어다니던 그 애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지 잠깐 궁금해해 보는 것이다.


언젠가 나의 정수리에도 흰 눈이 서서히 쌓여서 겨울을 머리에 이고 사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겠지. 그때쯤이면 눈에 대한 기억이 더 많이 누적되어 눈송이 하나에 눈의 기억 하나쯤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으려나. 초등학생 때 엄마와 어린 동생들과 놀이터에서 오후 내내 눈사람을 만들며 놀던 날과 고등학교 1학년 개학첫날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휴교를 하고 집에 돌아와 마당에서 동생들과 눈싸움을 하던 날들이 어김없이 떠오를 것이고,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져가며 간신히 기차를 타고 본가에 갔던 지난 설 연휴도 떠오르겠지. 태어난 날에 눈이 내려서 이름에 ‘설’이라는 글자가 들어있던 예쁘장했던 여자 동창생의 이름과 운전을 시작한 첫 해에 눈이 많이 내려서 출근길에 고개를 넘다가 핸들이 제멋대로 돌아간 경험, 회사 다닐 때 회사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뛰다가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어 몇 주동안 꼬리뼈 통증에 괴로워하던 일도 함께 떠오를 것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 내릴 수많은 눈들에 기억 하나를 붙여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그 눈의 기억들이 슬프고 아픈 기억이기보다는 떠올리면 슬그머니 웃어볼 수 있는 그런 기억들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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