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빛나 Oct 15. 2022

아이만이 아닌 엄마의 감정도 공감이 필요하다

<공감의 힘> feat. 책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요 며칠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말을 너무 안 듣는다. 막무가내 5세라고나 해야 할까? 물론 엄마, 아빠 앞에서만 이지만 말이다.


가뜩이나 엄마는 할 것도 많은데 아이는 전혀 협조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겐 미운 4세보다 미운 5세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점점 아이는 성장해간다.  두뇌도 발달되면서 더 이상 고분고분한 딸랑구가 아니다. 하지 말라면 내 안의 분노를 끄집어내  마치 끝장을 보겠다는 듯 신나게 약을 올린다. 고작 5세인데 나이차로 따지면  얼마야. 화내지 말아야지 하는데 그 어린 꼬맹이한테 늘 지고 만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화를 낼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화가 폭발한 적은 종종 있다. 그렇다 어린이들, 그들은 어른들의 없던 화도 끄집어내 폭발시킬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순수하고, 막무가내인 존재들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노라면 가끔 나 자신을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화내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간 쌓인 여러 가지 감정과 함께 그날의 아이의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 순식간에 나도 모르는 내 안에 어딘가에 숨어있던 화를 귀신같이 찾아내 그 심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곧  '펑!'

난 잠시 괴물이 된다.


괴물이 되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때쯤 꽤나 후유증이 크다.  어디 물어볼 곳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육아서적이라도 봐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 맘대로 되지 않은 아이와 현실에 낙담하고 있을 때쯤 하늘이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 마침 같이 육아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내 이야기에 폭풍 공감하며 책을 권했다. 책처럼 되진 않지만 도움이 많이 될 거라며 그녀가 말한 것은 <내 아이를 위한 감성코칭> 이란 책이었다. 나에겐 해결책이 너무나 필요했기에 책을 읽을지 말지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친구와 놀다 크게 싸워 화가 났을 때 아이들은 “그 애 정말 미워!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다시는 안 보게”와 같이 격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동생에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겨 질투와 섭섭함을 느낄 때도 아이들은 이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아이 입장에선 죽는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기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인데, 어른들이 받아들이기엔 편치 않습니다.

부모들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 주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감정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으로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감정은 기쁨, 즐거움, 행복, 편안함 등의 감정입니다. 나쁜 감정은 슬픔, 외로움, 미움, 분노, 화, 질투, 공포 등을 의미합니다. 좋은 감정은 아이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 아이가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지만, 나쁜 감정은 아이를 힘들게 하고 부정적으로 성장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감정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으로 구분하는 부모는 아이의 나쁜 감정을 인정하지 않거나 빨리 없애주려고 노력합니다.

<억압형 부모>들은 아이가 소위 그들이 생각하는 나쁜 감정을 가질 때 야단을 치거나 훈계를 합니다.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 슬퍼하는 아이에게 “강아지 좀 죽었다고 그렇게 찔찔 짜냐. 누가 보면 할머니라도 돌아가신 줄 알겠다”는 식으로 감정을 무시합니다. <축소 전환형 부모>라면 “뭘, 그까짓 일로 우니? 엄마가 더 예쁜 강아지 사줄게”라고 말하며 빨리 슬픈 감정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랍니다.

-책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중

바로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읽은 책의 내용은 나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진 않았지만 <감정 공감>이란 큰 틀에서 나의 행동을 잠시 반추해볼 수 있었다.

그래 공감... 많이 들어서 알고 있고 나도 아이에게 행했었으나 근래 잠시 잊고 있었다. 요즘 이것저것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에게 아이와의 차분한 대화 속 공감은 별로 없었다. 그저 아이말을 듣고 "응~ 그래. 그랬구나~"와 같은 기계식 리액션을 해 주며 나의 할 일을 빨리 끝내고 다음 일정을 행하는 것이 중요했다.


 ' 그날 그렇게 화낼일이었나? '  화가 아닌 다른 선택이 분명 있었다. 사건인즉, 저녁도 못 먹고 연이은 집안일에 드디어  마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속으로 ' 이제 빨래를 널고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잠시 쉬어야겠다' 생각했다. 한데 아이가 방금 널어놓은 빨래를 몽땅 걷어 바닥에 던져둔 것이다. 하지 말라고 얘기하며 다시 차분히 빨래를 널으려는데 다시 와서 걷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다시 하지 말라며  차분히 너는데 이번엔 빨래를 빼놓고 아예 못 널게 옷감을 가지고 도망가며 한마디 한다."  메롱메롱 빨래 못 널지~메롱메롱" 진짜 약 올리기에 끝판왕이 따로 없었다.  나의 계획과 달리 계속 마무리되지 않은 빨랫감에 다음일로 진행도 안 되고 그로 인해 당연히 난 쉴 수 없었다.  몇 번을 말해도 듣지 않는 아이에게 결국 폭발했다. 그 화살은 그날 같이 있던 남편에게도 쏘아졌다.


돌이켜보니 집안일을 다 잘 마무리하고 쉬고 싶었던 내가 보인다. 아이에겐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을 공감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엄마의 일이 끝나지 않아 힘들다고 말하거나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의 날 자책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간디나, 선비도 아니고 매 순간 어찌 참고 견디겠는가? 내 안의 감정도 폭발시켜야 해소가 되며 묵혀있던 감정이 나가야 순환이 될 것 아닌가?


감정코칭을 하려면 감정에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라는 줄을 그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공감해 줄 때 비로소 감정코칭을 할 수 있습니다.
-책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중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의 감정 공감도 필요하지만 내 감정도 공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즉, 아이만이 아닌 엄마도 공감이 필요하다. 엄마도 사람이기에 말이다. 다행히 난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육아 동지에게 공감을 받아 금세 치유가 됐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그 감정들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 안에  좀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오히려 난 책을 읽으며  아이의 감정에 대한 공감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감정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를 공감하고 이해해  사람들과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이라도 충분하다.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 때  아이가 그렇듯 우리는 비로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육아에 지친, 아이와의 실랑이에 지친 엄마들이 필요한 한마디도 바로 이거다. " 그래 그랬구나.  힘들지. 나도 알지. 이해해. "  


엄마는 늘 파이팅 넘칠 수 없다. 힘들고 지쳐 넘어지는 날이 수두룩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감정도 공감이 필요하다. 그래야 넘어진 엄마도 다시 일어나 툭툭 털고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채워진 에너지를 나의 아이, 그리고 가족에게 전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인생은 참 하루하루가 배움이고 수련의 과정인 것 같다. 난 하루하루 그렇게 나를 수련해 나가며 "엄마"가 되어가는 동시에 그 직업을 배우고 있다. 잠시 아이 두 돌 무렵 육아하며 한참 힘들어하던 나에게 친구가 해줬던 말을 되새겨본다.



Happy mom, Happy child.



매거진의 이전글 30년 뚜벅이가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