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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나 Aug 10. 2021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말의 힘.

마을이 흉흉한 일에 휩싸일 때마다 여러 문중 사람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으로 시작하는 쓸데없는 말과 "그쪽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요..."처럼 이웃을 함부로 비난하는 말을 한데 모아 구덩이에 파묻었다. 말 장례를 치른 셈인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툼질과 언쟁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언어의 온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속엔 그 사람의 심(마음)과 사(思생각)가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난 유독 말에 예민했다. 학창 시절 나의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그녀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나와 종종 타퉜다.

"ㅇㅇ아. 말을 왜 그렇게 해?  그 말이 난 기분이 나빠."

" 그별 의미 없이 했던 말인데 네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너처럼 말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 별로 없어. 생각 없이 내뱉은 거야. 그런 뜻 아니야."


'어떻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말을 매번 그냥 내뱉을 수 있지? 그럼 말하는 사람은 아무 의도가 없으니 모든 기분 나쁜 감정은 오직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인가?'  물론 우리 모두가 매일, 매 순간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살고 있진 않지만 그녀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얘기할수록 오히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돼버렸다.


절친이라는 울타리 안에 우리의 논쟁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그녀의 그런 말투는 종종 날 기분 상하게 했었다.

얼마 전 출산한 또 다른 친구 이야기다. 선물 구매 여부로 그녀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 뭐 필요한 거 있어? 아이도 낳았는데 다음에 놀러 갈 때 사갈게."

" 기저귀 사와ㅋㅋ"

그날따라 앞뒤 없이 날아온  두마디. 하고 많은 단어 중에 왜 그녀는 명령어를 선택했을까? "기저귀 좋을 것 같아." 혹은 "그럼 기저귀좀 사다 줘." 등 다른 종결 어미가 많았을 텐데 하필 그녀가 고른건 명령어였다. 비록 친한 친구라 격 없는 사이라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에 순간 난 친구가 아닌 그녀의 전용 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라는 옛 속담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 말을 잘하면 천 냥이나 되는 큰 빚을 말로 갚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말만 잘하면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가진 것이 크게 없어도 상대에게 늘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은 상대를 기분 좋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내게 없었던 것을 애써  찾아내 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한다. 때로는 세상과 그만 이별을 하려는 사람을 붙잡아 살리기도 한다. 그렇다. 그것이 말의 힘이다.


늘 나는 누구에게 어떤 말을  것인가. 그것은 상대를 희(喜기쁠) 하는 것인가, 노( 怒 성낼) 하게 하는 말인가. 무심코 어떤 말을 상대에게 전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몇 해 전 일이다 일산에 있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수술을 받았다. 진료과정은 다른 병원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의료진이 환자를 부른 호칭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의사가 회진 차 병실에 들어왔는데 그는 팔순은 훌쩍 넘긴 환자를 대할 때도 환자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박원사 님, 김여사 님하고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가 퇴원하는 날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 "라고 묻자 그는 "그게 궁금하셨어요?"라고 되 물었다.
의사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환자에서 환이 '아플 환' 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가면 더 아파요."
" 아.."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 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 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이 될 수도 있어요."
-언어의 온도 -


책<언어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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