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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지 Lindsey May 16. 2022

엄마의 스물일곱_JYP 오디션

배 속 아가에게 쓰는 편지 (1)

심사위원

"이름은요?"


엄마

"오혜련입니다."


심사위원

"나이는요?"


엄마

"27살입니다."


심사위원

"네??... 아.... 일단 한번 보죠."

 

  스피커를 타고 음악이 흘러나왔어. 우퍼의 진동을 따라 나의 심장도 같이 뛰었어. 둥- 둥- 둥-.  떨리는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지. 손꼽히는 대형 기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이었어. 사실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의 꿈은 연예인이 되는 것이었거든. 방과 후에 혼자 거울을 보며 연기 연습을 하곤 했어. 또르르 눈물을 흘려보았다가 버럭 소리를 내질러보았다가 그냥 예쁜 척도 해보았어. '읽기' 교과서에 간혹 실린 연극 대본은 좋은 연습 소재가 되었지. 카세트테이프 양 쪽 끝에 셀로판테이프를 붙여서 노래를 녹음해보기도 했어. 무대에 서는 것도 참 좋아했지. 소풍 때마다  열렸던 장기자랑 댄스에도 빠지지 않았어. 베이비복스, 샤크라, 핑클, S.E.S. 그 당시 핫한 가수들의 춤은 다 꿰뚫고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학예회 때는 피아노를 치며 독창도 했어. 교회 성탄절 뮤지컬에서는 늘 주연을 독차지했지. 무대 위로 쏟아지는 핀  조명을 받으면 특별한 능력이 생기는 마법이라도 온몸에 뿌려진 것처럼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어. 짜릿짜릿.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거야. 아역배우 오디션을 보러 가고 싶다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었어. 사실 그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었어. 교회에서 지원해주는 쌀로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거든.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았는데 바퀴벌레, 지네가 출몰하는 건 다반사, 천장에서는 쥐들 발자국 소리가 들리곤 했어. 토도도도독. 토도도도독. 바닥에 누워 쥐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따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았던 기억이 나. 제주에 살다 보니 오디션이든 연기학원이든 수도권에 가려면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그 모든 수고와 비용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지. 끝없는 바다와 하늘이 섬과 육지를 갈라놓은 상황이 애초에 꿈도 꾸지 말라는 암묵적인 하늘의 메시지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구. 오디션을 보러 가겠다는 나의 목소리는 서서히 흐려져다가 저 멀리 구름 뒤로 종적을 감춰버렸어.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이 되었어. 여느 20대 친구들처럼 직장 생활을 했어. 평범하고 순탄한 하루하루였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오전 8시에 출근을 하고 오후 5시에 퇴근을 했어.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옷을 갈아입었어. 답답한 안경과 단화는 벗어던지고 최신 유행하는 신발에 한껏 힙한 옷을 입고서는 대형 거울 앞에 섰어. 취미로 댄스를 줄곧 즐기다가 팀에 합류했거든. 퇴근 후 연습실로 직행해서 춤을 추다 보면, 없던 힘도 생기고 온몸의 감각들이 깨어나는 듯 했어. 온갖 음표와 쉼표들이 커다란 스피커를 타고 날아와 귀와 심장을 울리면 온몸 구석구석 세포와 근육들이 물결치며 생생하게 악보를 그려냈지.



  그러던 어느 날, 운명 같은 소식을 접했어. JYP 엔터테인먼트 오디션이 제주에서 열린다는 거야. 그것도 오디션 장소가 내가 매일 출근도장을 찍던 바로 그 연습실이었어. 손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았던 기회가 제 발로 내 눈앞에 찾아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니.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 포스터를 훑어내려갔지. 그러다 턱! 하고 걸리는 대목이 보였어. [나이 제한: ~25세까지]. 야속하게도 그때 엄마는 이미 27세였어. 이 또한 운명의 잔인한 제동장치인가 싶더라구. 잠시 망설였지만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어. 이왕 이렇게 기회가 다가온 거, 앞뒤 가리지 않고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은 거야. 퇴근 후 매일같이 연습실로 직행해서 무릎에 멍이 들도록 연습했어. 거울 속 내 모습을 그렇게나 찐하게 직면한 순간이 있었을까. 시선, 손 끝, 팔꿈치 각도, 다리 높이, 감정. 거울 속 내 모습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했어. 거울에 움직였던 자국이 남았다면 아마 빈틈없이 가득 찼을 거야. 



  어느새 오디션 당일이 찾아왔어. 참격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최고령 참여자였지만 다행히 기회를 주셨어. 마법의 핀 조명은 아니었지만 나 하나에게 집중된 심사위원분들의 눈동자를 조명삼아 최선을 다해서 오디션에 임했지. 결과가 어땠냐구? 며칠간 전화기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끝내 연락을 받지 못했어. 시원하게 떨어진 거지.



  어쩌면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매번 연습실에 갈 때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이 가감 없는 진실을 보여주었거든. 눈가에 미세하게 잔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27세의 얼굴. 연예인 옆에 선다면 백지장처럼 보일법한 밋밋한 이목구비. 아무리 쭉쭉 뻐-얻-어 보아도 여전히 짤막한 팔다리, 흉내내기 정도에 급급한 어설픈 춤 동작. 불합격이라는 결과가 어쩌면 참 당연했는지 몰라. 그런데 그거 알아? 그렇게 정직하다는 거울도 미처 보여주지 못한 더 깊은 진실이 있었어. 거울에 맺힌 겉모습, 그 이상의 진실 말이야.   



  엄마의 내면에서는 생각보다 더욱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어. 나 자신을 제한하는 27이라는 숫자 따위 문제 삼지 않는 용기와 열정이 뜨겁게 꿈틀대고 있었어. 또렷하고 예쁘지는 않아도 나의 이목구비는 부단히 도 제 역할을 다해내고 있었지. 음악을 듣고 느끼는 귀,  어린 시절 보였던 반짝이는 눈동자, 꿈을 노래하는 입술, 주눅 들지 않고 도전을 향해 원 없이 뻗어낸 두 팔과 다리. 서툴긴 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감격스러운 몸짓이었어. 늘 바라고 꿈꾸던 일에 첫발조차 내딛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을 시원하게 씻어내려 버리는 순간이었어.  모든 것을 쏟아 부운 3분이라는 시간이 농도 짙은 땀방울이 되어서 카타르시스로 피어올랐어.



 아가야, "오디션 불합격"이라는 사건은 누군가가 들었을 때는 단순한 실패의 경험으로,  스치는 한 줄짜리 인생 경험으로 정도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엄마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란다.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로웠어. 사실 뛸 듯이 기뻤지. 전혀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아. 오히려 자랑스러워.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그때의 그 여운은 여전히 심장에 남아 둥-둥- 나를 울려. 나를 움직이게 해. 음악은 그쳤지만 여전히 뛰고 있는 내 심박을 타고 오늘도 나는 행진한단다. 힘차게. 둥 - 둥-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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