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여행 - 이슬람국가의 문화 수도 이스파한

페르시아가 남긴 위대한 문화 유산

by 남쪽나라

어제 하루의 피로를 늦잠으로 푼다. 9시쯤 일어나 겨우 아침을 챙겨 먹고 다시 이맘광장으로 나선다.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 버스를 타보니 뒷좌석은 여성칸, 앞 좌석은 남성칸인가 보다. 버스 앞문으로는 남성들이, 가운데 문으로는 여성들이 타고 내린다. 버스도 남녀 칠 세 부동석이네. 아내와 나는 용감하게도(?) 오늘도 둘이 앞문으로 올라 타 남자석에서 둘이 동석한다. 등뒤의 여성들의 따가운(?) 시선을 알아차린 건 내릴 때이다. 모두가 우리를 향하여 시선집중. 나중에 호텔직원 메하른에게 물었더니 관습상 따로 앉지만 결혼한 사이라면 동석해도 안 되는 건 아니란다. 더구나 우리 같은 외국인 부부라면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단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지만 우리는 이란을 떠날 때까지 이 법 만은 지키지 못했다.



20170410_151738.jpg?type=w2 굳게 닫힌 자메 모스크 정문

이맘광장의 상징인 자메(Jame)모스크를 제일 먼저 찾았는데 유감스럽게도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영어로 된 안내판은 당연히 없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크림색의 돔이 아름다운 쉐이크 로트폴라(Sheykh Lotfollah) 모스크로 먼저 간다. 모스크 입구 이완의 화려한 벌집모양 장식은 페르시아 모스크의 특징인가 보다. 어딜 가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옛 건물의 단청처럼.


20170409_113524.jpg?type=w2 쉐이크 로트폴라 모스크
temp_1495166771575.-100057915.jpeg?type=w2 화려한 쉐이크 로트폴라 천정 돔
20170409_114752.jpg?type=w2 햇살이 쏟아지는 쉐이크 로투폴라 모스크

'샤'의 후궁들을 위해 검소하게(?) 지었다는 이 모스크는 규모는 작지만 입구 이완부터 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후궁을 위한 모스크가 이 정도라면 샤의 모스크는 어떠할까? 둥근 돔 아래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커다란 모스크의 홀을 채우고, 문들과 창들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아라베스크문양과 글씨들이 조화를 이루며 햇살사이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화려한 아침 햇살에 취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멍 때리기를 하고 있다. 유럽의 그 어떤 화려한 교회건물에서도 느끼지 못한 새롭고 신선한 아름다움 때문인가?



20170409_122731.jpg?type=w2 알리카푸 궁 테라스

다음에 찾은 곳은 호메이니의 사진이 붙어 있는 알리카푸(Ali qapu) 궁. 샤의 궁전치고는 좀 좁고 높은 6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도 없던 400년 전, 황제라서 더 오르기 힘들었을 이 계단에는 샤의 짜증(?)을 의식해서인지 계단 사이사이 아름다운 꽃무늬 청색바탕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고,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오는 격자무늬의 창들도 보인다.

20170409_123627.jpg?type=w2 알라카푸 궁의 회랑
20170409_135454.jpg?type=w2 알리카푸 궁의 화려한 무늬 계단

가파르지만 아름다운 계단을 구경하며 따라 올라가니 3층에 널따란 테라스가 나온다. 황제는 이곳에서 외국 사신을 만나기도 하고 아래 광장에서 열리는 폴로경기도 구경하였단다. 높다란 나무기둥으로 받쳐진 테라스 천정에도 아름다운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테라스에 서니 전망이 끝내준다. 광장이 한눈에 다 들어오고 바람도 시원하다.

20170409_132425.jpg?type=w2 알리카푸 궁 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여인 그림

사신들을 접견하던 3층 홀의 벽면 곳곳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아니 이슬람국가에서 여인의 그림이? 사람을 형상화하지 말라는 코란의 경귀는 페르시아에서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어쨌든 이 건물 이외에도 이스파한에서 <천일야화>에나 나올 듯한 남녀들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될 줄이야!


좁고 가파른 계단을 돌아 6층의 음악감상실까지 오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올라보니 그 수고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 천정과 벽을 채운 울림판들은 여러 가지 모양의 구멍을 뚫어 만들어져 있는데 그 뒤 공간들은 텅텅 비어 있다. 순전히 공명을 조절하기 위함이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통악기와 중국사람(?) 모습이다. 입체감 있게 오목조목 벽면 전체에 설치되어 있는 울림장치는 놀라우면서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20170409_133513.jpg?type=w2 놀라운 울림장치의 음악실

이곳은 '샤' 자신과 외국사신을 위해 음악회가 열리곤 하던 장소인데 이미 4백 년 전에 현대의 오페라하우스나 콘서트홀에나 설치된 값비싼 음향장치가 알리카푸궁에 설치된 것이다. 이곳에서 듣는 음악은 얼마나 멋있었을까? 사방의 벽과 천장에 부딪쳐 저 멀리 하늘로 하늘로 울려 퍼지던 샤 궁의 음악소리들이. 시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던 샤의 이 음악실 하나만으로도 알리카푸 궁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어떤 서양의 화려한 왕궁보다 더 한.


좁은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생각해 본다. 수천 년 역사의 이란사람들이 불과 400년 전에 지어진 이 광장을 왜 이처럼 자랑스러워할까? 그것은 이곳에 가장 페르시아적인 아름다움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일 거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국 페르시아는 불행하게도 이슬람의 흥기 이후 사막의 미개인(?) 아랍군대에 정복당하여 오랫동안 아랍의 지배와 영향을 받게 된다. 숫한 외침과 여러 왕조의 부침을 겪다가 사파비왕조에 이르러 비로소 최초의 통일된 토착 이란계 왕조의 꿈을 이룬다. 이슬람에 정복당한 후 투르크, 몽골 등의 지배를 거쳐 850년 만에 식민지의 한과 치욕을 벗고 비로소 페르시아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통일된 페르시아제국 절정기의 왕이 바로 아바스 1세이다. 그는 이스파한을 새로운 수도로 삼고 새로운 왕궁과 모스크, 바자르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광장을 건설하는데, 그곳이 <이란의 진주>, <세계의 절반>이라고 이란인들이 자랑해 마지않는 바로 이 이맘광장 아닌가?


흔히 이란과 아랍국가들을 동일한 이슬람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뿌리부터 다르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종교적으로도 다르다. 이란은 이슬람의 소수파인 시아파의 종주국이고 다른 아랍국가들은 대부분 수니파이다. 이는 기독교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만큼이나 다르다. 그들은 또한 언어도 다르고(이란은 인도유럽어족, 아랍 국가는 셈어족,) 인종도 다르다. 이란인들은 히틀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한 아리안족의 원조이다. 이란이라는 국호도 아리안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자존심 상하게도(?) 이란은 그들 자신의 고유문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4개의 자음을 더하여 아랍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아랍통치기간이 너무 길었나? 아! 세종대왕의 위대함이여!. 우리가 지금 한자나 일본글자를 쓰고 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훨씬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이란인들이 850년간의 지배를 받았던 아랍인들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랍사람 왈 '파리와 유태인과 이란인을 만든 것은 하나님의 실수이다.' 이란사람 왈 '아랍족은 사막의 미개인들이다.' 어느 쪽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날의 이슬람문화를 이야기할 때 페르시아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시와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캘리그라프(글씨)와 건축에서도 페르시아의 영향은 엄청 크다. 2006년 이스파한이 전체 이슬람국가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바 있는데 이는 바로 이런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을까?


20170409_134259.jpg?type=w2 알리카푸 궁 내부
20170409_131630.jpg?type=w2 알리카푸 궁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이맘광장

어쨋던 알리카프 궁 3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이맘광장은 정말 아름답다. 흔히 말하는 숨 막히는 절경(?)은 분명 아니지만, 화려함과 단아함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인간이 만든 지상의 아름다움. 우리는 이란에 와 있음에 너무나 행복하다.


PS: 착오로 8화와 9화의 순서가 바뀌어 발행되었습니다. 읽으실 때 참조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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